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정민이 최근 몇 년 사이 출판계에서 이루어낸 일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이후 배우 박정민이 운영하는 출판사 ‘무제’가 뜻밖의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방송에 소개된 도서 뒷면의 유선 전화번호로 장난전화와 무분별한 연락이 쏟아지면서, 2인 체제의 소규모 출판사는 업무 마비를 호소했다. 결국 무제는 유선 전화 운영을 중단하고 이메일 문의로 전환하는 공지를 냈다. 박정민은 최근 김금희 작가의 소설 『첫 여름, 완주』를 내며 “회사의 첫 책 ‘살리는 일’이 출간될 즈음 아버지께서 시력을 잃었다. 아들이 만든 첫 책을 보여드릴 수 없단 생각에 상심했고, 아버지께 책을 선물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듣는 소설’을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 때문에 ‘첫 여름, 완주’는 종이책이 출간되기 전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을 먼저 제작돼 국립장애인도서관 및 전국 장애인 도서관에 먼저 무료로 배포됐다. 박정민은 책에 대한 애정을 스스로 증명하며 지내왔다. 작가로 글을 썼고, 서점 주인으로 책을 좋아하는 이들을 만났었다. 급기야 책을 만드는 일까지 다다랐다. 누군가에게 더 가까이 책이 닿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시작한 이 여정은, 오늘도 ‘책과 사람’을 이어주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물결을 만든다.


작가

글쓰기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박정민은 매거진 ‘탑클래스’에 ‘언희(言喜)’라는 필명으로 2013년부터 4년 넘게 칼럼을 연재했다. 그 칼럼을 묶은 첫 산문집 『쓸 만한 인간』은 일상과 연기 사이에서 마주친 깨달음, 때로는 웃픈 에피소드를 진솔하게 담아내며 출간 20일 만에 3쇄를 찍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공저 『요즘 사는 맛』,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등의 책을 출간하며 ‘글 좀 쓰는 배우’에서 ‘작가 박정민’으로 존재감을 확장했다. 최근에는 문학동네의 시 뉴스레터 <우리는 시를 사랑해>에서 시인 김소연과 격주로 에세이를 연재하며 꾸준한 집필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시인들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감사합니당~ 저두용~” 같은 문장으로 민망함을 토로하는 인간적인 고백은, 독자에게 웃음과 공감을 동시에 안겼다. "글을 말로 옮기는 배우 일을 하다 말을 또 글로 표현해 보고 싶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박정민의 말은 글쓰기에 대한 깊은 애정과 진심이 느껴진다.

서점 주인

박정민이 운영했던 서점 '책과 밤,낮'

2019년 문을 열어 2021년 아쉽게 문을 닫은 서점 ‘책과 밤,낮’. 마포구의 한 조용한 골목에 자리한 이 서점은 단지 배우 박정민의 팬이라면 들를 만한 장소 그 이상이었다. 카페이자 책방, 동시에 독서실 같은 이 공간은 그가 “집은 게을러지고, 카페는 산만하니까 조용히 책 읽을 곳이 필요했다”는 이유로 친구와 함께 만들었다. 박정민은 이 책방을 처음엔 ‘책과 밤’이라는 이름으로 밤에만 열었고, 이후 영업 시간을 앞당기며 ‘책과 밤, 낮’으로 이름을 바꿨다. 여기서 판매되는 책은 박정민과 직원이 직접 읽고 고른 작품들로, 책 속엔 그들의 밑줄과 메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손님들이 맡긴 책을 책장에 보관하고, 자유롭게 공유하는 ‘키핑 도서’ 시스템도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모으는 장치였다. 커피를 주문하면 컵 받침에 적힌 책 속 문장이 따라오고, 그 문장의 책을 1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디테일도 이곳만의 매력이었다. 팬이 아닌 사람도, 단골로 돌아오게 만드는 책방의 철학은 단순했다. “특별할 것 없는 공간이지만, 오래도록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들고 싶다” 결국 이 공간은 배우가 아닌 한 책 애호가가 만든 ‘책 읽기 위한 곳’이었다.

출판사 대표

신간 『첫 여름, 완주』와 박정민 (사진: 출판사 무제 제공)

2020년, 박정민은 2인 출판사 ‘무제’를 설립했다. 이름 그대로, 이름 없는 존재, 소외된 존재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뜻이 담겼다. 박소영 작가의 동물권 에세이 『살리는 일』.을 시작으로 박소영·박수영 자매 작가의 『자매일기』, 그리고 최근 김금희 작가의 『첫 여름, 완주』를 출간하며 착실하게 제 길을 가는 중이다. 특히 『첫 여름, 완주』는 오디오북으로 먼저 선보이고 종이책으로 뒤늦게 출간된 이례적인 순서를 택해 화제를 모았다. 기획 배경에는 개인적인 사연이 있다. 시력을 잃은 아버지를 위해 책을 선물하고 싶었던 박정민은 “책을 그저 책으로만 두고 싶지 않았다”며 ‘듣는 소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염정아, 고민시, 최양락 등 배우들이 재능기부로 참여했고, 효과음과 OST까지 더해진 오디오북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완성되었다. 독자 반응도 뜨거웠다. “늘 기다렸는데 먼저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시각장애인 독자의 말은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보여줬다. 본업으로 돌아갔을 때 회사가 중심을 잃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그의 행보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박정민 (사진: LCDC서울 제공)

나우무비 심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