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중앙시장에서 책 읽는 할매 "사진만 찍고 가도 기분 좋데이"

박보현 2025. 10. 3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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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파는 79세 김영남 할머니의 책 사랑... "엄마 용감하다는 말 제일 듣기 좋아"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박보현 기자]

"홍옥(사과) 사이소, 새콤달콤한 귤 사이소."

김영남 할머니(79)는 하얀 면장갑을 끼고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사과와 귤을 닦는다. 그가 아끼는 낡은 리어카 위에 귤과 사과가 보기 좋게 차려지면 장사가 시작된다.

"와, 사과 색깔 봐, 너무 예쁘다, 얼마미꺼?"

손님이 사과를 보고 가격을 묻는다. 그는 눈가에 주름이 지도록 활짝 웃으며 말한다.

"한 바구니 오천 원, 큰 거는 만원. 참 맛있습니데이."

사람들이 지나가면 다시 김 할머니는 리어카 옆 의자로 돌아가 습관처럼 책을 펼친다. 시장 사람들은 그를 "책 읽는 할머니"라고 부른다. 지난 여름부터 시장을 갈 때마다 책을 읽으시는 모습을 보고, 인터뷰를 요청 드리기로 했다. 3번 만에 허락을 얻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26일 진주 중앙시장을 찾았다.

시장에서 책 읽는 할머니
▲ 김영남 할머니 “책에는 사람이 있고 세상도 있다 아이가” 진주 중앙시장에서 과일 장사하며 한시도 책을 놓지 않는 사람 김영남 할머니 “책에는 사람이 있고 세상도 있다 아이가”
ⓒ 박보현
"할머니,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반짝이는 눈으로 이번에 읽었던 '간디 평전'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간디는 하루에 한 끼만 먹고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살았다네, 그기 자기만 좋으려고 그런 건 아니잖아. 독립운동도 하고... 그래서 (간디가) 저렇게 삐쩍 말랐구나 싶어."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여름에도 할머니는 중앙시장 한복판에서 김주완 작가의 <줬으면 그만이지>를 읽었고, 지금은 이웃이 건넨 <여적>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셨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장사가 주로 앉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많으니까, 뭐라도 있으면 들여다 보는 거지. 시간이 그냥 가는 것도 아깝고. 책 읽으면 재밌어.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신문 조각 들고 들어간다. 어릴 때 못 배웠으니까, 그래야 바보가 안 되지. 아는 게 힘이다. 책을 읽으면, 말을 해도 기가 죽지 않고 누가 우습게 보려 해도 할 말이 생긴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냥 있지는 않고. 책을 읽으면 세상이 보이니까."

그는 이제 시장에서 '책 읽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 "할매, 이 책도 한번 보이소" 하며 책을 건네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요 앞에 족발집 사장도 새 책 사면 나부터 준다이가. 저 밑에 엿 파는 할아버지도 책 참 좋아한다. 서로 돌려가면서 보는 거지. 김장하 선생 아내 분이 시장에 매일 장 보러 오거든, 그때 책 나왔다고 단골 아지매한테 한 권 준기라. 그래 내가 궁금해서 책 좀 빌려달라캤지, 책 보다가 (이해가 안 되는데는) 읽고, 또 읽고 그렇게 두 번을 봤다. <줬으면 그만이지> 읽고 나니까, 너무 좋은 거야.

내가 가진 것을 남 주기가 쉽나. 진주에 이리 좋은 일 하는 사람이 있는 줄 몰랐어. 이 사람 저 사람 돌려 보다가 열 명이 돌려 봤다이가. 내가 앉아서 책 읽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사진도 찍고 그라데. '책 읽는 모습이 참 좋네요' 하면서 과일은 안 사고 사진만 찍고 가도(웃음) 기분은 좋다. 누가 나한테 그런 소리 해 주겠노, '책 읽는 사람 예쁘다' 카면서 일부러 과일 사주는 사람도 있고. 기분 좋지."
▲ 김영남 할머니 “책에는 사람이 있고 세상도 있다 아이가” 김영남 할머니의 리어카 구석구석에는 노끈, 종이 이면지, 신문지 등등 재사용하기 위해 종류별로 나누어져 달려있다.
ⓒ 박보현
- 시장에서 장사는 언제부터 하셨어요?

