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영상이 아직 조금은 어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다가 최근에 그리스 현지 풍광과 그리스 미녀가 모델로 등장하는 1분짜리 올리브오일 광고를 보게 됐다. 매력적 광고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경악하게 된 건 그 다음이었다.
비디오는 라디오스타를
AI는 광고업계부터 죽였다

현지 로케이션과 실제 미녀는커녕 AI로 1분 만에 만든 영상이라는 것이었다. 실사 촬영이라면 한 달 걸릴 프로젝트를 1분 만에 뚝딱이라니. 이 광고 영상은 AI 기술이 더 이상 어설픈 대체재가 아님을 선언하고 있었다.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이 업계 생태계를 순식간에 위협하는 ‘쓰나미’였다. 모델도, 촬영 스태프도, 음향 스태프도, 특수효과 스태프도, 조명 스태프도, 현지 로케이션 지원 스태프도 모두 필요 없다. AI 잘 쓰는 똘똘한 감독 한 명이면 더 이상의 자본과 인원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AI가 생산한 유려한 영상은 수억 원 예산과 수십 명 인력이 투입되던 기존 제작 환경을 단숨에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어버린 증거물이었다. 지금 광고 및 영상 제작업계는 단순히 효율화의 바람을 맞는 것이 아니라 생존 기로다.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절규 섞인 목소리는 이 위기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한 베테랑 종사자는 버티고 버티다 폐업신고를 했다. 10년 동안 CF·영상 프로덕션을 운영했다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 같으면 그리스 현지 로케이션 촬영으로 최소 2억~3억 원은 들었어야 할 영상이에요. 그런데 AI로 만들면 2000만~3000만 원에 해결됩니다. 사실상 실비는 몇백 수준이고 나머지는 노하우와 인력에 대한 비용으로 지급되죠. 광고주 입장에선 비용이 10분의 1 수준으로 절약되니 좋은 일이죠. 문제는 영상 제작 관련 업체들은 다 망하게 됐다는 겁니다.”
20여 년 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제작 방식이 바뀔 때도 혼란이 있었지만, 그때와 지금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현장의 판단이다. 그때는 제작비가 줄었어도 관련 업체들이 일은 계속했고 제작 건수가 오히려 늘면서 업계 전체에 큰 타격이 없었다.
그러나 AI는 다르다. “AI는 모든 업체들의 일감을 다 빨아들여 버립니다. 10개 업체가 조금씩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10개 업체 모두 일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에요.” 빅모델을 쓰는 메이저 CF는 그나마 제작되지만 비중이 전체에서 크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심지어 이 빅모델 광고조차도 AI로 제작하려는 시도가 늘면서 촬영비와 스태프 인건비, 모델 거마비 등의 비용이 빠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AI 영상 전문을 내세우는 프로덕션도 등장했지만 이는 곧 1억 원 받던 제작비를 2000만~3000만 원에 해야 하는 ‘제 발등 찍기’나 다름없다.
재정적 타격은 이미 현실화했다. “올해 우리 회사는 예년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상반기에 그나마 많이 했던 덕이에요. 하반기 들어서는 AI 제작이 심해지면서 일이 확 줄었습니다. 문제는 예년 매출을 해냈는데도 적자예요.” AI 때문에 광고주들이 실제작 건들의 제작비까지 줄였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을 해도 예전처럼 남길 수 없는, 오히려 적자가 나는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은퇴를 고민하는 베테랑들이 늘고 있다.
AI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기술 쓰나미다. 현장 종사자들의 숙련된 노하우와 수십 년간 쌓아온 전문성이 순식간에 10분의 1 비용으로 대체되는 이 미증유의 위기 앞에서 업계와 정부 모두가 생존을 위한 ‘공동의 숙제’를 안고 있다.
초와 분 단위로 승부를 보는 광고업계와 달리 러닝타임 두툼한 드라마와 영화는 아직 그래도 한발 떨어져 있다. 하지만 AI의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 영화 ‘범죄도시’를 연출한 강윤성 감독이 2025년 만든 영화 중에 ‘중간계’라는 작품이 있다. 처음부터 AI 기술을 도입해 만들자는 프로젝트였다.
지난봄에 영화를 찍을 때만 해도 주요 등장인물인 괴물 크리처는 발목 아래를 보여주지 않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AI 기술이 어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름이 되자 구현 가능해졌고 촬영을 마치자 구글 나노바나나 프로가 등장했다. 상상 그 이상도 구현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매일매일 아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AI의 영상 기술력은 진화하고 있다.
AI는 도구일 뿐이고 인간은 그 도구를 가지고 창의적 생산을 해야 한다는 말을 종종 한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 창출 영역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자리를 잃을 수많은 창작자와 기술 인력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과 재교육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AI로 불가능한 인간만의 창의성을 새로 정의해야 할 것 같다. AI가 한국의 콘텐츠 제작 생태계 전체를 붕괴하기 전에 ‘위기 돌파’를 위한 혁신적인 로드맵을 고민해야 할 때다.
어수웅
조선일보에서 문학, 영화, books 등 문화부 기자를 오래 했다.
지은 책으로 ‘탐독’ ‘파워 클래식’ 등이 있다.
주말뉴스부장, 문화부장, 여론독자부장을 거쳐
현재 논설위원을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