“이재학 하나 주세요?”
과거 NC 다이노스가 마산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쓸 때, ‘다이노스 카페’에서는 투수 이재학을 사고팔았다. 그것도 단돈 5천 원에. 게다가 그가 등판하는 날에는 3천 원에 살 수 있었다. 팀 에이스로 떠오르는 선수를 적은 돈으로 살 수 있어서, 너도나도 이재학을 요구했다. 그러나 실제로 받는 것은 이재학이 아닌 딸기 주스였다. 이재학의 별명이 딸기인 것에 착안한 상술이었다.
그에게 딸기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두산 시절부터 얼굴이 빨개서 코치님도 동료도 딸기라고 불렀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더 좋은 별명이 따로 생기는 것보다 딸기가 욕도 아니어서 괜찮아요. 어떻게 보면, 저를 팬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은 관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욕이면 기분 나쁘겠지만요. 게다가 진짜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져도 다들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도 나쁘지 않고요.”라고 덧붙였다.
2011년 11월, KBO리그에서 처음으로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이재학은 2라운드에 NC 지명을 받아 두산에서 이적했다. 당시 두산은 40인 엔트리를 짜면서 39명을 손쉽게 정한 후, 남은 1자리를 놓고 투수 2명이 경쟁했다. 다른 투수를 강력하게 민 현장 의견이 받아들여져 이재학은 2차 드래프트에 나왔다. 김진욱 두산 감독은 팔꿈치 부상으로 1년간 재활에 힘쓴 이재학보다 다른 선수가 팀 전력에 보탬이 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서울에서 창원으로 옮긴 이재학은 NC 구단의 역사와 함께했다. 팀 창단 후 KBO리그 첫 승과 첫 완투, 첫 완봉승 등을 거둔 주인공이다. 여기에 팀 첫 신인왕을 받은 것도, 팀 최다승 투수도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재학이 팀 역사와 함께하는 투수가 된 데는 서클체인지업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다. 그의 서클체인지업에 타자들의 배트는 허공만 가른다. 애초 체인지업은 그런 공이다. 슬라이더나 커터 등이 타자의 배트를 부숴버리는 공이라면, 체인지업은 타자에게 속구처럼 보이지만, 속도가 느려 헛스윙이나 범타를 유도한다. 그래서 “속구처럼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이재학은 밝힌다.
서클체인지업은 고등학교 때부터 던졌어요. 프로에서 그 공을 잘 던지니까, 원래 잘 던졌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도 많을 겁니다. 당연히 그렇지는 않아요. 고등학교 때 정말 많이 던졌어요. 몸 맞은 공도 엄청나게 내주고 폭투로 많이 던졌거든요. 진짜 마운드에 서면, 서클체인지업을 던지려고 하다가 몸 맞은 공이 나오면 어쩌지 이런 생각도 엄청나게 많이 했어요. 그런 시기를 겪었고, 그것을 이겨내면서 계속 던지다가 보니까, 서클체인지업이 저절로 제 손에 맞게끔 된 거죠. 손에 맞아서 좋은 결과가 나오니까 자신감도 더 붙고, 그 두려움도 없어진 겁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잘 던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좋은 서클체인지업을 던진 거는 아니에요.
서클체인지업을 던지려고 한 거는 대구고에 진학했을 때, 저는 슬라이더 등을 못 던졌어요. 그걸 보고, 권영진 당시 투수 코치님께서 사이드암 투수는 싱커나 체인지업 등 떨어지는 공이 꼭 필요하다고 말씀하셔서 던지게 됐죠. 아, 사실은, 경복중학교 3학년 가을 때쯤, 장난 삼아 권오준 선배님의 그립을 보고 던지곤 했어요. 그땐 이 공을 제 무기로 삼아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몰랐으니까요. 그런 떨어지는 공이 꼭 필요한 거를. 그러다가 대구고에 딱 입학해서 코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해주셔서, 장난 삼아 던진 것도 있어, 그때부터 서클체인지업을 내 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서클체인지업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에요. 그때부터 서클체인지업에 자신감을 느끼기 시작했죠. 다들 사이드암 투수가 서클체인지업을 던지니까 ‘어?!’하면서 깜짝 놀라더라고요. 또 서클체인지업이 잘 들어가니까 “좋다! 좋다!”라고 말해주시는 분들도 많았고, 그러면서 자신감도 더 생겨서 더 잘 던지게 된 것 같아요.
결국은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정말 몸 맞은 공도 많이 내줬고, 땅바닥에 패대기쳐서 폭투도 엄청나게 많이 나왔어요. 지금 이렇게 되돌아보면, 자체 청백전 등을 하거나 경기할 때는 두려움이 정말 많았어요. 몸에 맞출 것 같은 느낌, 폭투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항상.
