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따뜻해지는 날씨에 마음이 조급해지는 객원 에디터 김고운이다. 4월부터 더위가 시작될 것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충격이다. 패딩을 벗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반팔을 꺼낼 날도 머지 않았다니. 산뜻한 마음으로 봄맞이 쇼핑을 기다리는 우리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얼마 못 입는 거 아니야?’, ‘그런데 당장 내일 뭐 입지?’
간절기 옷을 구매할 땐 착용 기간이 짧은 만큼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한 철 입고 말 옷이 아니라 오래 입을 그런 옷을 사는 편이 현명하다. 오늘은 이렇게 두고두고 입을 수 있는 워크자켓을 소개하려 한다.
워크웨어는 미니멀, 슬로우가 유행하면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들 트렌드의 핵심 가치인 실용성이 극대화된 옷이 워크웨어이기 때문이다. 워크웨어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옷이 아니다. 오로지 작업의 편의를 위해 개발되었다. 가혹한 환경에 맞춰진 제품은 당연히 일상생활에도 편리함을 제공한다. 크기가 넉넉해 몸을 가리기에도 좋다.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 쓸 필요 없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트렌드에 상관없이 이런 옷에 손이 자주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행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워크자켓을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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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어자켓
“워크자켓 입문은 이것부터”
레드(모건 프리먼)를 비롯한 다른 수감자들이 작업복으로 초어자켓을 입고 있는 모습. 출처: 영화 <쇼생크 탈출>
우리가 워크자켓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초어자켓에 가깝다. 초어자켓의 역사는 산업혁명이 시작된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엔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유럽 각지에서 철도를 설치하는 작업에 투입됐다. 공구나 부품을 보관하면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입었던 옷이 초어자켓이다. 이름 그대로 ‘초어’(chore, 노동) 자켓이다.
수많은 노동자에게 보급하기 위해 여러 업체에서 초어자켓을 대량으로 생산했다. 프랑스 브랜드 르몽생미셸은 1913년부터 워크자켓을 만들었다. 자켓 겉에 주머니를 달아 튀어나온 큼지막한 주머니와 단정한 카라. 이 단순한 디자인에 백 년의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장인은 소재부터 다르다. 르몽생미셸은 몰스킨 원단을 사용한다. 몰스킨은 면사를 밀도 있게 짜서 마치 두더지 피부처럼 질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찌나 촘촘한지 질긴 것은 물론 은은한 광택이 나서 자켓의 격을 높인다. 색깔을 고르는 재미도 있다. 기본이 되는 프렌치 블루를 포함해 브라운, 버건디 등 다양한 색 몰스킨 워크자켓을 출시한다. 가격은 39만 8,000원. 구매는 여기(https://lmsm.co.kr/product/list.html?cate_no=7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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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업 워크자켓
“자유로우면서 캐주얼하게”
칼하트 디트로이트 자켓을 입은 칸예 웨스트
지퍼는 유럽에서 개발되었지만 의류에 처음 사용한 건 미국이다. 1920년대에 미국의 굿리치라는 업체에서 지퍼가 달린 부츠를 출시하면서 의류에 적용되었던 것. 그래서 미국에서는 버튼 워크자켓과 더불어 집업 워크자켓이 널리 보급되고 발전했다. 집업 워크자켓은 버튼 워크자켓보다도 한층 캐주얼하다. 이런 자유로움으로 워크자켓은 미국 래퍼의 사랑을 받았고 이는 워크웨어의 글로벌 트렌드로 이어졌다.
1960년대 생산된 리(Lee)의 91-B 자켓 (출처 : Etsy)
리(Lee)의 91-B는 무려 1940년대에 출시되었다. 집업 워크자켓의 조상 격이지만 최근 유행하는 워크자켓의 형태와 흡사할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디자인이다. 손 각도에 맞게 기울어진 주머니와 마치 손을 감싸듯 우아하게 떨어지는 곡선을 보라. 기능, 패션 어느 쪽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 또 일반적으로 원단과 비슷한 색의 실을 사용하여 스티치를 눈에 띄지 않게 하지만 91-B는 전체적으로 흰색 실을 사용하였고 일부는 트리플 스티치로 봉제되어 스티치의 색이 눈에 띈다. 기능과 패션이 만나는 이 지점에서 91-B의 독특한 매력이 생긴다. 91-B는 80년이 지난 지금도 여기(https://tinyurl.com/mry6aw3a)에서 구매할 수 있다. 가격은 17만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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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팅자켓
“캐주얼과 클래식의 균형”
영국 ITV에서 방영한 드라마 <다운튼 애비>. 귀족들이 사냥할 때 입었던 옷을 엿볼 수 있다.
