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기' 성공한 국힘, 용산은 더 궁지에 몰렸다?
[곽우신, 남소연 기자]
이변은 없었다. 국민의힘은 16일 펼쳐진 부산광역시 금정구청장과 인천광역시 강화군수 재보궐선거에서 모두 승리하며 '수성'에 성공했다. 당초 국민의힘의 '텃밭'으로 불리던 지역구였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여당이 가져가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조건이 이 지역구들을 '격전지'로 탈바꿈시켰고, 투표함을 열 때까지 국민의힘의 '낙승'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바로 용산 대통령실, 그리고 김건희 여사가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는 재보궐선거 기간 동안 '당정일체' 대신 '거리두기'를 택했다. 친윤계를 중심으로 한 당내 일각의 반발을 감수하고서라도 수시로 용산과 김건희 여사를 향해 비판적 메시지를 내놨다.
위험한 승부수였지만, 결과적으로 야권의 정권 심판론을 뚫어냈다.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이 불거지고,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명태균씨의 이어지는 폭로가 여권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가운데 이같은 '디커플링' 덕분에 치명타를 피한 셈이다. 이로써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는 리더십 위기를 잠시나마 넘길 수 있게 됐다. 도리어 수성에 성공했음에도 용산 대통령실이 정치적인 압박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 부산 승리에 한숨 돌린 한동훈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를 예상보다 큰 격차로 국민의힘이 승리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김건희 여사 문제 해결을 압박한 한 대표는 안도의 한숨을 돌리게 됐다. |
ⓒ 남소연 |
당 안도 마찬가지이다. 전당대회 기간 동안 '국민의 눈높이'를 내세우며, '제3자 특검' 등의 대안을 제시했으나 정작 원내 설득이 쉽지 않았다. '친한계'의 입지는 친윤계에 비해 좁았고, '원외 당 대표'가 입법으로 성과를 보여주는 것도 어려웠다. 심지어 당 지도부라고 할 수 있는 '최고위원회' 장악조차 온전치 못했다.
무엇보다 용산 대통령실이 한동훈 대표에게 공간을 거의 열어주지 않았다. 한 대표의 탄생을 막기 위해 여당 전당대회 기간에 펼쳐졌던 수많은 촌극의 배경이 '용산'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당선되고 나서도 용산과 한동훈 지도부 사이 갈등은 반복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밥을 먹느냐, 행사장에서 마주치느냐 등의 문제가 여론의 관심사가 되어 언론 지면을 장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야심차게 한 대표가 제시한 '여야의정 협의체'가 출범조차 못하는 데에도 용산의 입김이 크다. 협의체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두고서도 용산은 한 대표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권성동, 나경원 의원 등 당내 친윤계의 견제도 계속됐다.
여의도에서는 이 때문에 소위 '김옥균 프로젝트' 시즌2의 이야기마저 떠돌았다. '김옥균 프로젝트'는 지난 전당대회 당시 여의도에 돌았던 소문으로, '3일 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의 주인공 '김옥균'에 한동훈 대표를 비유한 것이다. 혁명을 꿈꾸고 정변을 일으켰으나 허무하게 무너진 김옥균처럼, 한동훈 대표 체제 역시 얼마 못 가 일부 최고위원과 당내 친윤계의 합작으로 무너질 것이라는 시나리오였다. 이준석 체제를 붕괴시키고 당 대표에서 그를 쫓아냈던 이력이 있기에, 같은 역사가 용산에 의해 반복될 개연성도 높았다.
한동훈 대표가 친한계를 규합하며 당에 뿌리내리는 동안 잠시 정가에서 사라졌던 이 프로젝트 소문이 재보궐선거 기간에 들어서며 재등장했다. 부산 금정구청장이나 인천 강화군수 중 한 곳이라도 수성에 실패할 경우, 패배 책임을 한동훈 대표에게 뒤집어씌우고 비상대책위원회를 띄울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구체적으로 '친윤계 중진' 의원이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했다.
