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청약·위장임신…신혼부부 생존법 담은 80년대생 감독들의 독립영화
'한 채' '딜리버리' 20일 개봉
불법 청약, 위장 결혼·임신…
80년대생 감독들의 요지경 세태극

‘혼자 딸 키우는 택배기사인데요. 브로커 통해서 소개받은 30대 여자랑 허위 혼인신고하고 신혼부부 특별공급 아파트 청약 넣기로 했거든요. 오늘 상대 여자를 처음 소개받았는데 지적장애가 있네요. 이거 어떡하죠?’
20일 개봉한 영화 ‘한 채’(감독 정범‧허장)의 주인공 도경(이도진)이 자신의 고민을 온라인 게시판에 익명으로 올리면 이런 내용이 될 법하다. 집 한 채 갖기 힘들고 육아 또한 만만치 않은 시대, 신혼부부의 매운 맛 생존법을 다룬 독립영화 2편이 나란히 개봉했다.
‘한 채’가 신혼부부 특공을 노린 가짜 커플의 불법 청약을 다뤘다면, 같은 날 개봉한 영화 ‘딜리버리’(감독 장민준) 또한 신문 사회면에 나올 법한 사연을 담았다. 피임 실패로 낙태를 하려던 백수 커플 미자(권소현)와 달수(강태우)가 유산 상속을 위해 아이가 필요한 불임 부부 우희(권소현)·귀남(김영민)과 뱃속 아기를 불법 거래하는 내용이다.

두 작품 모두 내 집 마련, 물질적 풍요를 지상 목표로 삼는 세태 속에 가족과 생명의 가치가 경시되는 우리 시대 현주소를 되짚었다. 서스펜스 가득한 전개(‘한 채’), 허점투성이 캐릭터 코미디(‘딜리버리’) 등 장르적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1980년대생 감독들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또래 세대의 요지경을 비췄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빌라왕' 시대, 내 집 '한 채'가 인생을 책임져줄까
지적 장애가 있는 30대 여성 고은(이수정)과 아버지 문호(임후성) 부녀는 집을 얻기 위해 홀로 딸을 키우는 젊은 남자 도경과 가족 행세를 한다. 상황 설명을 절제한 채, 관객이 극 중 사건을 쫓게 만들어 긴장감을 극대화한 연출이 돋보인다.

자칫 불행한 사고라도 날까 봐 관객도 덩달아 불안해진다.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만 갖고 삶을 건 도박에 나선 주인공들처럼, 각 인물이 어떤 됨됨이를 가졌는지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원(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영화과 동기인 두 감독이 각각 연극 조연출(정범), 영화 프로듀서(허장) 경험을 살려, 3개월 간 20번 이상 사전 리허설을 거쳤다. 지난해 부산 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선정돼 “영민한 구조와 인물들의 표정과 품성과 관계에 주목하게 만드는 연출 형식”을 칭찬 받으며 LG올레드 비전상‧시민평론가상 2관왕을 차지했다.
물질만능 시대의 뱃속 아기 불법 거래 '딜리버리'
‘딜리버리’ 역시 부산 국제영화제 같은 부문에 이어 이달 초 파리 한국영화제 페이사쥬 부문에 초청된 화제작이다. 제목은 영단어 '딜리버리(Delivery)'가 배달 뿐 아니라 출산을 의미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영아 유기 기사를 접한 장민준(35) 감독이 직접 아내와 임신‧출산 과정을 겪으며 느낀 바를, 대리모‧입양 가족의 엇갈린 입장을 통해 한바탕 소동극으로 풀어냈다.
‘금수저’ 우희가 백수 미자의 뱃속 아기를 사는 과정은 마치 건물 임대 계약처럼 그려진다. 열 달 간 매달 500만원의 월세를 지급하고 출산 후 아기를 넘길 때 5000만원 잔금을 치르는 계약이다. 미자 부부가 임신 기간 동안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빌트인 고급 아파트도 제공한다. 단, 아기가 기형아일 경우 계약은 무효가 된다.
게임 폐인 달수의 전세방에서 ‘짝퉁’ 명품 중고 거래를 하며 별생각 없이 살아온 미자는 뜻밖에 모성애에 눈 뜨게 되면서 철없는 달수와 어긋나기 시작한다. 자신이 불임이라 믿어온 우희는 산부인과 의사인 남편 귀남이 감춰온 비밀을 알게 되면서 결혼 생활 전체가 흔들린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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