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충수염 1100만원... 정부가 외면한 병원 '돈벌이'

박희은 2025. 9. 1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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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노동안전 네비게이션] '국제수가'를 아시나요?

[박희은]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병원비

[사례 1] 음식점에서 일하던 A씨는 새벽부터 복통이 있었으나 통증을 참고 견뎠다. 그러나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견딜 수 없어 동네 의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급성 맹장염이 의심된다며 응급차로 인근의 종합병원으로 이송했다. 여러 검사 결과 급성 충수염이라고 진단받았다.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리고 종합병원에서는 수술받기 위해 천만 원을 선납하라고 했다. 음식점 사장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선납 후 수술받을 수 있었다. 수술과 4일 간의 입원으로 병원비는 1100만 원 넘게 나왔다.

지난 8월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아래 공감센터)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인 미등록이주노동자 의료비 지원사업에 신청한 사례이다. 미등록이주노동자는 국민건강보험제도에 가입할 수가 없다. 그래서 병원비가 너무 비싸다. 어지간히 아프지 않고서는 병원 갈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런데 비싸도 너무 비싸다. 아무리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환자라 해도 왜 이렇게 비싼가? 진료비의 기준은 대체 뭘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병원에서는 수술이나 입원해야 하는 경우 A씨 사례처럼 대부분 선납금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병원에서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병원비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사례 2] 출산일이 얼마 남지 않은 B씨는 동네 산부인과에서 검진받았다. 검진 결과 태아의 항문이 막힌 것 같다고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다행히 검사 결과 문제가 없었으며 대학병원에서 자연분만으로 출산했고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4일간 입원했는데 병원비가 1400만 원이 넘게 나왔다.
 사례 2의 병원비 영수증
ⓒ 박희은
위 사례 역시 2024년 1월, 공감센터에서 진행한 상담 내용이다. 이 부부는 모두 미등록이주노동자였다. 그래서 건강보험 적용에서 배제되어 있다. 출산을 위해 600만 원의 돈을 성실히 모아두었지만, 병원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건강보험 수가의 3~4배, 많게는 5배나 되는 '국제수가'

B씨의 진료비 영수증(위 사진)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환자 구분 칸에 '국제'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이주노동자나 외국인이라서가 아니다. 의료비 적용 수가(의료서비스에 대한 가격)를 일컫는 말이다. 의료비 적용 수가에는 건강보험 수가, 일반수가, 국제수가 등이 있다. 환자에게 어떤 수가를 적용할 것인지는 대개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데, 일부 항목들은 병원에서 자율로 수가를 적용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제수가인데, 책정 기준이 병원마다 다르고 단가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알 수 없다. 일반수가가 대략 건강보험수가의 1.5배~2배이고 국제수가는 건강보험 수가의 3~4배, 많게는 5배나 되기도 한다.
 [표] 의료비 적용 수가별 본인부담금의 비교사례. 국가인권위 '이주민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 241쪽.
ⓒ 국가인권위
국제수가는 '의료해외 진출 및 외국인 환자 유치 지원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제정되어 2016년 6월 23일부터 시행됐다. 한국에 단기의료관광비자 또는 장기치료요양비자를 받고 입국하는 외국인이 대상이다. 의료관광, 즉 의료 상품화와 병원 영리화가 목적이다.

그런데 시행규칙에서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외국인을 출입국법에 따라 등록한 사람, 국내 거소 신고를 한 외국 국적의 동포로 한정한다고 명시했다. 이처럼 불합리한 제도 때문에, 출입국법에 따라 등록하지 못하는 미등록이주민들은 국제수가를 적용해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상황이다. 미등록이주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한국에서 노동하며 힘겹게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결국 잘못된 시행규칙으로 미등록이주민들은 병원의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하고, 건강권을 위협받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시행규칙부터 바꾸자

공감센터에 지난 3년간 의료비 지원 신청을 한 미등록이주노동자의 대부분이 국제수가를 적용받고 있었다.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모아둔 돈을 포함해서 빚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고, 경제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직장에서도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정기 건강검진이나 특수검진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 보니 만성질환자가 상당히 늘어난 상황이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어, 약값을 감당하기 어렵고, 일상적으로 건강검진이나 관리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 대안은 미등록이주노동자가 건강보험 제도로 편입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구제방안이나 합법화 경로를 마련하지 않는 한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렇다면 최소한 병원 돈벌이를 위해 미등록이주노동자들에게 과다하게 적용되는 국제수가는 막아야 하지 않을까? 애초에 제도의 취지대로 국제수가는 의료관광이나 장기 치료 요양을 목적으로 하는 외국인에게만 적용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시행규칙만 개정되면 된다. 이 간단한 문제가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공감센터에서 진행 중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의료비 지원사업은 올해 10월이면 종료된다. 공적 체계가 아닌 민간에서 진행되는 사업들은 재정이나 지속성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여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전국에서 오랫동안 이러한 문제에 관심 두고 목소리를 내어 온 대구, 부산, 울산, 광주, 청주, 창원, 김포, 서울지역의 이주노동자·이주민 의료지원, 연구 활동 단체들과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미등록이주노동자·이주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의 여러 내용 중 국제수가 문제부터 공론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한 국제수가와 미등록이주민 건강권 토론회가 11월 12일 오후 3시(장소는 추후 공지)에 열린다.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 9월호에도 게재됩니다. 이 글을 쓴 박희은 님은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정책국장이자 연구소 선전위원회에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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