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뼈아픈 내 오판의 순간들... [박소령 퍼블리 창업자 인터뷰]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5. 10. 2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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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령 퍼블리 창업자(사진제공:©폴인, 송승훈 )
성공 스토리와 자기계발서 일색인 국내 서점가서 한 창업가의 실패담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주인공은 박소령 퍼블리 창업자. 지식 콘텐츠 구독 서비스를 표방한 퍼블리는 한때 누적 유료 구독자 수가 1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잘나가는 회사였다. 그러나 2020년대, 스타트업 빙하기가 찾아오면서 회사는 급격히 흔들렸다. 갑작스러운 위기에 대응하고자 내린 결정들은 오히려 독이 됐다. 한계에 부딪혔다고 생각한 박 창업자는 2024년 회사를 매각했다. 그리고 10년간 기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내렸던 오판의 순간을 묶은 책 ‘실패를 통과하는 일’을 내놨다.

Q. 본인의 실패 경험담을 책으로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텐데.

A. 처음에는 나 자신을 치유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글을 회사 경영 당시 도움을 줬던 지인들에게 공유했다. 글을 읽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혼자만 보고 끝내지 말고 밖에 공유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처음에는 고민했다. 솔직한 경험이 담긴 글이라 어떤 분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내용도 있었다. 그러던 중 많은 도움을 줬던 업계 선배가 “이런 콘텐츠가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10년 동안 회사를 운영하면서 우리 사회에 받은 것들을 돌려주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을 남겼다. 대표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해 책으로 새롭게 쓰기로 결심하고, 8개월 동안 글을 썼다.

Q. 매각 직전 회사는 어떤 상황이었나?

A.2023년 6월, ‘여기까지인 것 같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1년 안에 매각하거나, 아니면 회사가 파산이나 청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회사에 현금은 꽤 있었다. 퍼블리는 마케팅 비용을 최소화해서 연간 단위로 영업이익이 나는 구조를 만들어 논 상태였다. 비용을 쥐어짠다는 것은 매출 성장도 포기한다는 의미였다. 어느 정도 성장성을 내려놓고 안정적으로 이익을 확보하는 비즈니스를 굴리고 있었다.

그만두기 전까지는 다음 라운드 투자를 생각했었다. 투자 환경이 얼어붙으면서 손익분기점(BEP)을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퍼블리와 커리어리에 이은 채용 SaaS ‘위하이어’를 출시해 매출을 내고자 했다. 그러나 채용 SaaS를 적극적으로 영업했는데 잘 안됐다. 시장에서 원하는 제품이 아니었던 거다. 깜깜한 터널을 가는 느낌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만 쌓였다. 2023년 6월 이후 1년을 더 버티고 회사를 매각했다.

Q. 퍼블리가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창업자로서 내린 ‘잘못된 의사결정’이 원인이었다는 표현이 인상 깊었다.

A. 책에 나오는 10개 챕터 중 한 개를 제외하고는 전부 잘못된 결정에 관한 내용이다.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나오는 잘못된 의사결정이 뼈아팠다.

투자를 받고 나서 회사의 무게중심을 퍼블리에서 링크드인 느낌의 커리어리 서비스로 바꿀 때의 일이다. 커리어(Career)와 퍼블리(Publy)를 합쳐 채용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다. 채용 서비스 시장이 크다 보니, 콘텐츠 서비스인 퍼블리보단 커리어리를 키워야 회사가 더 성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커리어리 중심으로 가자’라는 결정을 내리고 2년 동안 한 일은 가슴 밑바닥에서 우러나와서 한 게 아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마음은 사라지고 어느 순간 눈도 멀고 귀도 멀었다. 유니콘이 되고 싶은 욕심, 잘나가는 회사를 만들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혔다. 동시에 투자사와 이해관계자, 팀원들에게 좋은 대표, 잘나가는 대표로 칭찬받고 싶었다. 그런 욕심들이 맞물리다 보니 어느 순간 창업자로서 일하는 게 아니라 전문경영인처럼 일하고 있더라.

창업자마다 생각이 다르고 스타일이 다르지만, 퍼블리는 어떤 목표나 목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었다. 콘텐츠를 너무 좋아하니까 콘텐츠 사업을 하고 싶어서, 사업에 뛰어들기 위한 수단으로 창업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콘텐츠가 아닌 채용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욕심에 눈이 멀었던 거다. 그 상태에서 빠져나와 주체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2년이 걸렸다. 사업에서 2년은 너무 긴 시간이다. 대표가 2년 동안 눈이 멀어 있으면 많은 게 망가진다.

