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옷을 입었더라도 원하는 걸 하는 사람
지난해, 21살 신예진은 '희망'이라는 꽃말의 데이지를 품고 2023년 2월 26일부터 2024년 2월 25일까지, 365일동안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여행하며 만난 '삶의 이유를 찾는 여정'을 <너의 데이지>를 통해 풀어나갑니다. '데이지(신예진)'가 지난 1년 동안 여행하며 만난 사람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연재기사입니다. <기자말>
[신예진 기자]
조금씩 가을 냄새가 느껴지는 공기를 맞이하며 불가리아에 입성한다. 뜨거운 여름을 터키에서 한 달 동안 보낸 뒤, 이스탄불에서 육로로 불가리아에 올라섰다.
유럽대륙에 들어선 나의 첫 일정은 유기견 보호소 봉사이다. 우연히 두바이 여행 중 만난 이의 제안으로 불가리아의 작은 마을, 드라거노브트시(Draganovtsi)에 있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일주일간 봉사를 하게 되었다.
진부령 고개처럼 굽이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한 시간 넘게 달렸을까, 멀리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린다. 마침, 아침 산책을 다녀온 보호소장 클레어와 닐이 돌아오는 길이다. 휠체어를 한 강아지, 신체 일부에 상처가 보이는 강아지 등 여러 강아지가 나를 향해 달려와 꼬리를 흔든다.
분명히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을 아이들일 텐데도 낯선 이를 이다지도 반길 수 있을까. 그들이 주는 무조건적 사랑에 울컥함이 밀려온다.
짧게 인사를 마친 뒤, 우린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차 한잔을 마셨다. 생각보다 규모 있는 보호소에 놀랐다. 닐과 클레어에게 언제부터 보호소 일을 시작했는지 묻는다.
▲ 동물보호운동가 닐, 클레어와 함게 유기견 보호소 Everydaystray에서 닐과 클레어는 불가리아 여행 중에 길거리에 버려진 강아지, 총에 맞은 강아지, 몸의 일부가 절단된 강아지, 사람들이 던진 돌멩이를 맞는 강아지 등 길거리 강아지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고 고통에 눈물을 흘렸다. 고통에 대한 연민은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이후 닐과 클레어는 영국을 떠나 불가리아로 넘어와 유기견 보호소 Everydaystray를 세웠다. 길거리 강아지를 구조하고 보호하는 라는 비영리조직이다. |
ⓒ 신예진 |
강아지가 없다면, 나의 삶도 없다... 봉사가 바꾼 삶
"강아지는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야. 이들에게 그보다 더 얻을 수 있는 게 있을까?"
닐과 클레어는 2018년에 영국에서 처음 만났다. 강아지가 없는 삶을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닐과 클레어는, 언제나 삶 중심에 강아지가 있었단다. 닐은 영국에서 학대와 고통받는 강아지를 보호하는 단체에서 봉사하며 강아지 공장 반대 운동을 펼쳐왔다.
클레어 역시 동물 복지를 위해 봉사와 캠페인을 펼치며 강아지와 가까이 살아왔다. 그들은 함께 불가리아 유기견 보호소 봉사를 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그들이 본 충격적인 장면 때문이다.
"길가의 버려진 강아지들은 짧은 쇠사슬로 음식과 물, 머무는 곳도 없이 살아가고 있었어. 거의 숨만 붙들고 있는 거나 죽은 채로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었지."
닐과 클레어는 버려지고, 총에 맞는, 혹은 몸의 일부가 절단된 강아지를 여러 차례 목격했다.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장면들 앞에서 고통의 눈물을 흘렸다. 고통에 대한 연민은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영국을 떠나기로 다짐한 그들은 2019년 불가리아로 넘어왔다. 이후 길 강아지를 구조하고 보호하는 단체인 'Everydaystray' 설립했다. Everydaystray는 불가리아 비영리조직으로 2023년에 정식 허서를 받아 자치단체로 성장했다.
구조된 강아지를 국경너머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400마리 이상의 강아지가 새로운 가족을 만나도록 도왔다.
▲ 도시 훈련을 진행 중인 닐 네일은 영국에서 학대와 고통받는 강아지를 보호하는 단체에서 일하며 강아지 공장 반대 운동을 펼쳐왔다. 이후 클레어와 함께 불가리아에서 유기견보호소를 설립해 운영해오고 있다. 해당 사진은 도시훈련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
ⓒ 신예진 |
강아지 한 마리 한 마리를 생명으로 대해온 그들의 삶이 느껴진다. 그들은 봉사자에게 머물 아파트를 따로 제공하면서도 본인은 보호소에서 강아지와 함께 지냈다. 2년 넘게 보호소에서 강아지들과 함께 살아왔다고,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 어깨를 으쓱한다.
보호소 내의 강아지 이름을 다 익혀갈 즈음, 하루는 도시 훈련을 갔다. 자동차와 사람 소리에 경계를 갖는 강아지에게 도시 환경을 적응시키기 위한 훈련이다. 함께 마을을 걸으며 닐은 말한다.
"일부 사람들은 강아지를 돈으로 보고 있어. 그러나, 강아지는 우리의 동반자야. 함께 삶을 살아가는 존재지."
문득 그의 낡아서 헤진 운동화가 눈에 들어온다. 운동화는 강아지에 쏟은 그의 삶을 말하는 듯하다. 동시에 아침 산책 중 보았던 클레어의 피부가 떠오른다. 그의 피부에는 점인지 질환인지 모를 붉은 반점이 있었다.
어려운 와중에도 강아지를 위해 바쳐온 그들의 삶을 말하는 걸까. 한평생 강아지를 위해온 그들이 만들려는 사회는 어떤 가치를 품고 있을까. 닐과 클레어가 지내온 삶을 헤진 운동화 구멍에 투영하며 닐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 Everydaystray에서 유기견들을 보호하고 있는 닐과 클레어 강아지가 없는 삶을 상상도 할 수 없다는 영국 부부 닐과 클레어는 언제나 삶 중심에 강아지가 있었다. 닐은 영국에서 학대와 고통받는 강아지를 보호하는 단체에서 일하며 강아지 공장 반대 운동을 펼쳐왔다. 클레어 역시 언제나 강아지와 함께 살아오며 닐과 만나 강아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다. |
ⓒ EverydaystrayNGO |
▲ 아침 산책을 준비하면서 애교덩어리 강아지들과 함께 매일 아침이면 산책을 가는데, 보호소를 찾는 이른 아침부터 강아지들은 기지개를 켜며 나갈 준비를 한다.?많은 강아지와 한 바퀴 돌고 나면 한 시간이 후딱 간다. 도는 코스는 보호소 옆에 있는 산인데, 아침 해가 뜨는 풍경과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 유럽은, 정말 아름답다. 한 바퀴 다 돌고 나면, 이번엔 사고로 인해 네다리로 건너지 못하는 강아지들에게 휠체어를 챙구고 함께 산책을 간다. 윌리워크 라고 부르는데, 사고를 당한 강아지들이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면, 그가 인간에게서 받은 상처가 느껴진다. |
ⓒ 신예진 |
EverydayStray 유기견보호소의 봉사는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자, 내게 살아갈 또 다른 힘을 알려주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 개인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해당 기사의 원본 이야기는 기사 발행 후 기자의 브런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daisypath Everydaystray의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url.kr/j82z6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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