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 1차 필리핀 수출 폐기물, '바젤협약' 어겼나
[구영식 기자]
▲ 관세청 직속기관인 중앙관세분석소의 '분석시험보고서'. 이 보고서는 부영주택이 필리핀으로 수출한 1차 폐기물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는데, 해당 폐기물을 "인산석고를 오랫동안 흙과 함께 매립한 것"으로 "화학공업 잔재물"이라고 명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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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중앙관세분석소의 '분석시험보고서'와 '분석회보서'에 따르면, 부영주택은 첫번째로 필리핀에 수출한 폐기물을 중화처리한 '석고'(Gypsum)라고 세관에 신고했지만, 이 폐기물을 뒤늦게 분석한 결과 제대로 중화처리되지 않은 '폐석고'(Waste of gypsum or plaster, 인산석고)로 드러났다. 중앙관세분석소는 '분석시험보고서'에서 부영주택의 폐기물을 "인산석고(폐석고)를 오랜 시간(20여 년) 흙과 함께 매립한 것"이라며 "화학공업 잔재물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는 부영주택측이 "중화처리해 중화석고 제품으로 만들어 수출했다"라고 해명한 것과 크게 배치된다. 부영주택과 부영환경산업 대표를 지낸 이용학 전 대표는 "유해폐기물이 아니다"라며 "금송이엔지에서 중화처리해 중화석고 제품으로 만들어 수출했다"라고 반박했다. 부영주택측은 그동안 폐기물의 재활용 용도를 시멘트 대체원료와 공유수면 매립재(검찰), 시멘트 응결 지연제와 성토재(법원) 등이라고 주장해왔다.
부영주택이 필리핀에 수출한 폐석고는 진해화학의 비료생산 공정에서 나온 인산석고다. 인산석고는 화학석고의 하나로 인광석에서 인을 추출한 뒤에 발생하는 폐기물이다. 건축자재인 석고보드를 만드는 재료인데 폐암을 일으키는 라돈이 많이 함유된 것으로 알려져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로 인해 석고보드업체들조차 현재는 인산석고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결국 첫 번째(1항차)로 필리핀에 수출한 폐기물이 바젤협약(Basel Convention)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두 번째(2항차)부터 일곱번째(7항차)까지 필리핀으로 수출한 폐기물이 같은 비료공장 부지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2항차~7항차도 바젤협약을 위반한 유해폐기물일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4~5항차로 필리핀에 수출된 폐기물을 현지 수입업체가 "아주 유해한 폐기물"(your gypsum product is really harmful)라고 판단해서 인도를 거부하는 바람에 해당 폐기물이 5년 이상 민다나오(Mindanao)섬에 방치돼 있는 사실이 <오마이뉴스>의 취재로 처음 확인된 바 있다.
바젤협약(유해 폐기물의 국경을 넘는 이동 및 그 처분의 규제에 관한 바젤조약)은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과 교역을 규제하는 협약으로 지난 1989년 3월 22일 유엔환경계획(UNEP) 후원 아래 스위스 바젤에서 채택됐다. 바젤협약은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이 선진국의 폐기물 처리장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한국은 지난 1994년 2월에 바젤협약에 가입했고, 같은 해 5월부터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그 처리에 관한 법률'을 시행해오고 있다.
▲ 부영이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해 매입한 진해화학 터는 인산석고로 오염되어 창원시로부터 지금까지 7차 정화 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삼표시멘트로 가져가기 위한 덤프트럭들이 작업하고 있다. 2020.12.11 |
ⓒ 최병성 |
하지만 지난 2006년과 2007년에 진행된 토양 오염 실태 조사에서 비료 생산 공정에서 생기는 납, 불소, 아연, 카드뮴, 구리, 니켈 등의 중금속 성분이 토양오염 우려 기준치보다 높게 검출됐다. 2007년 진행된 토양 정밀 오염 실태 조사 결과에서는 전체 오염량이 106만 593㎥이고, 폐석고량도 78만여㎥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지난 2015년 민관환경협의회가 발족된 이후 폐석고량은 65만 7967㎥로 조정됐다.
토양 오염 실태 조사 이후 진해시(현재는 진해구)와 창원시는 부영주택에 수차례 토양 정화 조치 행정 명령을 내리고, 행정명령 불이행에 따른 고발을 반복했다. 그런 과정에서 부영주택은 지난 2021년 12월 폐석고를 모두 처리했다고 진해구청에 신고했지만, 현장 점검 결과 20만 톤 가량의 폐석고를 땅 속에 묻은 것으로 드러났다. 부영주택은 지난 2022년 9월 기준으로 이 20만 톤 가운데 12만여 톤만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영주택과 부영환경산업은 창원시 등으로부터 폐기물 불법 처리와 토양오염 혐의로 수차례 고소를 당했다. 결국 지난 2021년 11월에는 폐기물관리법과 토양환경보전법 위반이 인정돼 이용학 전 부영주택·부영환경산업 대표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이, 부영주택 법인에는 벌금 3000만 원이 선고됐다.