"서른 초반부터 시장에 나왔지. 원래 복숭아 농사 지어서 갖다 팔고 그랬는데. 애 셋을 낳고 막내가 걸을 수 있을 때부터 장사라도 해야겠다 싶어 나왔다. 안 그러면 못 먹고 산다 아이가."

그는 남편이 몇 해 전 세상을 떠났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애 셋 도시락 싸서 학교 보내 놓고, 빨래해 놓고, 그 다음에 시장에 나왔지."

김 할머니는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장사를 하는 일에는 오히려 '리어카'가 편했다고 말한다.

"남들은 새벽시장부터 나와서 정신없이 하지. 근데 나는 손 맞춰서 같이 가게 봐줄 사람이 없잖아. 그러니까 혼자 할 수 있는 노점으로 시작했지. 아침에 애들 밥 한 숟갈 먹이고, 학교 도시락 싸주고 그때만 해도 (자식 한명 당) 하나 앞에 도시락 2개를 싸야 하거든, 그럼 나는 도시락을 6개 싸야 해.그때는 세탁기도 없고 다 손빨래 해야 하잖아. 빨래하고 설거지 하고, 애들 학교 보내고 나서 시장에 나왔다. 그래야 내가 마음이 편하다. 애들 밥도 안 해주고 내가 돈 벌러 나왔다고 하면 나는(마음이 아파서) 잠을 못 잔다."

세 아이를 키우는 와중에도 그는 중앙시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늘 버텼다.

"나는 중앙시장 밖에 모른다. 다른 데 안 간다. 그냥 여기서 리어카 끌고 살았다. 여가 내 자리다."

김영남 할머니는 1946년에 태어났다. 할머니는 "우리 부모님이 해방되면서 일본서 한국으로 건너 왔지, 이제 곧 만으로도 여든이 된다"며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나는 넷째 딸로 태어났데이. 내 우로는 딸, 딸, 딸. 엄마는 아들 낳으려고 또 (자식을) 낳은 긴데 또 딸이 나온 거라. 그래서 이름에 '남(男)'을 붙였다이가. 이름이 꽃뿌리 '영'자와 사내 '남'자 넣어서 '영남(英男)'이야. 책에 보니깐 네 살, 다섯 살 때 기억이 제일 생생하다 카더라. 진짜 그래. 전쟁 날 때 미군이 와서 우리 동네 다니면서 사탕 주고, 아버지는 방공호에 숨어 있고, 바깥에 불빛 새지 말라고 담요로 문 가리고... 다 기억난다."

그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며 한참을 회상했다. 잠시 말을 멈추더니, 마음속 깊이 남아 있던 서러움을 조용히 내비쳤다.

"봉래초등학교 다녔어. 중학교는 너무 가고 싶었지. 그런데 엄마가 '가스나가 배워서 뭐하노' 하고 안 보내주더라. 결국 못 갔지. 집안 형편이 어렵다면서. 그런데 내 남동생은 (중학교) 보내주더라. 그래도 학교를 다녀서 한글이라도 깨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학교 다닐 때 지우개가 없어서 춤(침)으로 지웠다이가. (자신이 갖고 있는 신문과 종이를 들어 올리며) 이런 종이 한 장도 아까워서 못 버리겠어."

그의 리어카 구석구석에는 언젠가 다시 쓸 날을 기다리는 노끈, 이면지, 신문지 등이 용도별로 봉지에 담겨 정갈하게 매달려 있다.

"시장에서는 설거지 하기가 파이니까(불편하니까) 그래서 상인들도 일회용품 많이 쓰거든, 그럼 내가 또 일회용 쓸라꼬? 하면서 막 혼내거든, 그래서 다들 눈치 본다이가(웃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무조건 간 야학

그는 68세의 나이에 푸른솔 야학에 입학하면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할 수 있었다. 그의 나이는 일흔에 가까웠지만 그는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고 말했다.

"그날도 시장에 있는데 대학생들이 전단지를 주더라고. 야간 중학교, 고등학교 '푸른솔' 내가 그걸 보고 '아이고 중학교가 다 있네, 나도 갈 수 있나' 싶었다. 그게 예순여덟 살 때다. 근데 장사도 해야 하잖아. 그때가 2월이라 딸기를 팔고 있었거든. 딸기는 그날 다 팔아야 하거든.

