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흑백요리사

이경진 2024. 10. 24.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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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떠올린 '최애' 요리사의 이름들.
「 손맛피아 · 쎄니에 최세윤 셰프 」
‘가정식’이라는 장르는 늘 따숩다. 그 어떤 국가의 이름에 붙이든 온기가 느껴진다. 서울 효창공원 근처에 자리 잡은 ‘쎄니에’는 전통 북부 이탈리아 요리를 근본으로 이탈리아 가정식 베이스의 다양한 요리를 전개하는 식당. 아이러니하게도 레스토랑 오너이자 헤드 셰프인 최세윤의 요리 커리어는 르 코르동 블루 런던 분교에서 시작됐다. 요리에 대한 열정으로 오른 유학길에서 다국적 요리의 다채로운 맛을 맛봤지만, 정작 그를 매료시킨 건 졸업 후 지인의 소개로 일하게 된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북부 요리였다. 특히 이탈리아 북부 요리가 지닌 부드러운 풍미에 매료됐다. 이탈리아 퀴진이라면 보편적으로 피자와 파스타가 떠오르지만 쎄니에의 메뉴판은 보다 다채롭다. 생선과 고기, 고소한 유제품이 어우러진다. 지금은 재료 수급 문제로 잠시 중단된 메뉴이자, 한동안 쎄니에 시그너처로 활약한 ‘바칼라 만테카토(Baccala Mantecato)’는 그야말로 신세계의 맛이었다. 그토록 ‘홀리’한 요리는 처음이었다. 만테카토는 ‘휘젓는다’는 뜻. 염장한 대구를 마늘로 뽑은 오일을 휘핑하듯 쳐서 만드는 요리 과정이 담겨 있는 이름이다. 숙성한 도우 반죽을 튀겨 그 위에 올려 먹는 만테카토는 한 입만으로 그 진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최세윤 셰프는 소금에 절여 말린 대구를 우유에 부드럽게 녹여낸 후 콩피한 통마늘과 마늘 오일을 믹스해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섞어내는데, 여기에 마리네이드한 오이도 능글맞게 ‘나야 오이~’ 하면서 아삭한 식감으로 치고 들어온다. 이 외에도 맛깔스럽게 구워낸 통 로메인과 부라타 치즈를 곁들인 샐러드, 20겹의 라자냐 등 쎄니에의 다채로운 메뉴는 이탈리아 퀴진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에게도 원초적인 풍미로 다가와 포크를 끊임없이 놀리게 만든다. 뭉근하고 정감 있는 쎄니에 최세윤의 요리들을 넷플릭스에서 직관할 날이 오기를! 김재경(‘미디엄레어웍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와우산 스님 · 미로식당 박승재 셰프 」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계절, 미로식당에서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식당을 찾는 과정은 나에게 하나의 의식처럼 각별하다. 10여 년 넘게 홍대에서 맛있는 커피를 내어주는 ‘커피랩’에서 미로식당의 예약 시간을 기다리다, 시간에 맞춰 와우산에 오를 예열을 한다. 도보로는 등반에 가깝게 느껴질, 마포 13번 마을버스 궤적을 따라 와우산 공원 입구를 돌아 오르다 보면 수많은 가정집 사이에 검박하기 그지없는 작은 식당의 문을 열 수 있다. 간결하고 청결한 내부에서 식당을 지휘하는 사람은 바로 미로식당의 셰프 박승재다. 하루 4시간만 영업하고 예약 없이 방문하면 식사가 어려운 식당에는 소금양념갈비와 소갈비찜, 한우육회, 오징어볶음, 골뱅이무침과 해물부추전, 명란계란탕 등 주점다운 메뉴들이 즐비하다. 미로식당의 단골이 돼 이곳을 10년째 찾고 있는 내가 늘 주문하는 것은 안심탕수육. 미로식당이 처음 문을 열었던 시절에는 없던 메뉴다. 단골손님이 오면, 박승재 셰프가 메뉴에 있던 고기튀김을 탕수육으로 내어준 것이 안심탕수육의 시작이었다. 질 좋은 제주 안심을 튀기고, 오이와 양파, 배추를 탕수와 함께 힘껏 볶는다. 튀긴 고기를 매끈하게 코팅한 미로식당의 탕수육은 특유의 깨끗한 빛깔을 띤다. 육즙이 차고 단단한 힘이 있는 고기 튀김과 달고 시큰한 탕수, 신선하고 푸릇한 생야채까지 어지간한 내공의 화상집에서도 볼 수 없는 절묘하고 완벽한 탕수육이 이곳에 있다. 박승재 셰프와 연이 있어 함께 시장에서 장 보고, 그의 주방을 들어선 적 있다. 신뢰관계가 형성된 오래된 거래처에서 물건을 고르는 방식,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깨끗한 주방 바닥, 기름기 하나 없는 덕트 밑에서 피어오르는 열기까지. 좋은 음식이 만들어질 거라고 확신할 수밖에 없는 주방 장면들 역시 그의 요리를 〈흑백요리사〉 시즌 2에서 보고 싶은 또 다른 이유다. 서홍주(작가, ‘푸어푸어푸어’ 대표)
「 타이 바질 요리사 · 호라파 손승희 셰프 」