▲ 필리핀 민다나오섬 제너럴 산토스 시의 한 야적장에 방치된 부영주택의 폐기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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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항차(5만 5944톤)부터 유해 폐기물로 적발돼 선박이 압류됐다가 화물을 반송한다는 조건으로 압류에서 해제됐다. 하지만 하역된 하물은 반송되지 않았고, 현재까지도 그 화물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최종 확인되지 않았다. 2항차(3만 40톤)와 3항차(3만 8026톤)도 유해 폐기물 적발로 하역을 거부당했다. 화물을 운반한 선박은 회항해서 국내 광양항 등에 화물을 하역했고, 이후 다른 선박을 통해 재수출했다(7항차).
4항차(5만 7900톤)와 5항차(5만 9980톤)는 필리핀 바나나 농장의 토양개선제(soil conditioner)로 수출되었으나 현재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5년 이상 방치돼 있다. 필리핀 세관을 통과하긴 했으나 애초 수출이 불가능한 유해 폐기물로 확인되자 현지 수입업체에서 화물 인도를 거부했고, 화주(貨主, 화물의 주인)인 부영주택은 방치된 화물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지 수입업체인 BTBD 벤처스는 지난 2018년 12월 6일 화물 처리에 관여한 업체들(삼원환경, 금송이엔지)에 보낸 'Notice of Complaint'(불만사항 고지)에서 "우리는 석고 제품이 아주 유해한 폐기물이라고 의심한다"(We suspect that your gypsum product is really harmful)라며 "당신들이 보낸 질 낮은 제품은 농장주들에게 (토양개선제로) 공급할 수 없다(You sent a low quality product that we can not supply to the farmers)"라고 밝혔다.
6항차(2만9990톤)는 필리핀에 수출됐으나 이것도 수입 불가로 반송 조치됐다. 목포 대불항에 11개월 동안 입항하지 못하다가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의 시료 분석을 거쳐 '폐석고'로 국내에 들어왔다. 국내에서 벽돌의 재료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각에서는 "이것도 적법한 폐석고의 처리 방식이 아니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 부영주택은 지난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총 7항차(재수출까지 포함)에 걸쳐 진해화학 비료공장 부지에서 나온 폐기물을 필리핀에 수출한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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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중앙관세분석소의 '분석시험보고서'와 '분석회보서'에 따르면, 중앙관세분석소는 지난 2018년 9월 17일 창원세관으로부터 의뢰받아 부영주택이 1항차로 필리핀에 수출한 폐기물에 대한 분석시험을 진행했다. 중앙관세분석소는 수출입 물품과 품목분류 사전심사 물품에 대한 분석업무, 품목분류 업무, 안전성 분석, 국제 협력 활동, 관세 분석기술과 품목분류 기준 연구개발 등을 수행하는 관세청 직속기관이다.
분석시험의 대상이 된 폐기물은 "진해화학에서 인산비료를 생산하고 남은 폐기물을 흙과 함께 매립한 것으로 약 20년이 된 상태"다. 그런데 엑스레이(X-RAY)를 이용한 비파괴 성분분석기인 XRF와 XRD을 통해 폐기물을 분석한 결과, 폐석고를 중화시키는 데 투입되는 돌로마이트, 산화칼슘(CaO, 생석회)의 결정구조는 확인되지 않았다. 분석시험보고서에는 돌로마이트가 "확인이 안된다"라고 적시돼 있다. pH도 측정해보니 약 5.62에 그쳤다.
본 물품은 생석회 또는 돌로마이트(약 1%)를 투입하면 pH 6-8 정도 조정한 것으로 보기 어려우며, 중화시킨 인산석고(폐석고)를 오랜 시간(20여 년) 흙과 함께 매립한 것으로 판단됨. (중략) 따라서 본 물품은 인산비료를 생산하고 남은 부산물을 중화시킨 폐석고(인산석고)를 흙과 함께 매립한 것을 파쇄 선별한 것으로 소량(약 1%)의 돌로마이트를 섞은 물품으로, 화학공업 잔재물(제3825호)에 해당되는 것으로 판단됨.
또한 중앙관세분석소는 분석시험의 대상이 된 부영주택의 폐기물에 대해 "따로 분류되지 않은 화학공업이나 연관공업에 따른 잔재물에 해당"한다며 "관세율표의 해석에 관한 통칙 제1호 및 제 6호이 규정에 따라 제3825.90.0000호에 분류"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폐기물의 수출입품목분류번호(HS Code)는 중화석고(Gypsum)를 뜻하는 '2520.10-1000'로 신고됐다. 4항차도 '2520.10-1000'으로 신고한 뒤 수출했다. 이로 인해 "폐기물 위장수출" 등의 지적이 나왔다.
