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남은 추석, 오늘은 국가기념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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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 기자]
추석은 모두가 기다리는 명절이었다. 일제 치하 배고프던 시절, 그날만은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 집에서 빚은 밀주도 추석 때만은 묵인했다고 한다. 서울 등 객지로 간 식구들도 추석엔 고향에 모두 모여 웃음꽃을 피웠다.
이러한 분위기는 해방이 돼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집안 어른들은 더 분주했다. 가난한 살림에도 추석명절 상차림에는 정성을 다했다. 대추, 밤, 사과, 배, 감 등 5가지 과일은 반짝이는 놋쇠 위에서 위엄 있게 보였다.
조청과 송편, 시루에 찐 편은 엎어 상에 올렸다. 식혜도 만들었다. 5가지 나물색은 선명했다. 다시마도 튀겨 7장을 포갰다. 차례상에는 손바닥만한 삶은 농게도 자리했다.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아버지는 할아버지 따라 피라미드식으로 조성된 선산에 올라 약주를 따랐다.
▲ 5년 전 집에서 추석에 차린 차례상, 증조부까지 차례를 올리던 모습. |
ⓒ 이혁진 |
해방과 6.25 전쟁 이후 월남해서 아버지는 추석 명절을 소중히 여겼다.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 생사 여부도 딱히 모르는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고향에서와 같이 예를 갖춰 차례를 지냈다.
추석이 임박하면 나도 마음이 급해진다. 일주일 전부터 추석 제수를 준비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이다. 아버지는 추석 전날 모든 과일을 손수 닦고 밤은 직접 쳤다.
차례는 장손인 내 기준으로 증조까지 올린다. 아버지 기준으로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까지. 이렇게 집에서 차례를 지내면 그게 끝이 아니다. 전곡에 모신 어머니 묘소도 성묘했다.
하지만 내게 시집 온 아내는 죽을 맛이다. 과일을 제외하고 준비하는 것도 10가지가 넘는다. 손을 던다고 나는 전 부치기를 전담했다. 이것으로 친적들에 전문가 소리까지 들었지만, 아내가 감당하는 고행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이렇게 틀에 갇혀 차례를 지내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송편도 직접 빚는 가정은 거의 없다. 우리 집만 해도 제수를 상당히 간소화했다. 주과포 정도를 준비하고 되도록 일손을 줄이고 있다. 즐기던 윷놀이도 시나브로 자취를 감췄다.
▲ 남북 추석 차례상 비교해 보니 추석을 앞둔 2018년 9월 17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한국문화재 재단 주최로 열린 '어서와 추석 애(愛) 한국의집은 처음이지'에서 허진 북한요리연구가가 북한 함경도·강원도식 차례상(왼쪽)과 서울서민식 차례상을 비교해 보여주는 모습. 허씨는 북한 차례상에 신위가 없는 점, 고사리나물 대신 고구마 줄기, 커다란 송편 등을 차이점으로 꼽았다. |
ⓒ 연합뉴스 |
할머니는 해마다 추석 즈음 감을 챙겨 아버지(당신 아들)를 통해 외가에 보냈단다. 어렸던 아버지는 감이 무겁고 어린 마음에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지긴 했어도, 외가에 도착하면 늘 환대를 받았다며 그 시절을 기쁘게 회상하곤 하신다.
북한이 남한보다 더 명절 분위기... 추석마다 모이는 실향민들
실향민 2세인 나는 아버지 뜻을 이어 추석 명절의 의미만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차례를 지내는 집안의 수고로움을 격려하고 손위 어르신들께 간단한 선물을 나누는 풍습은 애들에게도 물려주고 싶다.
▲ '고향 떠날 땐 청춘이었는데' 지난해 추석인 9월 29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에서 고령의 실향민이 북녘 선조들을 향해 절을 올린 뒤 이동하고 있다(자료사진). 2023.9.29 |
ⓒ 연합뉴스 |
▲ 개풍군 중면 실향민들이 추석을 앞두고 김포 검단에서 망향제를 드리고 있다. |
ⓒ 이혁진 |
북한에서는 추석이 하루만 명절(휴일)인데, 남한은 3일이나 내리 쉰다는 것이다. 북한은 당일 벌초하고 묘지에서 차례를 지내기에, 그 하루도 짧고 바쁘다고 한다.
또 하나는 남한은 추석 명절에 쉬거나 여행을 가는 등 연휴 분위기인데 반해, 북한은 좀 더 경쟁적이라는 것. 가족들이 모여 전을 부치고 술과 음식을 장만해 조상을 기리는데, 동네 중 누구의 집이 음식을 더 잘 차렸는지 경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더불어 원래는 김일성, 김정일 동상에 인사를 해야 하지만, 이날만은 이들 동상에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조상이 수령보다 더 중요한, 아주 큰 명절로 친다는 것이다.
탈북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북한이 남한보다도 옛 추석 명절 분위기가 물씬 나는 것 같다. 한 탈북민은 "추석은 북한 정권이 주민 다독이는 데 활용하는 일종의 정치적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이 말하는 사회주의나 독재 체제와 추석이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옛날부터 내려오던 전통이기에 추석 명절을 예외적으로 특별히 정권이 묵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탈북민을 포함한 대다수 탈북민들은, 한국에 온 뒤에는 북한에서와 같은 모습의 추석은 쇠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북에 부모와 가족을 두고 온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다. 또한 한편으론 생계가 급하고 먹고살기가 여의치 않은 현실적 여건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탈북민들은 추석을 맞아 집에서 차례를 지내지 않고, 추석을 전후해 임진각 망배단을 찾아 고향인 북을 향해 차례를 드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 추석을 앞두고 어머니 묘지에서 간단히 차례를 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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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아이들을 데리고 이달 초에 미리 어머니 묘소에 다녀왔다. 95세인 아버지는 이미 연로하시고 이동도 힘에 부치셔서, 약 3년 전부터 성묘를 하지 못하고 계신다. 묘소에 간 우리는 현장 사진을 찍어 아버지께 보내드렸다.
▲ 개풍군민들은 매년 강화평화전망대 망배단에서 고향의 선부조를 위한 망향제를 올리고 있다. |
ⓒ 이혁진 |
이런 외로움을 공유하는 실향민들도 이제는 거의 돌아가시고 없다. 아버지 고향 학교 동창들 중 전쟁 당시 총 37명이 한국에 왔는데, 현재 살아있는 분은 아버지 포함해 3명 뿐이라 한다(관련 기사: 실종된 딸 찾아 25년 헤맨 그 마음, 우리는 잘 압니다 https://omn.kr/2a0ve ).
'이산가족의 날' 기념일 지정은 명절 분위기를 되살려보려는 의미와 함께, 한편으론 여전히 북녘에 고향이 있고 가족이 남아있는 이산가족들이 추석을 가장 큰 명절로 기억하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
올해 이산가족의 날은 15일이다(제2회). 노쇠한 95세 아버지 등을 보며, 언젠가 아버지가 고향에 돌아가실 수 있기를 아들인 나도 함께 바라는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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