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이 교실이었지"... 60년 만에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심규상 2025. 12. 1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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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각으로 변한 '행담도 분교' 터 앞에 선 스승과 제자들, 마을역사관 건립 염원

[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행담도분교의 스승과 제자들이 60여 년 만에 한 자리에 만났다.
ⓒ 심규상
"선생님! 저 OO입니다. 알아 보시겠어요?"
"아이고, 이게 누구야! "

2025년 12월 10일 오후 2시. 서해대교 건너 행담도의 실루엣이 아스라이 보이는 삽교호 재래시장 앞.

행담도 분교의 스승과 제자들이 60여 년 세월의 강을 건너 극적으로 다시 만났다. 재회의 순간, 망설임 없이 서로를 부둥켜안은 이들의 눈빛은 맑고 뜨거웠다. 반백 년이 넘는 세월이 빚어낸 흰 머리카락과 깊어진 주름 사이로, 은사와 제자는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옛 기억을 하나하나 소환해 냈다.

이들의 만남은 행담도 출신 제자가 운영하는 인근 횟집으로 이어졌다. 식당 벽면에는 제자들이 준비한 현수막이 은사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울렸다.

'은사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하고 감사해요'
 강전항 행담분교 초대교사 , 김명중 전 행담분교 교사, 김금중 전 행담분교 교사, 하상규 전 행담분교 교사.(윗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 심규상
이날 참석한 네 명의 스승은 강전항, 김금중, 김명중, 하상규 씨다. 모두 팔순을 넘긴 노인이 되었지만, 40여 년 교직 생활을 마친 이들에게 행담도에서의 1년, 2년, 혹은 4년의 짧았던 인연은 평생의 무게로 남아있었다.

제자들은 80~90대 노스승들의 건강한 모습에 감격했고, 스승들은 제자들이 올곧게 성장한 모습에 깊은 흡족함을 드러냈다. 이날 새벽부터 줄을 서서 대전 성심당에서 사온 케이크에 불을 붙이자, 제자들은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이 큰절에는 단순한 예의를 넘어선, 존경과 오랜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강전항 초대 교사 "학교 직접 지었던 19살... 행담분교 아이들 평생 따라다녀"

스승들의 입에서는 '행담도 분교'라는 작은 섬 학교에 얽힌, 특별했던 교육의 기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강전항 선생은 1961년 19살의 나이에 행담분교에 첫 부임한 교사이자 학교를 직접 건립한 주역이다. 한정국민학교 행담분교가 1961년 3월에 인가되었을 때, 초임 교사에게는 만류하던 험지였지만 그는 교장을 설득해 배를 얻어 타고 행담도로 향했다.

"당시 학교도, 교실도 없었지요. 마을 주민의 사랑방을 빌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주민들과 함께 교실 1칸, 숙소 1칸짜리 분교를 건립했지요. 그때의 인연은 평생 잊히지 않아요. 군 영장이 나와 복무를 마치고 제대 후 다시 행담분교로 가려 했지만 아쉽게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사랑방을 내어준 마을 주민들의 순수한 마음, 그리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기억이 평생을 따라다녔습니다."

김금중 전 교사 "숙직실에서 신혼, 내 아이까지 낳았던 배움터"
 강전항 행담분교 초대교사(왼쪽)와 한정만 당시 행담분교 학생이었던 한정만(오른쪼계씨가 행담도야외에 전시된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고 있다.
ⓒ 심규상
김금중 선생 (1966년 말~1968년 2월 말 근무)은 행담분교에서 특별한 삶을 시작했다.

"학교 주소는 당진군 신평면 매산리 산 24번지. 10여 가구 72명 주민에 학생은 19명이었죠. 생활이 어려웠지만, 저는 교실 한 칸 숙직실에서 신혼생활을 했고, 제 아이를 그 섬에서 낳았습니다."

그는 당시 교사 한 명이 한 교실에서 여섯 학년을 3개의 분단(1, 2학년, 3, 4학년, 5, 6학년)으로 나눠 가르쳤던 어려운 상황을 회고했다.