중앙관세분석소는 '분석시험보고서'의 '품목분류 검토' 항목에서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그 처리에 관한 법률'과 바젤협약, 관세율표 등을 근거로 분석시험의 대상이 된 폐기물은 "화학산업 공정에서 발생한 폐석고"나 "따로 분류되지 않은 화학공업이나 연관공업에 따른 잔재물", "화학공업이나 그 연관공업에서 발생한 그 밖의 폐기물"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렸다.
이는 필리핀에 수출한 폐기물은 제대로 중화된 폐석고조차도 아니라는 얘기다. 낙동강환경유역청의 사실조회 회신 결과, 폐석고는 '시멘트 응결 지연제'라는 최종 제품만 수출입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폐석고의 최종제품이 아닌 토지개량제, 매립용 등으로 수출하는 것은 제한된다. 바젤협약도 폐석고 성분의 유해정도에 따라서 '수출입규제폐기물'과 '수출입관리폐기물'로 구분하고 있다.
▲ 부영주택의 폐기물을 수입한 필리핀의 'BTBD 벤처스'가 지난 2018년 12월 금송이엔지와 삼원환경에 보낸 'Notice of Complaint'. 이 업체는 "우리는 당신의 석고 제품이 아주 유해한 폐기물이라고 의심한다”라고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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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도 지난 2019년 11월 23일 <잠발레스에서 압수된 한국의 독성 폐기물 선적>(Toxic waste shipment from South Korea seized in Zambales)이라는 기사에서 "한국에서 (필리핀 루손섬의) 잠발레스에 도착한 상선에서 5만 3000톤의 독성 물질을 압수했으며, 이 물질은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유해한 방사능을 함유한 비료의 폐기물인 인산석고이며, 이는 필리핀 당국이 수입을 허용하는 재활용 가능 물질이 아니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특히 덴마크의 선박회사 인테그리티 벌크(Integrity Bulk)는 국가 간 이동이 금지된 유해 폐기물을 필리핀에 보낸 혐의(폐기물관리법 위반)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이용학 부영주택 대표 등을 창원지검에 고소했고(2020년 9월), 손해배상청구소송도 제기했다(2021년 7월).
인테그리티 벌크사는 고소장에서 "부영이 선적한 폐석고는 국제법상 국가 간 이동이 금지된 유독성 폐기물인데, 해당 화물이 유독성 폐기물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필리핀 현지로 운송하도록 했다"라고 지적했다. 한 중국 선박회사도 지난 2019년 11월 부영주택의 폐기물 5만 톤을 필리핀에 운송했다가 필리핀 당국으로부터 선박 몰수 조치까지 당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을 검토했다는 보도도 나왔다(관련기사 : "폐석고 운송 혐의로 선박 몰수"... 부영그룹 또 피소 위기 https://url.kr/9hu125).
▲ 관세청의 직속기관인 중앙관세분석소의 '분석시험보고서'. 부영주택이 필리핀으로 수출한 1항차 폐기물을 "화학공업 잔재물"(제3825호)이라고 판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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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그리티 벌크사의 2심 재판을 대리하고 있는 이정훈 변호사는 검찰과 1심 법원의 판단에 대해 "시멘트 대체원료나 공유수면매립재로 제한없이 수출할 수 있다고 본 것은 관련법령을 오해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폐기물이 재활용되는 방법은 수출국과 수입국이 다를 수 있으나, 최종 제품으로 제조되지 않은 이상 바젤협약,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그 처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수출입이 제한되고, 수출허가 또는 신고절차를 거쳐야 한다"라며 "최종제품으로 제조되지 않은 폐기물을 마치 최종제품인 것처럼 신고해 수출하는 것은 위법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중화처리는 중간처리에 불과하고, 재활용해 제조한 최종제품만이 제한없이 수출이 가능한데, 폐기물관리법은 수출이 가능한 최종제품으로 시멘트 응결지연제만 정하고 있다고 해석된다"라며 "흙과 섞여 있고, 정제처리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아 최종제품으로 제조된 적이 없는 폐기물을 HS코드 '2520.10-1000'의 제품으로 신고하고 수출한 것은 위법이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진행중인 2심 재판에서 폐석고를 제대로 중화처리조차 하지 않았다는 중앙관세분석소의 분석시험보고서가 처음 제출됨에 따라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주목된다.
[관련기사]
[단독] 한국 비료공장 유해폐기물,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4년 넘게 방치 (https://omn.kr/229kd)
[단독] 필리핀 환경관리국 "민다나오섬 방치 유해폐기물 소유주는 부영"(https://omn.kr/22bwg)
'부영' 손 들어준 환경부 "유해폐기물 필리핀 방치? 아니다" (https://omn.kr/23lg6)
[최병성 리포트] 폐암 유발 독성 쓰레기로 아파트 짓는다? 5시간 추격전 (http://omn.kr/1rf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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