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대신 고개 숙였다

배영은 2024. 4. 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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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두산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오재원 문제에 연루된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뉴스1]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이승엽(47) 감독은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취재진을 만나자 고개부터 숙였다. “야구계에 이런 일이 벌어져 정말 안타깝다”며 “나를 포함한 야구계 선배들의 잘못이다. 후배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했다.

두산 감독이 난데없이 공개적으로 사과하게 한 ‘원인 제공자’는 이 감독과 전혀 인연이 없는 은퇴 선수 오재원(39)이다. 두산은 지난 22일 “구단 자체 조사를 통해 소속 선수 8명이 과거 오재원에게 수면제 대리 처방을 받아준 사실을 확인해 KBO 클린 베이스볼 센터에 자진 신고했다”고 밝혔다.

오재원은 2007년 두산에 입단해 2022년까지 16년간 한 팀에서만 뛰었다. 1군 통산 1570경기 성적은 타율 0.267, 홈런 64개, 521타점, 678득점, 도루 289개. 두산이 7년(2015~2021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동안 핵심 내야수로 활약했고, 2015년과 2019년에는 주장도 맡았다.

오재원이 2022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자 두산은 시즌 최종전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열어줬다. ‘원 클럽 맨’이라는 이유로 마지막 예우를 해줬다. 그러나 오재원은 은퇴식 날 기자회견에서 “내 발로 떠나고 싶어서 은퇴를 결정했다. ‘누구 한 사람’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당시 두산 사령탑이던 김태형 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저격하는 듯한 발언으로 은퇴식 분위기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었다.

은퇴식 1부 행사를 마치고 퇴장할 때도 그의 돌발 행동은 계속됐다. 1루 쪽에 도열하고 있던 두산 선수단은 쳐다 보지도 않고 보란 듯 3루 쪽 출구로 퇴장했다. 떠나는 순간까지 충동적인 공격성을 감추지 못한 그를 두고 두산의 일부 직원과 선수는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라고 했다.

그 후 1년 반이 흐른 2024년 4월, 오재원은 결국 두산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지난 17일 마약류 관리법 위반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보복 협박), 특수재물손괴, 사기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구속기소 됐다. 이 과정에서 그가 후배 선수들을 스틸녹스 정(졸피뎀 성분의 수면유도제) 대리 처방에 동원했을 가능성이 제기됐고, 두산의 자체 조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다른 구단도 두산 출신 선수들을 불러 관련 조사를 벌이는 등 한바탕 난리를 겪었다.

오재원은 현역 시절 “투지 넘치는 선수” “후배를 잘 챙기는 통 큰 선배” 등의 이미지로 외부에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수면제 대리 처방을 시킨 선수 대부분은 1군 주요 전력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팀 내 입지가 좁아 불안해하는 젊은 후배들을 상대로 폭언과 폭행을 일삼으면서 ‘불법 행위’에 가담하도록 한 거다. 그가 2021년부터 후배들에게 보낸 모바일 메신저 창에는 “(수면제를 받아오지 않으면) 칼로 찌르겠다” “팔을 지져 버리겠다” 등의 협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두산 선수단도 동료들이 연루된 날벼락 같은 소식에 침울해하고 있다. 박흥식 수석코치가 23일 NC 다이노스와의 홈 경기를 앞두고 선수단 전체 미팅을 소집해 “일단 우리는 경기에 집중하자”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승엽 감독은 “구단으로부터 이 일과 관련해선 ‘향후 규정과 원칙에 따라서 조처하겠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우리 선수들이 그런 문제에 연루돼 안타깝다. 빨리 모든 게 해결돼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또 “우리 선수단은 팬들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경기 준비를 철저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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