사냥할 때 착용했던 헌팅자켓도 워크자켓으로 분류한다. 사냥감을 쫓고 숨죽여 기다리는 사냥의 특성 때문에 헌팅자켓엔 여러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유럽 귀족은 사냥을 하나의 스포츠로 즐겼다. 어딜 가나 규칙 정하기를 좋아하는 귀족은 사냥할 때 입는 복장에도 규칙을 만들었다. 울 트위드나 린넨 소재를 사용하고 갈색이나 청록색 같은 자연의 색을 사용하도록 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쓰리 버튼 자켓 형태는 현재 스포츠 자켓에 가깝고 우리가 헌팅자켓이라 알고 있는 형태와는 거리가 있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헌팅자켓은 서민들이 입었던 헌팅자켓이다. 이 헌팅자켓의 형태는 워크자켓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과 사냥이 활동성이란 최우선 목적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헌팅자켓은 카라에 코듀로이를 사용하여 보온성을 높였고 탄약을 보관하거나 사냥감을 넣을 수 있게 여러 주머니가 있는 것이 워크자켓과 구분되는 특징이다. 헌팅자켓은 연출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다른 배색의 코듀로이 카라가 단정한 느낌을 주는 한편 큰 주머니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랄프로렌는 패션 역사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디자인을 다룬 경험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1958년 시작하여 60년 동안 폴로, 폴로 스포츠, 더블알엘, 폴로 퍼플 라벨 등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하여 방대한 제품을 판매한다. 그중 폴로 컨트리는 미국 서부 문화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폴로 컨트리에서 나온 캔버스 유틸리티 자켓은 탄(Tan) 색 코튼 캔버스 원단과 갈색 코듀로이 카라의 조화가 우선 시선을 끈다. 그리고 앞면의 6개의 주머니와 뒷면 1개의 주머니가 있다. 물건을 어느 주머니에 넣었는지 뒤적일 때가 있겠지만 주머니로 가득 찬 자켓을 보고 있으면 든든해진다. 가격은 55만 9,300원. 구매는 여기(https://tinyurl.com/3zf9wb9c)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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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65 필드자켓
“밀리터리 베스트셀러 자켓”
밀리터리 자켓 역시 워크자켓이다. 밀리터리 제품에 관심이 생겼다면 가장 먼저 구매를 추천하는 제품은 M65 필드자켓이다. 여러 제품을 비교하면서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M65 필드자켓은 1965년 베트남 전쟁에 투입된 군인을 위해 개발되었고 성능이 검증된 이후 미 육군 전체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까지 무려 40년 동안 생산될 정도로 밀리터리 자켓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택시 드라이버>(1976)
출처 : 알렉산드로 스쿠아르치 인스타그램
M65 필드자켓이 아름다운 이유는 기능성이면 기능성, 패션이면 패션 어느 하나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체에 맞게 허리를 조일 수 있는 조임 끈은 M65 필드자켓을 클래식하게 착용할 때 허리를 조여 멋스러움을 더하는 식으로 활용된다. 스톤아일랜드, 휴먼메이드를 포함한 많은 브랜드들이 각자가 재해석한 M65 필드자켓을 출시하는 이유다.
아워셀브스는 실용성을 바탕으로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든다. 그래서 아워셀브스는 빈티지, 워크웨어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국내 브랜드다. 아워셀브스는 M65 필드자켓을 여유 있는 실루엣으로 변화를 주었고 카라 속 후드를 제거했다. 밀리터리를 미니멀하게 해석했다. 그러면서 네임텍을 남긴 것이 재미있다. 원단의 표면을 연마하는 파우더 스노우 가공을 해서 원단이 부드럽다. 부드러운 밀리터리 자켓이라니 생경하지만 일상과 한층 가까워진다. 가격은 39만 8,000원. 구매는 여기(https://tinyurl.com/5ckebf3u)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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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커자켓
“밀리터리 자켓은 이걸로 전역”
데이비드 에이어, <퓨리>(2014)
마틴 스코세이지, <택시 드라이버>(1976). 영화 전반부에는 탱커자켓을 입다가 후반부에는 M65 필드자켓을 입고 모히칸으로 머리를 자른다.
다음은 탱커자켓이다. 정식 명칭은 ‘Jacket, Combat, Winter’로 세계 2차대전 당시 탱크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기갑병에게 동계용으로 보급되었다. 추운 겨울 비좁은 탱크 안이라는 극단적인 환경에서 탄생했으니 탱커자켓도 평범할 리 없다. 탱크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좁은 공간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기장이 짧고 목과 소매에 울 소재를 사용하여 보온성을 높였다. 이런 뚜렷한 특징 때문에 탱커자켓은 영화에 자주 등장하고 굿즈처럼 영화 속 탱커자켓을 그대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비디알은 워크웨어, 밀리터리를 기반으로 제품을 만든다. 워크웨어를 요즘 일상에 맞추어 부드럽게 해석하기보다 거친 느낌을 재현하는 당당함이 매력이다. 비디알의 탱커자켓은 오리지널의 실루엣을 유지하면서 높은 밀도의 원단과 램스울을 사용했다. 거기에 빈티지 소방관 자켓에서 볼 수 있는 파이어맨 후크를 사용한 것이 특징. 탱커자켓이 뿜어내는 거친 매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착용자의 몫이다. 같은 워크웨어인 데님과 매치하여 정면으로 승부할 수도 있고 후드티를 안에 입어 동맹을 맺을 수도 있다. 가격은 33만 9,000원. 구매는 여기(https://tinyurl.com/4zth53yc)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