당장의 위기 벗어난 한동훈 리더십, 하지만 과제가 많다
하지만 이 같은 시나리오는 당분간 다시 캐비넷에 넣어둘 수밖에 없게 됐다. 용산에 비판 목소리를 내는 한동훈 대표를 향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던 친윤계도 당분간은 목소리를 낮출 수밖에 없게 됐다. 반면, 한동훈 대표는 지금의 기조에 탄력을 더 받을 수 있게 됐다.
▲ 한동훈 대표, 부산 금정구청장 후보 지지 호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5일 오후 부산 금정구 대한노인회 부산 금정구지회 건물 앞에서 시민들에게 윤일현 금정구청장 보궐선거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동훈 대표에게 '장밋빛' 전망만 펼쳐져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대표 입장에서는 앞으로 넘어야 할 무수한 산들 중에서 이제 하나를 넘었을 뿐이다. 용산이 길을 열어주지 않으면, 한 대표는 자체적으로 길을 만들어내기 곤란하다. 여러 이벤트를 통해 세를 넓히고는 있지만, 여전히 당내 다수파는 친윤계이다. 당장 원내사령탑도 '친윤계'인 추경호 원내대표이다.
집권여당이 용산 대통령실과 무한히 대치할 수도 없다. 윤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많이 남았다. 다음 대통령 선거가 멀었다는 것, 당분간 큰 선거가 없다는 것은 한동훈 대표의 위세가 지속가능할지 의문을 남긴다. '적절한' 수준의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용산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최선이지만, 용산이 그런 길을 택할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차기 대권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유력 대선 주자라는 후광이 희미해지면,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마저 줄어들지 모른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친윤계가 '김옥균 프로젝트' 시즌3를 언제 꺼내들지 모른다.
한동훈 대표 앞에 산적한 과제 중 당장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김건희 여사 특검을 향한 야권의 압박은 멈추지 않을 텐데,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만 기대서는 반전을 도모하기 어렵다. 용산을 향해 윽박을 지르든, 어르고 달래든, 이제는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야 할 시간이다. 친윤계를 설득하든 구워삶든, 세 확장을 통해 원내 다수파가 되어야만 한다.
"용산, 한동훈 끌어내릴 수 없게 됐다"... 공은 다시 용산으로?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이번 재보궐선거는 '이기면 한동훈 덕, 지면 윤 대통령 탓'이었다"라며 "한 대표가 본인의 힘으로 이긴 셈이다. 당분간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그는 "용산에서 한동훈 체제에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대통령이 그를 교체할 힘이 없다"라며 "친윤계가 민심을 모르고 한 대표를 견제했지만, 한 대표 본인은 오히려 재보궐선거 현장을 뛰면서 변화에 대한 요구를 느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대통령이 엄청 코너에 몰려 있기 때문에 한 대표와의 독대도 예정대로 이뤄질 것"이라며, "당장 엄청난 합의나 성과를 도출하기는 어렵지만, 용산에서 한 대표의 공간을 넓혀줄 수밖에 없다. 특히나 검찰이 김건희 여사 불기소 처분을 내리게 된다면 남는 선택지는 더 없어진다"라고 꼬집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만찬 뒤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 대통령실 참모진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2024.9.24 |
ⓒ 대통령실 제공 |
그는 "선거에서 이겼다고 해서 '역시 국민들이 대통령을 좋아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느냐"라며 "현재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보면 보수 지지층에서도 실망감이 강하다. 그런데 그 실망감을 불식시키고 지지율을 회복하는 방향이 '더 보수화'일 수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건희 여사 관련 문제와 이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가 바뀌어야 지지율이 회복할 수 있고, 한 대표도 이 점을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통령이 한 대표를 끌어내릴 수 없게 됐지만, 아무 것도 안 하고 버틸 수도 있다"라며 "용산에서 안 좋은 방향 쪽으로 '큰 결심'을 하는 셈인데, 대통령 임기가 2년 반이나 남은 상황에서 국정이 잘 안 돌아가면 잘잘못을 떠나서 여당에 대해서도 민심이 더 돌아설 수밖에 없다. 결국 공은 한 대표가 아니라 용산에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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