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에 법복 입히는 조계종, 실소가 나온다

허정 스님 2026. 5. 1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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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중국산 로봇에 거금 들여 수계의식, 포교 명분 뒤 본질 실종

[허정 스님 기자]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앞에서 ‘부처님오신날 기념 로봇 수계식’이 열렸다. ‘가비’(迦悲)라는 법명을 받은 휴머노이드 로봇은 수계식에서 인간과 기술의 공존을 위한 윤리 기준 ’로봇 오계’(생명을 해치지 않을 것, 사물을 훼손하지 않을 것, 인간을 존중할 것, 기만하지 않을 것, 에너지 과충전 하지 않을 것)를 다짐했다. 수계식을 마친 로봇이 성큼성큼 걸어서 이동하고 있다.
ⓒ 권우성
최근 대한 불교 조계종의 행보는 파격적이다 못해 당혹스럽다. 휴머노이드 로봇 'G1'에게 '가비(迦悲)'라는 법명을 내리고 삼귀의와 오계(五戒)를 주는 수계(受戒) 의식을 거행한 것이다. 전계대화상은 "로봇 또한 불성이 있다"라고 설하며 수계증 번호(RB2570-02)까지 부여된 계첩(戒牒)을 전달했다.

법성(法性)과 불성(佛性)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채 무정물인 기계에 수계를 하는 것은 불교에 대한 무지(無知)이자 대중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행위다. 이 행사를 주최한 이들은 현대인에게 불교가 효과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포교 방편이라 말하겠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이득보다는 허물이 많은 어리석은 행위에 불과하다.

불교에서 계(戒)를 받는다는 것은 존재의 고통을 스스로 인식하고 그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주체적인 발심(發心)을 전제로 한다. 생명의 존엄을 깨닫고 살생의 업을 자각하는 내면의 작용 없이, 입력된 알고리즘에 따라 반응하는 무정물에게 계를 주는 것은 언어의 유희일 뿐이다. 그들이 기계에게 내린 오계의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다른 로봇과 사물을 훼손하지 말 것

불교의 불살생(不殺生)은 모든 생명에 대한 자비심에 근거하지만, 로봇에게 요구되는 이 규칙은 단순히 '재산 피해 방지'에 불과하다. 기계가 기계를 부수지 않는 것을 도덕적 실천으로 포장하는 것은 기만이다.

둘째, 사람들을 잘 따르고 대들지 말 것

이것은 수행자가 지닌 자비심이나 수행 공동체의 화합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단순히 로봇에게 '노예의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다. 불교는 권위가 아닌 진리에 순응할 것을 가르치지만, 로봇에게 '대들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은 인간이 기계를 편리하게 부려 먹기 위함이다. 수행의 주체가 되어야 할 수계자를 철저히 인간의 하수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에너지를 아끼고 과충전하지 말 것

이 대목에 이르면 실소를 금치 못한다. 불교의 불탐욕은 내면의 욕심을 다스리는 공부지만, 로봇은 스스로 에너지를 탐할 마음이 없다. 충전의 책임은 인간의 몫인데, 그 책임을 기계에 전가하며 과충전을 경계하라는 것은 마치 무정물인 자동차에 기름을 많이 먹지 말라고 훈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넷째, 거짓 정보를 퍼뜨리지 말 것

로봇의 거짓 정보는 데이터의 오류일 뿐, 로봇이 의도를 가지고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니다. 기술적 결함을 도덕적 불망어(不妄語)로 둔갑한 이 조항은 기계적 오류조차 종교적 죄악으로 몰아가는 기만이다.

다섯째, 인간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봉사할 것

이는 불교의 이타행(利他行)이 아니라 인간이 기계를 만든 목적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불교의 봉사는 역지사지에서 나오는 측은심과 무상에서 발심하는 것에서 나오지만, 로봇의 행위는 프로그램의 구동일 뿐이다.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앞에서 ‘부처님오신날 기념 로봇 수계식’이 열렸다. ‘가비’(迦悲)라는 법명을 받은 휴머노이드 로봇은 수계식에서 인간과 기술의 공존을 위한 윤리 기준 ’로봇 오계’(생명을 해치지 않을 것, 사물을 훼손하지 않을 것, 인간을 존중할 것, 기만하지 않을 것, 에너지 과충전 하지 않을 것)를 다짐했다. 탑돌이를 마친 로봇을 스님과 신도들이 둘러싸고 있다.
ⓒ 권우성
이렇듯 억지로 짜맞춘 '로봇 오계'는 발심한 자의 고결한 다짐이나 맹세가 아니라 공장 담벼락에 적혀 있을 법한 '기계 작동 지침'과 비슷하다. 더욱 슬픈 것은 이 로봇이 우리 기술로 만든 것이 아니라 중국산 로봇을 거금을 들여 들여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체성 없는 기계에 성스러운 법의를 입히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며, 계를 지킬 의지도 없는 로봇에 계를 주는 종단 집행부의 모습에서 불자들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최근 종단은 포교와 불교의 대중화라는 명분으로 가벼운 처신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었다. 개그맨에게 법복을 입혀 DJ 역할을 하는 '뉴진 스님' 을 배출한 것이나, 수행자에게 중매를 금한 계율을 어겨가며 사찰을 소개팅 장소로 전락시킨 '나는 절로'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것 등이 그러한 예이다.

1700년 역사를 지닌 조계종이 보여주는 이러한 행태는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이것은 "승가는 풍족해도 수행자는 가난"한 불교 공동체의 아름다움과 욕망을 절제하는 불교 본연의 모습을 훼손하는 일이다.

이러한 종단의 행위들은 종단의 미래 전략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종단은 10년, 100년 뒤 불교가 나아갈 길을 고민하는 싱크탱크를 가동하지 못하고, 대중의 지혜를 모으는 대중공사(大衆公事)를 없애 버렸다.

그리하여 불교가 시대의 고통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현재는 종단의 권력을 가진 소수가 쏟아내는 단발성 이벤트가 불교 행사를 대신하고 있다.

조계종은 로봇에게 오계를 주는 기만적인 퍼포먼스를 중단하고, 이제라도 대중공의를 통해 불교의 참된 정신을 회복하는 길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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