그 불안감을 이겨내고 계속해서 던진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거죠. 아무래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꾸준히 열심히 만들어나갔을 때, 비로소 잘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해요. 처음부터 잘하는 것은 천재나 가능하겠죠. 저 같은 평민이 그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안 되더라도 꾸준히 하는 것, 이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서클체인지업을 배우는 데 있어 그립 등을 참조한 선수는 권오준 선배님밖에 없어요. 그 당시 저는 권오준 선배님을 보고 배우면서 많이 느꼈거든요. 저런 공을 던지면 정말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저한테도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게다가, 권오준 선배님의 팔 높이가 저랑 비슷해서, 더 배우고 싶었어요. 선배님을 직접 만나서 배운 적은 없지만, 사진과 동영상 등의 그립 등을 보면서 계속 던져 제 것으로 만든 거죠. 그래서 그런지 다른 투수의 서클체인지업은 크게 눈에 안 들어왔어요. 결정적으로 팔 높이 등도 다르니까요.
NC로 이적한 후, 서클체인지업이 솔직히 이렇게 잘 먹힐 줄은 몰랐어요. 저는 타자가 아니니까 제 공을 알 수 없잖아요. 2013년 시즌 초반에는 서클체인지업 제구가 안 될 것 같아서 속구를 던지다가 빵 맞고 그랬거든요. 아니면 타자가 서클체인지업을 노리는 것 같아 속구를 던지거나 했어요. 그때 최일언 코치님이 “그냥 속구를 보여주지 말고 곧바로 서클체인지업으로 승부하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투 스트라이크가 되면 공 하나를 빼는 거 없이 곧바로 서클체인지업을 던졌죠. 그게 잘 먹혔어요. 그러면서 볼 배합이 좀 바뀐 것 같아요. 사실 2012년 퓨처스에서 잘했을 때는 슬라이더가 괜찮았어요. 슬라이더를 많이 던지고, 서클체인지업은 그렇게 많이 안 던졌어요. 삼진 잡을 때나 한 번씩 던졌거든요. 슬라이더, 속구, 투심 등을 많이 던지고, 서클체인지업은 투 스트라이크일 때, 삼진 잡아야겠다고 할 때만 던졌어요. 그런데 2013년은 솔직히 볼 배합이 바뀐 게 슬라이더 각이 너무 안 좋아서, 그러다 보니까 속구와 서클체인지업으로 가게 된 거죠. 그래서 서클체인지업 비율이 꽤 높아졌는데, 오히려 그게 잘 먹혔죠.
그때 슬라이더가 안 좋았던 것은, 제 생각엔 감각이 안 좋았어요. 엄지손가락이 슬라이더를 던질 때, 아파서 못 던지겠더라고요. 슬라이더 그립을 잡질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슬라이더를 못 던지고, 속구랑 서클체인지업을 섞어 던지게 된 거죠.
시즌 중반에서 막판으로 가면서 손가락이 괜찮아질 때도 있었지만, 아파서 못 던졌어요. 그래서 제가 슬라이더 그립을 바꾸었어요. 어쩔 수 없이 안 아프게. 왜냐하면, 속구와 서클체인지업밖에 없으니까, 타자를 상대하기 어렵더라고요. 슬라이더를 보여주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시즌 막판에는 바뀐 슬라이더 그립으로 던졌는데, 2012년만큼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잡히더라고요. 마음먹은 대로. 그냥 한두 개씩 보여주는 정도로 던져요.
그립은 고등학교 때랑 똑같아요. 기본적으로는요. 근데 손바닥을 붙이거나 띄우거나 이리저리 잡다가 보니까 지금처럼 됐어요. 그때와 비교해서 뭐가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카운트를 잡을 때랑 결정구로 던질 때는 팔 스윙 등에서 좀 차이가 나요. 상황마다 다른데 제가 가볍게 던질 때도 있고, 아주 세게 던질 때도 있죠. 기본적으로 결정구를 던질 때는 낮게 던지는 것에 집중해요.
서클체인지업을 잘 던지는 특별한 요령이나 비결은, 저는 서클체인지업을 던지는 게 진짜 쉬웠어요. 저는 속구랑 똑같이 던지거든요. 근데 저한테 서클체인지업을 어떻게 던지느냐고 물어보는 선수들이 꽤 있어요. 그래서 방금 말한 것처럼 이야기해 주면, 다들 그게 잘 안 된다고 하면서 대충 가르쳐준 거 아니냐고 타박을 해요(웃음).
근데 특별한 요령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서클체인지업 그립을 잡고 속구랑 똑같은 느낌으로 던지는 거라서요. 느낌, 그게 자기만의 그립이나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선수들이 서클체인지업을 던지면, 처음 던지는 거니까 감이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잘 던지는 요령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예전부터 시행착오를 거쳐오면서 저만의 느낌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속구처럼 던지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타자들이 속구랑 똑같이 오니까, 잘 속는 것 같아요. 그게 제가, 처음 배울 때부터 손목을 비틀지 않고 속구랑 똑같이 던지는 느낌으로 던졌거든요. 던지고 느끼고, 그것을 다시 던지고 또다시 느끼고. 그런 반복 과정을 거친 거죠. 타자들은 속구랑 똑같이 오다가 방망이가 나오는데 변화면 잘 속잖아요. 그게 큰 효과를 보는 것 같아요. 저는 손목을 틀거나 비틀지 않고, 속구랑 똑같은 느낌으로 던져요.
