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여 년 동안 예술사에서 묻혀 있던 화가

이정희 2025. 1. 20. 08:3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는 '빛의 거장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얼굴들'

[이정희 기자]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은 붐볐다. 그게 카라바조 전 때문이 아니라 1층에서 전시된 '고흐' 전 때문이었다. 고흐는 대중적이지만 카라바조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낯설다. 연달아 줄을 선 사람들의 행렬을 뚫고 한 층을 더 올라오면 비교적 고즈넉한 분위기의 카라바조 전시회를 만날 수 있다.
 빛의 거장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얼굴들
ⓒ 예술의 전당
그렇다면 카라바조가 누굴까? 그의 풀 네임은 미켙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 , 또 한 명의 미켈란젤로이다. 하지만 유명한 미켈란젤로와의 구분을 위해, 그가 태어난 지역명인 카라바조로 그를 통칭하곤 한다.

옛 것을 오늘에 되살려

'옛 것을 오늘에 되살려', 이 표현이 카라바조가는 예술가의 작품성에 걸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카라바조는 그의 천재적인 작품에도 불구하고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점철된 38년의 생애 동안 많지 않은 1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거의 300여 년 동안 예술사 속에서 묻혔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그의 이름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카라바조가 없었다면 리베라, 베르메르, 조르두 드 라 투르, 그리고 렘브란트는 결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들라크루아와 쿠르베, 마네의 그림도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 로베르트 롱기

로베르트 롱기는 이탈리아의 미술사학자로 카라바조의 혁신적인 회화 기법과 그 영향력을 '복권' 시켜낸 인물이다. 세계 예술사에서 명멸한 수많은 화가들이 있다. 그 중 '오늘에 되살려'지는 화가는 물론 당대를 대표한다는 점도 있겠지만, 그와 더불어 오늘의 우리가 보기에도 공감할 만한 '현대성'의 의미가 부여되는 지점이 있어서가 아닐까.
 빛의 거장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얼굴들
ⓒ 예술의 전당
카라바조보다 더 북적이는 빈센트 반 고흐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겠다. 죽는 날까지 빛을 보지 못했던 고흐의 작품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길이 길이 빛나는 작품이 되었다. 그건 '고흐'라는 작가가 해석한 장면들이 오늘날의 사람들까지도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모던' ?

그런 면에서는 카라바조 역시 마찬가지다. 100여 점 중 불과 열 점에 불과하지만(아시아 최대 규모), 다른 화가들 작품 사이에서 카라바조의 작품은 왜 그를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카라바조주의(caravagisme)'라 할 만큼 후배 작가들에게 영향력을 미쳤던 화가임을 이해시킬 수 있게 '극적'이고 '강렬'하다.

바로크의 미술들

카라바조가 활동했던 시대는 미술사에서 바로크 시대로 칭해진다. 바로크( Baroque) 말은 포르투갈어 pérola barroca '일그러진 진주'에서 유래했다. 즉, 아직 보석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상태를 뜻한다.

바로크 회화의 특징은 '강렬한 명암 대비를 통한 극적인 효과와 역동성, 빛과 색채를 통한 원근감과 장대한 공간의 표현, 활발하고 자유분방한 붓질'로 정의내릴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정의는 이번에 전시된 50점의 작품들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 대표적 화가가 카라바조라는 점에 충분히 공감된다.

전시회는 카라바조에게 영향을 미쳤던 선배 화가들 캄피 형제, 카라바조가 견습을 시작했던 시모네 페테르차노 등의 작품으로 시작된다. 이어서 정물화와 인물화로 시작했던 카라바조와 동시대에 정물화와 인물화를 그렸던 화가들이 그의 <도마뱀에 물린 소년>과 나란히 전시되어 시대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다음 섹션에서는 '온건한 고전주의'라 하여 안니발레 카라치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는 당대 카라바조의 극적인 작품과 대비되는 화풍의 작품이 인기를 끌었음을 보여줌으로써 카라바조의 화풍이 얼마나 혁신적인가를 느끼게 한다.
 빛의 거장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얼굴들
ⓒ 예술의 전당
다음은 카라바조와 함께 작업을 했던 동료들 그리고 그와 대립했던 당대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주목할 만한 건 그와 다툼을 벌였던 동료 화가의 비슷한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카라바조가 '조악하고 조잡하고 분기탱천할 만도 하다'는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마지막 섹션은 카라바조에 영향을 받은 후배 화가들의 작품으로 마무리된다.

바로크 시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이 '문맹'이었다. 그러기에 그림은 '글'과 같은 역할을 했었고, 그 중에서도 성당 등에 그려진 성경의 기록은 계몽적인 역할이 중요했다. 성경 속 장면을 보는 이들에게 충실하게 전달하는 건 당시 화가들의 주요한 임무였다.

카라바조가 숱한 법의 경계를 넘는 행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추기경 등이 그의 작품을 사랑한 이유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그 찰라의 순간을 연극의 한 장면처럼 극적으로 전달했기 때문이리라. 작품들을 보면 이해가 된다.

'카라바조 그림에서 조명은 단일 광원으로부터 반사경없이 빛을 뿌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마치 검정으로 도배된 방 안으로 단 하나의 창문을 통해서 빛이 유입되는 것 같았다. - 줄리오 만치니

전시회는 카라바조 외에 카라치, 구에노치노, 젠틸레스키 등과 같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다. 전시회에서 보면 어두운 배경에서 단일 광원으로 부터 빛이 뿌려지는 건 카라바조만의 화풍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명암의 극적인 대비에 있어 카라바조의 작품이 당대 선배와 동료 작가들 사이에서 발군이었음이 드러난다. 동시에 동시대 다른 작가들의 비슷한 주제를 통해 '역시자지'로 카라바조의 탁월함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성모 마리아를 그려야 하는데 거리의 여자를 모델로 하여 물의를 일으켰던 해프닝에서 보여지듯이 카라바조 작품의 인물들은 현실적이다. 그건 다른 말로 하면 생동감이 넘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시회에는 카라바조의 작품 외에 동시대 작가들의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 가 전시되고 있다. 다른 화가 작품들이 막달라 마리아의 '젊은 아름다움'에 집중해 있다면, 고개를 젖힌 채 슬픔에 잠겨있는 듯한 카라바조의 작품은 '막달라 마리아'의 회한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빛의 거장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얼굴들
ⓒ 예술의 전당
카라바조 작품을 보면 그 인물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예수는 성인이기에 앞서 자신을 의심하는 제자 앞에서 고뇌하는 인물이요, 그런 예수의 상처를 후비는 성 토마스는 얼마나 인간적인가.

<도마뱀에 물린 소년>이 드러내는 사랑에 미혹된, 그래서 그 쾌락이 불러오는 고통에 빠져버리는 소년의 모습은 이보다 더 사랑의 함정을 잘 드러낼 수 있을까. 당시 생활상을 드러내는 <이를 뽑는 사람>에서 뽑히는 자와, 뽑는 자 그리고 그걸 '관람'하는 자의 대비되는 표정이 보여주는 인간만사는 어떻고.

종종 그림 속 인물로 등장하는 카라바조를 찾는 재미도 빠뜨릴 수 없다. <그리스도의 체포> 속 그는 그리스도의 맞은 편에서 유일하게 빛을 발하던 자부심 넘치던 그는,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에서는 머리를 잘린 다윗으로 등장한다. 삶의 관객에서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리고 만 어리석은 인물, 그 자신의 생애처럼 말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