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도 모르는 경북 풍기 여행지, 어떻게 갔냐면요

배은설 2025. 7. 1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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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창락역' 안내해 준 마을 어르신들

[배은설 기자]

지난 6월 어느 날, 경북 영주 풍기 한적한 시골 마을. 띄엄띄엄 차가 오갈 뿐인 도로변에 아담한 슈퍼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창락1리 마을슈퍼. 아! 다시 보니 '슈퍼'가 아니라 '수퍼'다. 시골마을에는 응당 '수퍼'가 있어야지. '슈퍼'에는 없는 고유의 아우라를 '수퍼'는 갖고 있다.

'수퍼'에 손님은 없었다. 그런데 사장님도 없다. 대신 유리문에 작은 쪽지가 하나 붙어있다. 사장님이 부재 중이라면 그건 사과집에 가 계시는 거란다. 자연스레 시선이 사과 집을 가리키는 쪽지 속 화살표 그림 방향을 좇았다.

유태농원. 수퍼에서 열 걸음 정도면 금세 가 닿을 가까운 거리에 작은 창고인 듯 가게인 듯한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정작 사과는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대신 복작복작 사과 같이 볼그레한 얼굴의 어르신들로 가득하다. 조르르 각자 각양각색 의자를 가져다 앉으신 어르신들은 어찌나 이야깃거리가 많으신지 한창 이야기꽃이 만개 중이었다.

대여섯 명이면 꽉 찰 정도의 좁은 공간인데, 의자는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간격 만큼이나 허물없어 보이셨다. 그러니까 여기는 농원이기도 하지만 사랑방이기도 한 것이다. 바로 내가 찾던 곳이다. 수퍼도 사과집도 아닌 동네 사랑방. 나는 사실 길을 찾던 중이었다.

'창락역'은 기차역이 아니었다
 경북 영주 창락 1리 마을 벽화_창락역이 있던 과거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 배은설
수퍼를 발견하기 전에, 한적한 시골 마을에 그려진 벽화를 먼저 만났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시작된 벽화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벽화 구경을 했다. 사실 알록달록 벽화야 요즘 시골마을 어디를 가도 쉽게 만날 수 있고, 이곳에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벽화 구경을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벽화 속 '창락역으로 시간을 걷다'라는 글귀에 눈길이 머물렀다.

창락역이 어떤 곳일까. 벽화 속에는 말도 보이고 주막도 보인다. 역이라니 기차역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과거 조선 시대에는 중요한 교통 중심지마다 역(驛)이 자리했다고 한다. 관리들의 공문서나 군사 정보를 전달하고 출장 가는 관리들의 숙박, 역마(驛馬) 공급, 관물 수송 등을 돕는 기관이 바로 역이었다.

창락역도 그런 곳이었다. 과거에는 영주 풍기 죽령 옛길을 통해서 한양으로 올라갈 수 있었으니 이곳은 오랫동안 중요한 교통로였다. 바로 이 죽령 옛길이 시작하는 곳에 창락역이 있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흘러 이제 옛 모습은 사라지고 없지만, 창락리의 벽화가 과거의 그 흔적을 어렴풋이 담고 있었다. 작은 시골 동네 벽화를 구경하는 동안 잠시나마 과거 속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창락역의 옛 모습을 담은 벽화 말고도, 이 부근에는 주춧돌 일부 등 창락역 유적도 있다고 했다. 문제는 창락역 벽화도 창락역 유적지도 사실 관광지가 아니다 보니 관광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장소라는 사실이었다.

마침 인근에 인삼박물관이 있어서 그곳의 관광 해설사 선생님께 길을 여쭤봤다. 하지만 소백산 자락 길을 걷는 도중에 있다고만 알려주실 뿐, 명확히 어디로 가라 짚어주시지는 못했다. 그렇게 궁금은 하고 쉽사리 길은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우연히 마주하게 된 '수퍼'가 가리키는 화살표 방향이 바로 유태농원, 그러니까 유태사랑방이었던 것이다.

여행할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조심스레 사랑방 쪽으로 다가갔다. 옆집 뒷집 누가 사는지 다 아는 작은 시골 마을, 어르신들은 낯선 이의 등장에 물음표 담긴 눈빛을 보내셨다. 휴대전화에서 찾은 창락역 유적지의 말 조형물 사진을 보여드리며 한 분께 길을 여쭤봤다. 사진을 잠시 들여다보시더니 모르겠다는 듯 휴대전화를 그대로 들고 다른 어머님께 가져갔다. 사진을 본 어르신은 바로 나를 도로변으로 이끄신다.

이제 됐다. 도로를 따라 쭉 가다 보면 왼쪽에 흰색 컨테이너가 하나 보일 거라고, 그 컨테이너가 있는 농로 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나올 거라고 하셨다. 어르신은 바로 그 근처에 말 조형물이 있다고 척척 알려주셨다. 당신이 같이 가주고 싶은데 다리가 아파서 못 그런다는, 느닷없이 가슴 뜨끈해지는 말과 함께.
 경북 영주 창락역 유적지에 있는 말 조형물
ⓒ 배은설
내비게이션 보다 정확한 마을 어르신 덕분에 무사히 창락역 유적지에 닿았다. 유적지에 다와 갈 때쯤, 과연 무성한 초록잎을 달고 있는 느티나무를 만났다. 절로 웃음이 났다. 길 설명이 너무 빠짐없이 척척 들어맞아서.

여행은 왜 하는 걸까. 화려한 볼거리도 맛있는 음식도 다 좋지만, 사실 여행할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결국 사람이다. 길을 찾고 찾아 최종 목적지에 닿았을 때도 즐겁지만, 길을 찾는 동안 마주하는 장면 장면들, 그리고 스치듯 만나는 사람들이 좋아서 여행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창락역 유적지에 이어 또 한 번 관광 지도에 없는 곳을 찾았다. 영주 영풍 단촌리 느티나무. 수령이 무려 700여 년이나 되었다는 굵은 둥치의 나무를 고개 올려 바라봤다. 그러고 있는데 잠시 후 친구인 듯 연인인 듯한 남녀가 역시 나무를 보러 왔다.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관광지는 아닌데 온 걸 보면, 그리고 편안한 옷차림인 걸 보면 여기가 사는 동네인가 싶기도 했다.

차에 오르기 전, 고개를 돌려 멀어진 나무를 다시 한 번 바라봤다. 커다란 나무를 배경으로 점처럼 작아진 두 사람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바야흐로 여름이구나. 느티나무 잎사귀들이 푸르렀다.
 멀리 보이는 경북 영주 단촌리 느티나무
ⓒ 배은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그래서, 여행’ (https://blog.naver.com/tick11)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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