타깃도 속구랑 똑같이 잡아요. 속구는 아무래도 포수 미트를 보고 던지잖아요. 서클체인지업도 포수 미트를 보고 던지지만, 낮게 던져야겠다고 할 때는 미트 아래를 보고 던지기도 하고요. 릴리스 포인트도 속구랑 똑같아요. 제가 후배들한테 변화구 던질 때, 항상 강조하는 게 변화구라고 해서 변화구처럼 던져서는 안 된다고 말해요. 속구랑 똑같이 던져야 한다고. 속구랑 똑같이 던져야, 타자들의 눈이 현혹되고 잘 속으니까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분명히 투수에게 구속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전부라고는 생각 안 해요. 예전에 최일언 코치님도 항상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투수는 구속 대회를 펼치는 게 아니다. 경기에서 타자를 잘 잡는 투수가 좋은 투수이므로, 속구가 안 빨라도 제구력이나 변화구 구사 능력, 공 끝이 좋으면 타자들도 쉽게 못 친다”라고요. 확실히 투수는 구속이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박찬호 선배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구속은 빠르면 좋고, 느려도 괜찮다. 얼마큼 자신의 공에 자신감을 느끼며 던지느냐가 중요하다”라고요. 그런 것 같아요. 왜냐하면, 공이 빠르면 좋기야 하죠. 제구력도 있고 공 끝도 좋은 데다가, 스피드까지 있으면 당연히 좋잖아요. 근데 구속은 느려도 괜찮은 것 같아요. 느린 공이라도 공 끝과 제구력, 변화구 구사 능력 등이 좋으면,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변화구를 속구와 비슷하게 던지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타자들이 더 잘 속는 것 같아요. 투수가 던지자마자 체인지업이라는 것을 타자가 알면 아무래도 대처할 수 있을 텐데, 속구랑 똑같이 오는 느낌이니까, 더 잘 속게 되는 거죠. 저는 타석에 안 들어가 봐서 모르겠는데, 타자 선배님들이 속구랑 똑같은 느낌이라서 치기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신인 시절에는 베테랑 선배님들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딱히 특정한 주제를 두고 이야기를 하지는 않아요. 그것보다는, 선배님들은 경험이 많고, 저는 경험이 부족했잖아요. 경기 중에 나오는 상황을 보며 선배님들이 경험을 통해 얻은 것들을 말씀해 주시죠.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해야 하는데 안타깝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게 좋은데, 특정적으로 말하는 것보다는 그 상황에서 선배님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조언과 같은 말씀 등을 하세요. 그걸 들으면서, ‘아, 나도 저런 상황이 오면 이렇게 생각하고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죠. 이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같이 경기를 보면서, 잡담을 나누는 게 아니라 그 상황 상황에 맞게 선배님들의 생각을 말씀해 주시고, 그 말을 듣고 제 생각을 말하고, 이렇게 대화를 나눈 것도, 참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경기를 풀어나가는 요령, 이런 것도 많이 배웠으니까요. 선배님 말씀 중에 손민한 선배님이 한 말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선발 투수는 7이닝을 던지고 승리를 바라야지, 달랑 5~6이닝 던지고 승리를 바라서는 안 된다”라고요. 그 말을 듣고, 저도 5~6이닝 던진 상황에서 승리는 그냥 운에 맡기고, 7이닝 이상을 던졌을 때만 승리에 욕심을 내고 그래요. 어쨌든 그 이야기가 좀 재미있었어요.
김인식 감독은 선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듣는 귀보다 그것을 선별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듣는 귀는 지도자나 선배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프로구단 코칭스태프는 20명 안팎이다. 여기에 1, 2군의 선배를 포함하면, 조언해 주는 이는 적어도 30~40명이 된다. 그들의 성격이나 지도방법, 그리고 성공해 온 길은 다들 다르다. 그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조언을 선별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주유소 기름값처럼 매일 투구폼 등이 바뀌어 자신의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자기 것을 지킨다는 것은 반드시 나쁜 게 아니다. 그것은 변화를 위한 밑바탕이 된다. 신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할 수 있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자신에게 적합한 것을 갖고, 부족한 것을 메워야 한다.
이재학은 힘주어 말한다. “각 투수마다 스타일이 다르므로, 비슷한 유형의 투수라면 그것을 따라 하고 배우면 좋지만, 유형이 다른데 그것을 무조건 따라 하고 배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물론, 유형이 달라도 마운드 운영 등 경험적인 측면은 배울 것이 많아요. 하지만 던지는 방식 등은 유형이 다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