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Z여자들] "선생님 퇴직 반대" 시위 벌인 아홉 살 학생들
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편집자말>
[이수현 기자]
1987년 3월. 흙먼지 풀풀 날리던 시골길을 따라 엄마는 면 단위 동네의 작은 초등학교에 첫 출근을 했다. 엄마가 교직에 몸을 담은 시간은 이제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친오빠의 나이와 같다. 이제 나의 조카는 두 돌을 앞두고 있고. 그리고 엄마는 올 2월에 명예퇴직을 앞두고 마지막 종업식을 마쳤다.
엄마가 맡은 마지막 학년은 2학년. 1학년보다는 확연히 성숙해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올챙이같이 올망졸망한 아홉 살들이다. '명예퇴직'을 잘 모르는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종업식을 하고, 방학이 되면 다른 학년이 되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방송으로 진행된 종업식에서 '떠나시는 분들' 코너에 엄마가, 그러니까 담임 선생님이 등장해 조금 놀란 모양이다. 엄마가 방송으로 작별 인사를 전하고 교실로 가니 그야말로 눈물바다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 선생님의 퇴직을 반대하는 귀여운 시위 |
ⓒ 이수현 |
"얘들아, 사실은 선생님이 나이가 많아. 손자도 있고 할머니야~."
"할머니 아니에요~!!!! 엉엉"
엄마는 아이들의 눈물을 보자 그만 마음이 약해져 같이 울었다고 한다. 엄마에게 통화로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아이들의 순수함과 귀여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동시에 코 끝이 시큰해졌다.
"엄마가 좋은 선생님이었나 봐~."
"너네가 걱정 없이 잘 커줘서 잘했지. 좋은 선생님이었는지 몰라도 좋은 엄마였는지 모르겠다."
"좋은 엄마니까 이렇게 번듯하게 컸지!"
엄마는 37년의 교직 생활, 그 시절 쉽지 않았을 터인 워킹맘 생활을 잘 마친 게 우리 덕분이라고 자꾸 공을 돌린다. 칭찬과 덕담을, 사랑과 위로를 주고받는다. 잘 자라줘서 고맙고, 잘 키워줘서 고맙고, 엄마의 제자들이 선생님을 잘 따라줘서 고맙고, 그 아이들의 부모님이 아이들을 맑게 키워줘서 고맙고. 자꾸만 자꾸만 고마움의 연대가 커져 간다.
학기 초 자꾸 떠들고 집중을 못 해 말썽쟁이로 통했던 땡땡이가 엄마에게 편지를 써서 줬단다. '선생님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수줍게 써온 편지의 말미에는 "-못된 땡땡이 올림-"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땡땡이를 따로 불러 왜 그렇게 썼는지 물어봤다.
"제가 자꾸 말 안 듣고 수업 시간에 떠들어서요."
"땡땡이는 집중하기 조금 힘들었던 거지 못 된 거 아니야. 잘하고 있어!"
그랬더니 시무룩하던 얼굴에 배시시 하고 말간 웃음꽃이 퍼졌단다. 그 얘기를 들으며 나의 아홉 살도 어렴풋이 생각났다. 지금의 활달한 성격과는 달리 2학년의 나는 부끄럽고 수줍음이 많아 발표를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아이였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매달 독서왕을 뽑자고 했었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교실 뒤 게시판에 스티커를 붙이며 뿌듯해했고 거의 매달 독서왕으로 뽑현던 것 같다. 그렇게 조금씩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해나가게 되었고 숙제로 써간 동시로 상을 받기도 했었다.
삼십 대 중반이 된 내가 지금까지 독서와 글쓰기를 사랑하는 이유에 그 시절 담임선생님의 칭찬이 아주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칭찬과 격려가 땡땡이의 세계에는 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실제로 땡땡이는 다른 선생님들도 알아챌 정도로 학기 초와는 다르게 의젓해졌다고 한다. 엄마와 아이들이 만드는 세계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세계였으면 좋겠다. 서로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이라고 말하는 세계였으면 좋겠다.
엄마는 아직 퇴직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똑같이 겨울방학을 지내고 있는 것 같다고. 3월 2일이 되어서야 실감이 날 것 같다고. 그래서인지 엄마와 아빠는 3월 첫째 주에 이모들과 함께 다 같이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제일 덥거나 추운 방학기간 말고, 이제 봄과 가을에 맘껏 다니고 싶다고. 조용한 곳에서 한 달 살기 같은 것도 해보고 싶다고. 1987년 3월 시골길을 걸어가던 초임 선생님의 눈빛처럼, 제 2막을 앞둔 엄마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 빛난다.
나의 멋진 롤모델이자 최고의 선생님이었던 엄마. 엄마의 제1호 제자인 나는 수많음 가르침 중에서 무엇보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전수받았다는 게 가장 큰 자랑거리다.
앞으로 펼쳐질 엄마의 인생 2막을, 2학년 1반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커다란 '대찬성' 푯말을 들고 크게 응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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