호라파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4월이었다. 안온했던 봄날 저녁,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최초의 에드워드 호퍼 개인전 소식에 덕수궁길에 모인 반가운 얼굴들과 소회를 나누던 날. 전시 관람을 마치고 에너지 채울 곳을 찾다가, 미식이라는 주제에 관해서라면 어디서도 빠지지 않는 일행의 추천에 새로 생긴 서촌 태국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말투와 행동에 친절함이 뚝뚝 묻어나던 호라파의 셰프 손승희는 짧은 태국 여행에서 만난 요리책 한 권에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태국의 길거리 음식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그의 요리는 처음 보는 메뉴와 재료로 가득했고, 호라파를 가득 채우는 숯향, 다채로운 향신료와 허브 요리들은 이국적이며 개성 넘치고 볼륨감 있는 풍미로 가득해 일행 모두에게 만족감을 선사했다. ‘호라파’는 푸른빛의 태국식 바질이다. 때로는 태국 요리의 가니시로 바삭한 향긋함을 더하고, 톰얌쿵 수프에서는 눅진한 중심을 잡기도 하는 중요한 식재료다. 손승희는 태국 요리의 본질을 지키되 한국에서 나는 양질의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요리에 뚜렷한 개성을 담아낸다. 첫 방문 이후 수많은 이들에게 호라파를 소개했는데 모두 입 모아 칭찬하는 요리는 ‘카이 룩 커이’다. 노른자가 반숙으로 익도록 섬세하게 튀겨낸 계란에 튀긴 샬롯, 피시 소스, 고수 잎을 얹은 카이 룩 커이는 말 그대로 밥도둑이다. 넉넉하게 내어주는 흰 밥과 함께 먹는다면 눈 깜짝할 새 한 그릇 뚝딱. 돼지기름에 샬롯과 마늘, 생강 그리고 각종 허브가 조화로운 ’후무양’도 빼놓을 수 없다. 오돌뼈의 식감과 젤라틴으로 중무장한, 비장탄에 구운 돼지귀의 매력적인 맛은 먹고 난 다음날까지 생각난다. 호라파가 지닌 또 다른 묘미는 와인 페어링이다. 태국 길거리 음식답게 직관적이고 캐주얼한 와인을 섬세하게 제안해 준다. 본질에 충실하지만 늘 새로운 ‘타이 바질 요리사’가 유명해져 예약이 지금보다 어려워진다면 서운한 일이지만, 부디 더 많은 이들이 이 즐거움을 함께하길 바란다. 서촌의 길 위에서, 싸와디크랍! 김수민(브랜드 PR 매니저)
「 원투쓰리 액션 · 스와니예 이준 」
계급장 떼고 벌인 한 판 요리 전쟁. 오직 맛으로 승부를 보기 위해 매 회 벌어진 요리 대결에서 나를 매료시킨 건 맛 자체보다 요리가 촉발한 행위와 표현, 장면들이다. ‘트리플 스타’의 예술에 가까운 칼질 솜씨부터 에드워드 리가 미션 재료인 두부 조각을 손으로 움켜쥐고 한 입 베어 물던 순간까지. 〈흑백요리사〉 시즌 2가 제작된다면 요리를 행위로 재해석하는 일에 능한, 자신이 요리하는 곳을 무대로 만드는 요리사의 등장을 또다시 기다릴 것이다. 셰프 이준은 10여 년 전 서래마을에 스와니예를 열며 온통 검은 공간에 새카만 바 테이블을 두르고 그 안에 자신의 주방을 펼쳤다. 식사 시간 동안 셰프가 요리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준의 스와니예에서 요리는 처음부터 행위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이준은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메뉴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방식을 사용하거나 각 디시에 에피소드를 담았다. ‘이야기가 담긴 음식’을 표방하며 에피소드 형식을 빌려 한국의 식재료를 새롭게 해석했다. 이를테면 풀내음이 강한, 비슷한 향취를 세계의 다른 허브에서 찾기 힘든 깻잎을 우리는 보통 고기와 곁들여 먹는다. 이준은 깻잎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들기름을 곁들여 디저트 디시를 완성했다. 향이 강한 허브들이 의외로 단맛 나는 재료와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적용한 것이다. 10년 동안 고수한 시그너처 메뉴 ‘서래 달팽이’는 달걀 찜 위에 국내산 달팽이를 올리고 대파로 낸 오일과 시금치, 파마산 치즈 등을 올린다. 을지로 골목의 골뱅이무침과 계란 찜의 감성을 파인 다이닝으로 풀어낸 것이다. 그가 정의하고 재해석한 한식에는 요리와 재료 이야기가 투명하게 담긴다. 스와니예는 근래 신사동으로 이전하며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이번에는 식사하지 않는 사람들도 주방을 볼 수 있는 구조다. 투명한 유리를 통해 외부에서 주방 전체를 볼 수 있는 식당, 그런 식당을 이뤄낼 셰프가 몇이나 될까. 여전히 이준에게 요리란 순도 높은 새로움을 이뤄내는 무대예술이다. 이경진(〈엘르〉 데코 디렉터)
「 어남선생 · 배우 류수영 」
