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와 노회찬, 그리고 김진숙... 절박할 때 읽는 시
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딱 30년이 되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바람대로,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 온 것일까.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김남주 정신이 필요하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지금 여기에서 김남주가 다시 살아 서 있는 모습을 그려 본다. 24인의 문학인들과 활동가들이 2024년의 한국 사회를 짚어 보며,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강남규 기자]
시를 읽지 않은 지 오래됐다. 마지막으로 읽은 게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시의 언어를 나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비유와 상징으로 장식된 시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왜 이렇게까지 직관적이지 않은 언어로 무언가를 노래해야 하는지, 머릿속이 온통 주의, 주장과 정치 언어로 가득한 나로서는 도저히 익숙해 지지가 않는다.
그럼에도 언제나 시의 언어를 선망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싶었다. 글로써 변화를 일으키고 싶었다. 내가 구사하는 직관의 언어는 늘 설득에 실패했고, 사람들은 비유의 언어에만 감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2013년부터 대학교에서 운동권으로 활동했고, 2019년부터 정치와 사회를 소재로 칼럼을 썼다. 2024년 6월부터는 정의당에서 공보업무를 맡아 각종 주제에 관한 입장문을 작성하고 있다. 언제나 비주류적인 무언가를 주장하는 입장이었고, 대체로 경청할 의지가 많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 말하고 써야 했다.
원외정당이 되어 마이크를 잃어버린 지금, 나는 설득하는 언어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고 있지만 끊임없이 실패한다. 이해할 수 있도록 직관적으로 쓰되, 다가갈 수 있도록 비유적으로 써야 했다. 나에겐 불가능한 과제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것은 노회찬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직 직관적인 언어로 읽는 자에게 다가갈 방법이 있다면 누가 내게 좀 알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 전주교도소 정문 앞에서 출소 소감을 밝히는 김남주 시인 |
ⓒ 출처 불명 |
그러나 이내 그의 시에서 그만이 해낼 수 있고 나는 혹은 우리는 아직은 해낼 수 없는 명백한 근거를 발견한다.
시를 써보겠다는 생각은 아예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네 벽에 가득 찬 것은 어둠뿐인 이곳에서는
(...)
시가 무슨 신성한 것이어서가 아닙니다
펜이 없고 종이가 없고 형편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흙이 없기 때문입니다 노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흙과 노동이 빚어낸 생활의 얼굴이 없기 때문입니다
밝음을 위한 무기 싸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
내가 한 줄의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가뭄을 이기는 저 농부들의 두레에 내가 낄 때입니다
그들과 더불어 내가 있고
그들과 더불어 내가 사고하고
그들과 더불어 내가 싸울 때
그때 나는 한 줄의 시가 됩니다
(김남주, <편지 1> 중에서)
펜을 들었다고 해서, 종이가 있다고 해서, 형편이 좋다고 해서 모두가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흙이 있어야, 노동이 있어야, 흙과 노동이 빚어낸 생활의 얼굴이 있어야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들과 더불어 사고하고 싸울 때라야 한 줄의 시를 빚어낼 수 있는 것이다. 문장을 얼마나 멋지게 만들어 내느냐가 아니라, 구성을 얼마나 감동적으로 해내느냐가 아니라, '현장'과 '삶'이 얼마나 풍부하게 있느냐가 글의 밀도와 온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는 아직은 그런 글을 써낼 수 없는 것이다. '남민전 전사'로써 온 삶을 투쟁과 혁명에 바친 김남주 시인과 같은 뜨거움을 가져본 적 없으니까. 현장에 발 딛고 거기서부터 글을 끌어올리지 않고, 공중에 머물며 관망하듯 글을 던졌으니까. 내가 정의당 공보담당자로서 쓰는 글의 힘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당의 활동과 열정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간명한 사실을 이제는 안다.
늘 불꽃처럼 타오르던 김남주 시인의 언어에 비관이 깃들기 시작한 건 출소해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되찾은 때부터였다. 군사독재가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자유의 시대이기도 하다. 몸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모두 얻은 셈이지만 도리어 그는 좌절에 빠진다. 췌장암을 선고받기 직전 쓴 시(<근황>)에서는 아예 '배가 터지도록 부어오른 이 거리에서 나는 아무짝에도 쓰잘 데 없는 사람'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최영미 시인은 김남주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밤이 대낮처럼 발가벗고, 배가 터지도록 부어오른 / 휘황한 거리에서 할 일이 없었던 어제의 전사 / 당신의 시가 피와 칼만이 아니라 나뭇잎에 부서지는 / 햇살과 풀잎에 연 이슬을 노래할 즈음, 당신은 갔습니다.
(최영미, <김남주를 묻으며> 중에서)
밤이 대낮처럼 발가벗고 거리는 배가 터지도록 부어올랐으니 직관과 직설로 쓴 시의 시대는 끝났는가. 그럴 리 없다. 김남주 시인이 쟁취하고 싶었던 시대는 이미 도착했을지 몰라도, 또 다른 시인들이 쟁취하고 싶었던 시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 시인들의 이름은 노동자다. 여성이다. 성소수자다. 장애인이다. 이주민이다.
▲ 2022년 2월 25일 HJ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열린 복직 행사에 참여해 연설하는 김진숙씨 |
ⓒ 김보성 |
(단편선 순간들, <음악만세> 중에서)
이것은 왜 시가 아니란 말인가. 김진숙씨의 말에는 꾸밈이 없지만 그 말은 청자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의 말은 37년 복직 투쟁이 밀어올린 것이기 때문이며, 그가 37년간 연대해 온 현장이 끌어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김남주 시인의 30주기, 나는 더 이상 언어를 갈망하지 않는다. 다만 현장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갈망할 뿐이다. 김남주처럼 쓰려면 김남주와 같은 전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덧붙이는 글 | 공동주최 : 김남주기념사업회·한국작가회의·익천문화재단 길동무 후원 : 더숲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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