Q. 어려움 속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나. 옳은 판단과, 잘못된 판단의 차이는 무엇이었나.

A. 2020년 연말에 퍼블리 콘텐츠 서비스 사업 리더를 겸임하며 9개월을 살았던 시기다. 책을 통틀어 유일한 성공 경험이다. 실패한 결정과 비교해보니 차이점이 하나가 나왔다. 바로 내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서 결과까지 냈던 시기다. 당시 결과가 설령 안 좋더라도 만족한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 자주 빠지는 함정이 있었는데, 스스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시장에서 “이런 게 잘된다”는 말에 너무 휩쓸리는 거였다. 콘텐츠 사업만 했을 때는 시장 선두주자였고 따라 할 곳이 없었다. 그런데 채용 시장으로 넘어오니 상황이 달랐다. 워낙 큰 시장이고 경쟁자가 많고 사례가 많앗다. 보고 배울 게 훨씬 많은 시장이었다. 외부에서 말하는 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더라. 휘둘리다가 내린 결정, 스스로 짜낸 결정이 아닌 결정들은 다 후회가 많이 남았다. 전시 (戰時)CEO와 평시(平時) CEO란 개념으로 책에선 설명했다. 전시 CEO는 모든 걸 CEO가 끌고 가고, 평시 CEO는 의견을 듣고 결정을 내린다. 당시 9개월은 내가 전시 CEO로 살던 시기다. 결과가 안 좋았더라도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로 전적으로 내 걸 쏟아부어서 달려봤다’는 느낌이 너무 강렬했다.

Q. 갑자기 커리어리 등 채용시장에 뛰어든 계기는 무엇인가.

A. 변천사가 있다. 원래 퍼블리라는 정기 구독 서비스를 내놨을 때, 마케팅 비용을 써서 고객을 데려오는 구조를 만들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구글 광고를 많이 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광고에 의존해서 고객을 데려와야 하나’ 싶었다. 우리만의 자체 채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 ‘퍼블리 뉴스’를 만들었다. 무료 서비스로, 선별된 사람들만 넣어두면 내 피드에 알찬 정보가 채워지는 걸 목표로 했다. 사람들을 많이 모아서 일부가 퍼블리 멤버십 서비스를 결제하도록 만드는 유입 창구, 깔때기를 만들고 싶었다.

퍼블리 멤버십 콘텐츠가 일에 관련된 내용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링크드인 같은 느낌이 났다. ‘기회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퍼블리 뉴스 서비스를 링크드인처럼 만들자고 해서 2021년에 투자를 받았다.

회사 매출의 J커브(급성장)를 만든 건 퍼블리 멤버십 서비스가 잘돼서였다. 구독자 1만 명을 넘기고서도 계속 구독자가 올라갔다. 문제는 유료 콘텐츠 분야의 경우 시장 크기에 한계가 있었다.

채용 커뮤니티 서비스는 링크드인이 글로벌로 큰 시장이라는 걸 증명했다. 국내도 곧 구인 공고를 보고 지원하기보다는 이력을 올려놓으면 DM을 받고 지원하는 시장이 열릴 것 같았다. 시장도 컸고, 회사가 가진 돈도 충분했다. 사실 콘텐츠 사업을 하면서 시장이 너무 작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커리어리를 제대로 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Q. 실패를 통해 배운 교훈이 있다면.

A. 창업하면서 얻은 교훈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핵심은 책의 에필로그에 녹여놨다. 가장 중요한 건 ‘내 몸에 맞는 옷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유명 명품 브랜드가 큰 유행을 타도 나한테 안 어울리면 그 옷을 입을 이유가 없다.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 옷, 자신감이 스스로 생기는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업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업을 할까 고민할 때 시장이 뜨니까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나한테 잘 맞는가, 내가 원하는 게 맞는가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막판에 그걸 놓쳤던 시기가 뼈아팠다. 주관이 확실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나이가 들면서 어릴 때보다 남들의 시선이나 눈치, ‘잘해야 되겠다’는 압박에서 자유로워졌다. ‘뭔 상관이야’ 하면서 덜 신경 쓰게 됐다. 그게 어릴 때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때는 없었다. 학교 교수님에게 잘 보이고 싶을 때도 있었고, 스스로 자꾸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을 지정하고 최선을 다했다. 물론, 결과가 좋았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행동들 하나가 스스로를 엄청 갉아먹는 행동이었다.

Q. 창업 선배로서 실패에 좌절하는 창업자들에게 들려줄 조언이 있다면?

A. 상황에 따라 조언이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회사가 잘 나가 질주하고 있을 때는 주변에서 조언을 해도 잘 안 들린다. 너무 힘들 때도 주변에서 뭐라 하는 게 안 들린다.

지금 돌이켜보면 실수를 할 때마다 주변에서 조언을 해줬다. 당시에는 하나도 귀에 안 들어왔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조언이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때 필요한 점을 하나 말하자면 혼자 생각하지 말라는 거다. 조언자 그룹을 만드는 게 좋다.

대학원을 졸업할 때 마지막 수업에서 교수님이 해주셨던 말이 있다.

“너희가 사회에 다시 돌아갈 테니까 꼭 만들어야 하는 게 있다. 비밀을 다 털어놓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가족에게도 이야기못하고 친구들에게도 이야기 못할 게 분명히 생길 거다. 이해관계가 전혀 없고 정말 진실된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라”

교수님 말이 정말 인상 깊었다. 그런 사람을 붙잡고 이야기하는 것만 해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조언을 얻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혼자 다 싸매고 있으면 안에서 곪을 뿐이다. 압력이 꽉 차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압력이 빠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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