〈신상출시 편스토랑〉(이하 〈편스토랑〉)에 출연 중인 배우 류수영은 한때 ‘1가구 1수영 보급 시급’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인기였다. 류수영은 요리에 익숙지 않은 남자들도 쉽게 할 수 있도록 조리법을 단순화하고, 물가 걱정이 많은 주부를 위해 가성비 좋은 메뉴를 소개한다. 그가 요리사들 사이에서 벌일 대결이 기대되는 이유다. 〈편스토랑〉 5주년 특집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천원의 아침밥’ 프로젝트를 펼치기 위해 대형 불판에 200명 분의 돼지갈비를 올려 완성할 줄 아는 요리인이니까. 류수영은 지금 특히 ‘외국인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맛’에도 고민이 많다. 지난 7월 그는 방한한 할리우드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와 휴 잭맨에게 ‘만원갈비찜’을 대접했는데, 손으로 갈비를 들고 뜯던 라이언과 휴 잭맨은 류수영에게 “배우로 돌아가지 말아요. 요리가 너무 훌륭해요”라며 환호했다. 류수영이 외국인에게 우선 추천하는 한식 역시 제육볶음과 구운 갈비. “약간 매워도 우리 고추장과 간장 양념은 외국인이 충분히 좋아할 수 있는 맛이에요. 특히 갈비는 간 배· 사과· 양파가 들어가니, 단맛이 강한 일본의 야키니쿠나 센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중국 고기 요리보다 세련된 바비큐 맛을 선사할 수 있죠.” 가성비 좋은 메뉴 못지않게 한식에 진심인 류수영이 이같은 방식으로 설계한 ‘K푸드 글로벌화’ 전략에 신뢰와 기대감이 생기는 건 지난 4년간 요리 프로그램을 하면서 “제대로 하고 싶어” 관련 고서와 책을 300권 이상 읽으며 이론과 실전을 고민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는 올 4월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K푸드 강연’을 하면서 그 생각을 발표한 적 있다. “내가 바라는 K푸드 세계화의 가장 좋은 예가 ‘고추장 버터’예요. 레몬 딜 버터처럼 고추장을 섞은 버터로 서양의 파스타도, 한국의 떡볶이도 만드는 거죠. 음식은 다른 문화와 만났을 때 생명력이 생겨요. 중요한 것은 ‘한국어’로 기억돼야 한다는 거죠. 코리언 칠리 페이스트가 아니라 ‘고추장’, 코리언 칠리 페퍼가 아니라 ‘고춧가루’. 이것만 지킨다면 다른 문화와 만나고 부딪치면서 한식은 충분히 발전할 수 있고, 언젠가 우리가 동양의 이탈리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서정민 (〈중앙 SUNDAY〉 기자)
「 신비한 정식 사전 · 정식당 임정식 셰프 」
임정식은 다채로운 레이어를 가진 셰프다. 서울과 뉴욕에 있는 정식당으로 각각 〈미슐랭 가이드〉 2스타를 받은 그가 처음에 정식 카페를 만들 때 클라이언트로 만났는데, 의외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고 여러 번 놀란 적 있다. 그는 표현방식이 독특하고, 철인 3종 경기 같은 운동을 열심히 하며, 가까이에서 함께 일해봐야 느낄 수 있는 매력의 소유자다. 요리란 결국 인간이 만든, 인간을 위한 음식 아닌가. 실력과 테크닉이 출중한 요리사도 인간적인 매력과 따스함을 겸비해야 더욱 훌륭한 요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셰프 임정식이 〈흑백요리사〉처럼 독특한 방식의 경쟁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면 요리를 대하는 방식이나 아이디어 면에서 분명 화제를 모을 것이라 예견하는 이유다. 임정식 셰프의 대표 메뉴인 김밥은 그가 가진 독창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친숙한 듯 친숙하지 않은 김밥! 집게로 고정해 내놓는 ‘슬림’한 형태의 김밥은 독특한 인상을 남기는데, 바삭한 김 부각 안에 밥을 채워 넣어 트러플 등으로 의외의 풍미를 더한 것이다. 또 그는 곰탕을 주제로 한 식당 ‘곰탕랩’을 열 만큼 국물 요리를 좋아해 냉면과 곰탕, 쌀국수에 천착하던 시기도 있었다. 임정식은 가장 일상적인 한국 음식을 정교하게 탐구하고 해체해 의외성과 대담함을 불어넣는 데 일가견이 있다. 또한 경험해 보지 않은 영역에 도전하길 즐긴다. 익숙한 길보다 새로운 길을 택하는 그가 〈흑백요리사〉 시즌 2에 출연한다면?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진다. 물론 그가 도전자로 출연할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들긴 하지만. 김나리(엔알디자인팩토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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