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읽기]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넥슨 게임

강한결 2020. 12. 10.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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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내언니전지현과 나' 포스터.

[쿠키뉴스] 강한결 기자 = 2020년의 마지막 달인 12월, 대중의 관심을 모든 영화가 있습니다. '내언니전지현과 나'.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작품은 의외로 게임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영화는 과거 국내 최고수준의 인기를 자랑했던 넥슨의 클래식 RPG 게임 '일랜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제작한 박윤진 감독 역시 18년차 '일랜시아'의 '고인물(올드비)' 유저죠. 

1999년 출시된 '일랜시아'는 여러모로 참신함이 돋보이는 게임이었습니다. 사냥이 주 콘텐츠였던 RPG 게임 분야에서 낚시, 채집, 요리, 미용 등 실생활에도 볼 수 있는 생활요소를 도입해 많은 유저들에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또한 레벨 대신 어빌리티라는 이색적인 시스템이 있어 다양한 방향으로 캐릭터를 육성할 수 있다는 점도 신선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일랜시아'의 인기는 엄청났습니다.

하지만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죠.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일랜시아'는 점차 인기가 줄었고, 유저들도 조금씩 떠나갔습니다. 영화에서 박 감독은 '일랜시아'에 대한 애정을 보이면서, 동시에 분노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인기가 떨어진 뒤 업데이트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심지어는 치명적인 오류나 버그 수정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18년차 고인물 유저 박 감독은 넥슨 매각설이 돌았던 지난해 '일랜시아'가 서비스 종료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더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판교에 위치한 넥슨 본사를 방문해 '일랜시아' 개발진을 찾아가 개선점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일랜시아'에 대한 애정의 크기만큼 분노한 골수 유저의 마음이 느껴졌고,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내언니전지현과 나' 감독과의 대화현장. 강한결 기자

고인물 유저의 간절한 염원이 통한 것일까요.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국내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고, 대중의 시선이 쏠리자, 넥슨도 이에 응답했습니다. 지난 6월 넥슨은 12년만의 게임 이벤트를 진행했고, 7월엔 운영진과 이용자간 사상 첫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3일 개봉한 '내언니전지현과 나'에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모두 담겨 10여분 러닝타임이 늘어났습니다. 9일 기준 누적 관객수는 1404명 입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독자 여러분께 관람을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지난 6일 기자는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보고 왔습니다. 86분의 러닝타임이 끝나고 감독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뜻하지 않은 행운도 누리게 됐습니다. 박 감독은 "이러다가 정말 게임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면서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제작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영화관을 나왔지만, 여운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습니다. 먼저 부러움과 동경이 뒤섞인 감정이 들었습니다. 직접 영화를 제작할 정도로 하나의 게임에 대해 이토록 큰 애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는데요. 같은 애정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 멋있어보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신기한 생각도 들었죠. "과연 나는 이토록 애정을 갖고 열심히 한 게임이 있을까. 내가 특정 게임의 유저라는 것에 소속감을 느끼고 열정을 바친 적이 있었을까"하고 말이죠.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기자 역시 10대를 넥슨 게임과 함께 보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언니전지현과 나'에는 '넥슨 클래식 RPG'라는 키워드가 나옵니다. 이는 '바람의 나라', '어둠의 전설', '일랜시아', '아스가르드', '테일즈위버' 등 넥슨 초기 RPG를 의미하는 말인데요. 지금의 넥슨을 만들었고, 한 시대를 풍미한 게임들입니다. 초창기 이 게임들은 월 정액제 시스템으로 운영됐는데, 일정 레벨이 되면 결제를 해야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기자는 항상 여러개의 캐릭터를 키웠다 지웠다하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2005년부터 이러한 게임들은 대부분 부분 유료화 체제로 바뀌었습니다.

클래식RPG는 출시된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맏형 격인 '바람의 나라'는 모바일 버전인 '바람의 나라: 연'으로 출시돼 올해 최고의 히트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일랜시아'는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알려지게 됐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기사면을 빌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어둠의 전설', '아스가르드', '테일즈위버'에 얽힌 소소한 추억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사진=최초로 쿼터뷰 형식을 도입한 '어둠의 전설'. 넥슨 홈페이지 화면 캡처

먼저 '어둠의 전설'에 대한 얘기부터 해볼까요. 1998년 게임은 국내 최초로 쿼터뷰 방식을 도입한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내이름은전지현과 나' 속 박 감독의 컴퓨터에서도 '어둠의 전설' 아이콘을 확인할 수 있죠. 이 게임은 서양풍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고있으며, 마법사·전사·성직자·도적·무도가 등 5개의 직업이 있습니다. 초등학생 당시 동네 형들과 함께 이 게임을 함께 했는데요. '어둠의 전설'의 매력은 제목처럼 '딥다크'한 세계관입니다. 전반적으로 그래픽 역시 음울한 분위기가 가득했고, 상대적으로 귀여운 다람쥐와 사슴이 몬스터로 등장하던 '바람의 나라'와 달리 판타지 소설에 등장할 법한 몬스터들이 출연했습니다.