그래서 내가 속으로 빌었다. '오늘 비 좀 와라. 비 오면 장사 못 하니까 학교 가야지' 했는데... 참말로 그날 진짜 비가 와서 물건 안 받고 하루 쉬었다이가. 우리 집 바로 코앞에 '푸른솔 야학'이 있데, (걸어서) 금방이거든. 맨날 다니는 길에 지나다니면서도 (푸른솔 야학) 그런 데가 있는지는 모르고 살았지. 진짜 백 번도 넘게 갈까 말까 고민하다 갔다."

그는 푸른솔 야학 입학 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업에 참석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무조건 다 갔다. 하루 종일 시장에서 서 있다가 밤에 가서 한 시간 앉아 있는 거다. 머리에 들어오든 안 들어오든, 그냥 갔다. 그게 (학생이 된다는 게) 너무 좋았다. 주변에서는 나보고 다 (검정고시 합격) 안 될끼라고 했어. 그 (야학)학교 다닌 거만 해도 대단하다고. 중학교는 쉽게 합격 했는데 고등학교는 나도 좀 자신이 없더라고, 그래서 한번 (시험을)미뤘어, 그 다음에 함 해보자 싶어서 도전했다이가."

- 자녀 분들은 뭐라고 하셨어요?

"딸은 미용실 하거든, 사람들한테 (내를) 엄청 자랑한다. '우리 엄마는 용감타. 우리 엄마는 참 대단타'고 하면 친구들은 '너거 엄마 불쌍타'고 한다네, 그럼 우리딸은 '우리 엄마가 왜 불쌍하노. 우리 엄마가 얼마나 용감한데' 그런다네. 나는 그 말이 제일 듣기 좋다. 학교에서는 '대학도 가보이소'라고 하데. 등록금 내면 공부할 수 있다고. 근데 내가 계산을 해보니까, 내가 하루 벌어서 등록금은 못 낼 것 같더라고. 못해도 2년, 3년 가야 되는데, 도중에 하차하면 그게 더 마음 아프잖아. 그래서 포기했다."
▲ 김영남 할머니 “책에는 사람이 있고 세상도 있다 아이가” 진주 중앙시장에서 과일 장사하며 한시도 책을 놓지 않는 사람 김영남 할머니 “책에는 사람이 있고 세상도 있다 아이가”
ⓒ 박보현
- 그동안 고생도 많으셨는데... 가끔 속상하거나 화가 날 때는 없으세요?

"욕심을 버려야지. 안 되는 일 붙들고 있으면 내가 먼저 무너져. (중략) 화낼 이유가 뭐 있노. 욕심이 많으면 화가 난다. '왜 나는 이렇노, 왜 쟤는 저렇노' 비교하면서. 근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안 되는 일은 그냥 놔둔다. 그거 붙들면 내가 먼저 비참해진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지금 이 나이에 제일 큰 일은 건강 지키는 거다. 돈? 다 소용없다. 내가 팔십 될 때까지 건강하게 산 게 제일 자랑이다. 앞으로도 할 일은 그거 하나다. 건강. 그래도 내 나이에 이렇게 돋보기 안 써도 글도 보이고, 다른 복은 없어도 내가 눈 좋은 복은 있는 갑따.(웃음) 사람들이 내 나이 (말하면) 아무도 안 믿는다. '한 20년은 빼야 되겠는데?' 그런다. 그냥 많이 내려놓고 사는 거다. 안 되는 거는 안 되는 거고, 오늘 (과일) 팔 만큼만 팔았으면 됐고, 안 팔린 거 붙들고 애써봐야 에너지 낭비다. 책 한 장 더 읽는 게 낫지. 영어랑 한문 줄줄 읽으면 얼마나 좋겠노. 근데 뭐, 안 되면 또 어때. 지금도 좋다. 책 읽을 수 있고, 내 힘으로 장사할 수 있고, 아직 두 발로 잘 걸어 댕기고. 크게 아픈데 없이 건강하고. 그게 다다."

1954년, 중학교에 가고 싶었던 한 소녀가 있었다. 가난과 편견에 가로 막혀 교실 문턱을 넘지 못했던 그 아이는 세월이 흘러,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배우고 싶은 사람'으로 살아간다.

어쩌면 무언가를 잘 '아는 것'보다, 사람과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깊고, 더 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오늘도 리어카를 밀고 햇살이 비치는 중앙시장 한편에 자리를 잡는다. 익숙한 몸짓으로 사과와 귤을 정성껏 닦아 진열한 뒤, 버릇처럼 책 한 권을 펼치고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배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단디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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