"행담섬은 제게 또 다른 배움터였습니다. 아이들에게서 많이 배웠어요. 40년 교사 생활 중 다른 학교에서 교장도 오래 했지만, 제가 가장 궁금했던 건 2년 정도 함께했던 행담섬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오늘 이렇게 보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김명중 "행담도는 엔돌핀, 내 건강의 원천"
 케잌에 불을 붙이자 제자들은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 심규상
김명중 선생 (90세, 1970년대와 80년대 근무, 약 4년)은 행담도를 '건강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행담분교에 근무하는 동안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같이 생활했어요. 제가 제 자식도 가르치니 주민들이 믿고 따랐죠. 둘째 딸은 행담도 숙직실에서 낳았고, 그때 주민들이 산파 역할을 해줬습니다. 지금 제 나이가 90인데 행담도 당시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좋아져 엔돌핀이 돕니다. 행담도가 제 건강을 지키는 원천입니다."

하상규 선생 (1982년부터 약 2년 근무)은 학교가 폐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남 몰래 애썼던 일화를 전했다.

"학생 수가 10명도 안돼 폐교 직전이었습니다. 궁리 끝에 두 아이를 섬으로 데려가 입학시켜 겨우 11명을 채워 학교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밤마다 문 앞에 굴과 바지락을 놓고 갔던 주민들의 말 없는 정에 감사했지만, "좀 더 아이들에게 사랑을 쏟아부었더라면..."이라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러자 제자들이 "충분히 사랑을 주셨다"며 응원했다.

사라진 마을역사-분교, "마을역사관 건립" 한목소리
 이날 안라미 당진방송 국장(오른쪽)은 현장에서 행담도 보도로 지역언론발전위원회에서 받은 상금 중 일부(100만원)를 마을기념관을 추진하는 종잣돈으로 써달라며 행담향우회(회장 이익주, 사진 왼쪽) 기탁했다.
ⓒ 심규상
이들이 공통으로 토로한 아쉬움은 행담분교도, 행담마을도 모두 사라졌다는 현실이었다. 행담분교는 1992년 폐교되었고, 섬 주민들은 1999년 서해안고속도로 및 휴게소 건립 과정에서 강제로 마을을 떠나야 했다. 현재 행담섬 전체는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고 있다.

"예전 분교가 있던 곳이 어디인가요? 학교 모습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참 안타깝습니다." (강전항 전 행담분교 초대교사)

"서해안고속도로가 들어서면서 섬 주민 전체가 강제로 떠났더군요. 그 자리에 행담도 휴게소가 들어섰고요. 이후로 행담도로 더는 가기가 싫었어요." (김금중 전 행담분교 교사)

"지금이라도 마을역사관을 건립해 행담도에 사람이 살았고, 이곳에 학교가 있었다는 사실을 후대에 알렸으면 합니다." (김명중, 하상규 전 행담분교 교사)

<행담의 추억> 상금 100만 원, 마을 역사관 종잣돈으로 기탁

이날 안라미 당진방송 국장은 현장에서 의미 있는 기부를 했다. 안 국장은 올해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컨퍼런스에서 <행담의 추억> 사례 발표로 금상을 수상하며 받은 상금 중 100만 원을 마을기념관 추진 종잣돈으로 기탁했다. <행담의 추억>은 개발로 사라진 행담도의 아픈 역사를 주민과 함께 되살려낸 기록집이다.

안 국장은 나머지 상금으로 지역신문인 당진시대신문에 행담도 공익광고를 게재했는데, 광고에는 주민과 교사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당신의 삶이 행담도의 역사입니다'라고 새겼다.

윤명수 당진시의원도 이날 행사에 참석해 "행담도마을전시관 건립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행담도 생흔화석 전시관과 마을전시관 건립 건의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고속도로 교각으로 변한 옛 행담분교 찾은 스승과 제자
 네 명의 행담분교 스승과 일부 제자들이 고속도로 교각으로 변해 버린 옛 행담분교 터를 찾았다. 뒤로 보이는 서해안교속도로 교각아래가 행담분교가 있던 자리다.
ⓒ 심규상
모임이 끝났음에도 네 명의 스승과 일부 제자들은 곧장 고속도로 교각으로 변해 버린 옛 행담분교 터를 찾아갔다. 행담휴게소 앞에서 그들은 거대한 교각 아래 묻힌 추억의 장소를 한참 동안 응시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이들은 거듭 "마을역사관이 꼭 건립됐으면 한다"는 소망을 되뇌였다. 옅게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석양 아래, 반백 년을 뛰어넘어 다시 이어진 인연의 끈을 확인한 스승과 제자들은 아쉬움 속에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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