'어둠의 전설'에는 '서클'이라는 개념이 있었는데요. 서클이 올라갈수록 상위스킬을 배울 수 있습니다. 2서클 기술을 배운 후에는 대망의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자이언트 멘티스'라는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인데, 5~10명정도의 파티원들과 함께 그룹사냥을 해야 깰 수 있었습니다. 우리 팀의 김찬홍 기자는 "'자이언트 멘티스'를 잡은 이후가 본격적으로 '둠린이'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며 "성직자를 키우며 힘들게 사냥했는데, '자이언트 멘티스'를 잡은 순간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두 번째로 소개할 게임은 2003년 '아스가르드'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북유럽신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요.도트그래픽이었던 '바람의 나라', '어둠의 전설', '일랜시아'와 달리 '아스가르드'는 2.5D 그래픽을 도입해 신선함을 더했습니다. '내이름은전지현과 나'에서 박 감독이 '일랜시아'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아스가르드' 유저에게 조언을 구하는 장면도 나오죠. 

▲사진=초창기 '아스가르드' 로그인 화면. 넥슨 홈페이지 화면 캡처
재미있는 점은 이 게임의 세계관의 시대적 배경이 '어둠의 전설' 600년 이후를 다뤘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두 작품은 '다크에이지 시리즈'로도 묶입니다. 밀레스와 수오미 등 두 게임에 동일한 이름의 마을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이유입니다. 만렙까지 찍은 유일한 RPG 게임이 '아스가르드'라고 강조한 문대찬 기자는 "예전에 루어스에 빼곡히 들어차있던 인파가 잊혀지지 않는다"며 "마을에 빈 주택이 많았는데, 여기 들어가서 다른 유저들과 그냥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 것도 즐거웠다"고 회상했습니다. 문 기자는 특히 "당시엔 '바람의 나라'와 '어둠의 전설'이랑 확연히 비교될 정도로 획기적 수준의 그래픽이었고, 무엇보다 루어스 마을 bgm도 참 좋았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클래식 RPG의 막내인 '테일즈위버'는 아직도 기자가 최애(최고로 애정)하고 최고로 꼽는 게임입니다. '테일즈위버'는 1세대 판타지 소설가 전민희 작가의 작품인 '룬의 아이들'과 온라인 커뮤니티 4LEAF의 세계관을 차용해 새로운 스토리로 만들어낸 게임입니다. 클래식 RPG 중 가장 스토리의 비중이 큰 게임이기도 하죠. 현재는 18명의 캐릭터가 출시됐지만, 당시에는 8명이 전부였죠. 

대다수의 온라인 게임이 자유도있는 멀티플레이를 지향하고 있을 때, '테일즈위버'는 스토리 위주로 게임을 풀어가는 스토리텔링 RPG를 내세웠습니다. 마치 싱글 패키지 게임처럼 말이죠. 캐릭터 별로 육성법도 달랐지만, 각각의 스토리가 다르다는 점도 정말로 매력적이었습니다. 당시 친구들은 기자에게 제발 하나만 좀 진득하게 키워서 사냥좀 하라는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요. '테일즈위버' 게임 스토리의 주인공은 단연 '보리스 진네만'입니다. 사라진 형을 찾는 보리스의 스토리에 빠져들어 밤새도록 게임을 했었죠, 다만 무과금 유저인 기자는 눈물을 머금고 성능이 좋았던 '막시민 리프크네'로 갈아탔던 기억도 있네요.

▲사진='테일즈위버' 챕터 1 보스 '젤리킹'. 

그리고 '테일즈위버'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바로 OST입니다. 게임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더라도, 음악을 들어보면 '아!'하고 알 수 있는 BGM이 수두룩하게 깔려있는 것이 바로 '테일즈위버'입니다. 실제로 기자의 친구는 "가끔씩 BGM이 생각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게임을 접속할 때도 있다"며 웃었습니다. 남구민 작곡가의 'Second Run'과 'Reminiscence'는 꼭 들어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기자는 집으로 돌아와 '테일즈위버'를 컴퓨터에 설치해 오랜만에 플레이했습니다. 비록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보리스로 '연'을 쓰고 '폭'으로 몰이사냥을 하니 옛날의 추억이 조금씩 떠올랐습니다. 밤이 돼 'Second Run'이 울려 퍼지자 감동이 폭발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 넓은 필드에 덩그러니 혼자 사냥을 하고 있다보니 뭔가 멜랑꼴리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유저들과 파티사냥을 하기도, 자리를 놓고 시비가 붙기도 했는데 이제는 홀로 남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물며 한 게임에 진득하게 정을 들인 고인물들은 함께했던 유저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요.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에서 박 감독은 이러한 지점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물론 유저수가 적어진 게임에 예전과 같이 대규모 인력을 투입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만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한 게임을 진득히 해본 유저라면 모두 공감할 이야기입니다.

'바람의 나라'·'어둠의 전설'·'일랜시아'·'아스가르드'·'테일즈위버'. 클래식RPG 5종에는 많은 게이머들의 추억이 깃들어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넥슨은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사로 발돋움하기도 했죠. 넥슨게임을 즐기며 10대를 보냈던 한 명의 유저로서 클래식RPG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보다는 더 개발사의 관심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오래 버텨주길 희망합니다.

sh04kh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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