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워렌 버핏이 극찬한 공시, 투자자는 왜 등한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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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장지웅의 친애하는 소액주주에게(2)
이 땅에 주식거래 앱이 등장한 지 10년. 이젠 정보의 홍수가 성공 투자의 발목을 잡는다. 정보 너머의 진실과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 된 것이다. 보이는 것만 믿다가 실패의 쓴잔을 들이킨 투자자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일단 의심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의심과 불신은 다르다. 한국 증시의 메카 여의도에서 수십 년 M&A에 몸담은 필자가 투자자의 가려운 데를 긁어준다. 〈편집자〉
주식 투자자에게 공시를 보느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안 본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심지어 공시가 뭐냐고 되묻는 분도 있다. 공시는 사업과 재무, 영업실적 등 중요한 기업 활동을 의무적으로 알리는 제도다. 공시는 사업보고서와 반기보고서를 정기적으로 공유하는 정기 공시와 이슈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수시 공시가 있다. 공시는 기업과 관련한 이슈를 신속, 정확하게 알려 투자 결정에 도움을 주고 주식이 공정한 가격으로 거래될 수 있도록 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근래 주식 투자자에게 친숙해진 재무제표 역시 공시를 통해 공표된다. 만약 의무적으로 참여해야만 하는 공시 제도가 없었다면 일반 투자자가 기업의 재무제표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개인이 기업 재무팀이나 관리 부서에 재무제표를 요청해봤자 대외비라며 제공하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PC나 모바일로 기업전자공시 사이트에 접속해서 기업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는 건 투자자에게 축복과도 같은 일이다. 세계적 투자의 대가로 손꼽히는 워런 버핏이 방한했을 때 “세계 어느 나라도 기업에 대한 정보를 한국처럼 인터넷으로 바로 확인할 수 없다”며 공시를 극찬했다는 점을 봐도 공시가 투자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다.
이렇듯 외국인인 버핏이 극찬한 대한민국 공시 사이트 ‘다트(DART)’를 정작 우리나라 투자자가 등한시한다는 게 아이러니다. 더구나 워런 버핏의 가치투자와 장기투자는 신봉하다시피 하면서 버핏이 극찬한 공시는 존재 여부조차 모르는 투자자가 많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버핏은 “이발사에게 이발할 때가 됐는지 물어서는 안 된다(Never ask the barber if you need a haircut)”는 투자 격언을 남겼다. 우리 식으로 바꿔 말하면 여행지의 낯선 식당에 들어가 “여기 음식 맛있어요?”라 묻지 말라는 얘기다. “아직 이발할 때가 안 됐으니 다음에 오세요”라고 말하는 이발사나 “우리 식당 음식은 솔직히 맛없어요”라고 말하는 식당 주인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진실처럼 보이지만 해석 여부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정보가 부지기수다.
예컨대 금융사 직원이 새로 출시된 자기 회사의 인덱스 펀드를 추천한다고 해보자. 워런 버핏이 아내를 위한 유언장에서 자신이 죽으면 재산의 90%를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고, 나머지 10%를 단기 국채에 투자하라고 했으니 인덱스 펀드야말로 버핏이 인정한 최고의 펀드이며, 자신의 회사에서 나온 상품 역시 버핏이 인정한 것과 동일한 성격의 인덱스 펀드라고 소개할 수도 있다.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워런 버핏은 현재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고 있지 않다. 버핏이 코카콜라의 대주주라는 건 누구나 알지만 인덱스 펀드에 대규모로 투자했다는 말은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버핏은 왜 그런 유언을 남겼을까? 자신은 투자하고 있지 않은 인덱스 펀드를 왜 아내에게는 추천했을까? 단순한 질문이지만 현명한 투자자라면 늘 질문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인덱스 펀드는 액티브 펀드 대비 운영 수수료와 손실 위험이 낮다. 버핏 입장에서는 투자 초보인 자신의 아내에게 가장 무난하고 비교적 위험도가 낮은 상품을 추천한 것이다. 이를 과장해 ‘워런 버핏이 죽기 전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추천한 유일한 상품’으로 인덱스 펀드를 소개해서는 안 된다.
머리를 깎아주는 건 이발사지만, 망치는 건 이발사 머리가 아니라 내 머리다. 머리 모양이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돈은 지불해야 한다. 다른 누구의 돈이 아닌 내 돈을 잃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좋은 정보라며 소개해주는 지인도, 애널리스트도, 펀드매니저도 당신 입장에서는 이발사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머리를 망치거나 자신의 돈을 잃지 않는다. 투자 손실은 오롯이 나에게 귀속된다. 잘못된 이발사를 만났을 때 결국 망치는 건 내 머리고 잃는 건 내 돈이다. 그러므로 투자하려는 종목이 어떤 상황인지 투자자 자신이 가장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기업의 상황을 가장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게 바로 공시다.
뉴스와 정보에는 주관과 감정, 욕심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공시는 주관과 감정이 개입될 여지가 적다. 투자자가 공시를 낯설어하고 어려워하는 이유가 친절한 설명이나 안내 없이 결괏값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설명 없이 불친절하게 결괏값만을 노출하기에 오히려 공시는 담백하고 신뢰할만한 정보라 말할 수 있다. 물론 공시 불이행, 공시 번복, 공시 변경 등의 사유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는 경우도 있기에 공시가 100%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일반 투자자가 접할 수 있는 정보 중 가장 공신력이 높고 객관적인 정보가 공시라는 점은 틀림없다. 100% 안전한 투자가 없듯 100% 완벽한 정보 역시 없는 법이지만, 그중 최선을 택하는 것이 현명한 투자자의 자세라 말할 수 있다.
공시는 기업의 중요한 정보를 미리 말해주는 선행적 도구다. 반면 주식 차트는 주가의 오르내림이 완료된 후 드러나는 후행적 도구다. 그러므로 공시를 통해 한 발 앞서 주가의 흐름을 체크한 후 차트를 통해 추이를 확인하는 게 이상적이다. 공시의 전부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 투자를 위한 부분만 제대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의 여정을 통해 꼭 필요한 공시의 꼭 필요한 부분을 함께 얘기해보기로 하자.
이상미디랩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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