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스님들이 그림에 숨겨둔 태극기의 의미
[이완우 기자]
전북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만행산선원사(萬行山禪院寺)는 부처님 오신 날을 며칠 앞둔 이른 아침에 대웅전 앞에는 연등이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이 사찰은 조선시대 승병의 거점이었고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의 공간이었으며 남원 주민들과 기우제도 함께 지냈던 남원 시내에 위치한 평지 사찰이다.
▲ 만행산 선원사 사찰 일주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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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찰 명부전의 본존불인 지장보살 뒤에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인 후불탱화 괘도가 걸려 있다. 명부시왕(冥府十王)이라고도 하는 10위의 지장시왕은 명부에서 지장보살을 호위하며 망자를 심판하는데 제5위인 염라대왕은 저승사자와 함께 유명하다. 이 사찰의 지장시왕도 탱화는 가로 183.8cm, 세로 171cm의 크기이다.
▲ 선원사 명부전 후불탱화 변성대왕 관모 태극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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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탱화의 태극 문양 색채는 음과 양이 녹색과 홍색이다. 음과 양의 태극을 백색의 띠로 선명하게 에둘렀다. 현재의 태극기는 흰색 바탕, 중앙의 청홍백색 태극 문양과 네모서리에 건곤감리(乾坤坎離) 사괘가 배치되어 있다. 선원사 탱화의 태극기는 검은색 바탕의 중앙에 태극 문양이 있고 네 모서리에 현재 태극기의 건곤감리 위치에 이감건곤(離坎乾坤) 괘상이 배치되어 있다.
지장시왕도 하단에 이 탱화의 제작 내력을 쓴 기록이 있다. 이 탱화가 제작된 때는 1917년 11월 5일에서 17일이다. 금어 만총과 상오 및 행은 등 7인의 화원이 화필을 들어 탱화를 조성했다. 이 시기에 이 사찰의 약사전과 대웅전의 탱화도 함께 조성했다고 한다.
▲ 선원사 명부전 후불탱화 변성대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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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에는 지장보살이 본존으로 중앙에 있고, 지장보살 후면에 지장시왕도 탱화가 있으며, 본존불 좌우에 흙으로 빚은 지장시왕 조상이 5위씩 배치되어 있다. 이 선원사에서 1917년에 제작된 지장시왕도 탱화를 봉안하기 위해 1963년에 명부전을 건축하고 지장보살을 본존불로 모셨다. 지장시왕 조상은 완주 위봉사에 안치되어 있던 지장시왕 소조 10위를 옮겨왔다.
▲ 선원사 명부전 지장시왕 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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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장시왕도의 태극기는 독립을 바라는 불교계의 염원이 담긴 것이다. 탱화의 관모에 그려진 검정 바탕의 태극기를 보니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활동했던 광복군의 휘장을 보는 듯 비장한 마음이 든다.
공주대학교 문화재보존과학과에서 최근에 이곳 명부전 지장시왕도의 안료분석 및 채색기법을 해석하여 학회에 보고하였다. 이 분석에 의하면 탱화의 태극기가 그려진 관모의 붓 터치를 보면 제작 당시 원통형 붓이 아닌 직각으로 이루어진 붓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태극기의 밑그림이 관찰되었다.
▲ 선원사 명부전 지장시왕 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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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는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 의지와 실천의 상징이었다. 이 사찰 탱화의 태극기는 1919년 기미년 3.1독립만세 운동에 2년 앞서서 일제에 저항했던 불교계 항일운동의 역사적 유물로서 가치 있는 문화재이다.
선원사는 신라 49대 헌강왕 원년(875년)에 도선 국사가 창건했다는 천년 고찰이다. 이 선원사는 2km 거리의 백공산(185m) 줄기가 평지로 펼쳐진 곳인데 백공산선원사라고 하지는 않는다.
▲ 선원사 경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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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공산은 남원시 도통동에 언덕처럼 낮은 산이지만 남원의 주산(主山)이라 한다. 남원용성중학교의 뒷산인 이 야산은 주택들이 들어서서 산다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이 남원의 주산이 객산(客山)인 교룡산(518m)보다 낮아 그 약한 기운을 보완하기 위해 선원사를 창건하고 만행산 천황봉의 힘찬 산세를 어어 받은 비보사찰로서 만행산선원사라고 이름 지은 듯하다.
이 사찰은 정유재란 때 남원성에서 순절한 군관민(軍官民) 만 명의 의사와 독립투사 등의 충절을 기리는 호국 사찰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춘향제를 후원하고 독립운동의 공간을 열어서 독립지사들이 이 사찰에 숨겨진 독립자금을 찾아갔다고 한다.
이 선원사는 평지 사찰로 남원 시내의 중심 도량이며 동종(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5호), 철조여래좌상(보물 제42호), 대웅전(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45호)과 약사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9호)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 요천변 동림 위치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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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찰에서 동쪽으로 200m 거리에는 요천이 주천천과 합류하는 두물머리가 있다. 이곳 강변이 홍수 때 넘치는 냇물을 막기 위하여 예로부터 숲을 조성하여 동림이라 하였고 동림교와 동림사거리 등 유래 깊은 지명이 남아 있다.
선원사가 신라시대에 창건되고 사찰의 범위가 넓었을 때는 이 요천 부근까지 사찰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선원사가 남원 지역의 중심 사찰로서 1915년에 남원 요천 강변에 괘불 탱화를 걸고 기우제를 크게 지냈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온다.
▲ 요천 여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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