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보물도 제쳤다…잘려나온 4.8㎝ 신라 금동손에 주목한 까닭
고대빗 등 '무명 유산' 44건 한자리에
"수장고 속 묵혔던 유물 새 의미 부여"

마치 의수(義手)처럼 뚝 떨어져나와 전시장에 오롯이 걸린 오른손. 약 4.8㎝ 크기의 이 금동손은 1975~76년 경주 월지(月池·옛 안압지)에서 약 7만여점의 통일신라~조선 유물과 함께 출토됐다. 나란히 전시된 금동불입상(약 26㎝ 크기)처럼 멀쩡한 불상도 여럿 나왔으니 주목 받기 어려웠다. 이렇게 돋보이게 놓고 보니 손가락 마디마디, 깊게 팬 손금까지 살아 있다. 손톱 하나하나 세밀하게 묘사한 신라인의 불심이 천년 세월 너머에서 전해지는 듯하다.
지난 10일 개막한 국립경주박물관(이하 박물관) 특별전 ‘소소하고 소중한’(내년 3월9일까지)은 여러모로 유별난 전시다. 수장품 규모가 30만점에 이르고 이 가운데 국보·보물만 45건 58점이나 되는 박물관에서 이례적으로 국보·보물을 한 점도 내세우지 않았다. 깨지고 잘려 나갔거나, 보물이라기엔 허술한 ‘무명 유산’ 44건 144점이 주인공이다. 박물관 이력 34년차의 함순섭 관장부터 3년 차 막내까지 소속 큐레이터 12명이 각자 호기심을 사로잡은 유물을 골라냈다.


금동손을 선택한 양희정 학예연구관은 “손만 남아서 상상력을 더 자극한다”면서 “원래는 높이 40㎝가량 금동불의 일부였을 것”이라고 짚었다. 신라의 금동불 가운데 이와 비슷한 크기의 손을 지닌 국립춘천박물관 소장 ‘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높이 38.7㎝·보물), 일본 나가사키현 카이진신사의 ‘동조여래입상’(높이 38.2㎝·일본 중요문화재), 부산박물관 소장 ‘금동보살입상’(높이 34㎝·국보) 등과 비교해서다. 흥미로운 건 이들 세 불상이 통으로 주조된 데 반해 ‘오른 금동손’은 별도로 만들어 몸체에 끼우는 방식으로 제작됐단 점이다.
양 연구관은 “높이 1m77㎝에 이르는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불입상(국보, 8세기 말~9세기)이 이처럼 조립식으로 제작됐는데, 40㎝가 통이냐 조립이냐의 기준선이 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보다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두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옛 78호·83호, 각 1m 미만)이 통으로 제작된 걸 감안하면 제작기법의 변천을 짐작해볼 수 있다.
마치 대국을 벌이듯 바둑판에 놓여있는 신라 바둑돌도 눈길을 끈다. 각각 지름이 1.3∼1.6㎝ 크기의 백돌 43개와 흑돌 55개로 모두 경주 황오동의 신라시대 건물터에서 나왔다. 『삼국유사』에 효성왕이 왕자였을 때 신충이라는 사람과 대궐에서 바둑을 두었다는 기록을 뒷받침하는 유물이다. 김대환 학예연구사는 “바둑돌은 앞서 황남대총(243개)과 천마총(350개)에서도 다량 출토됐지만 이번엔 무덤이 아니라 건물터라는 게 주목할 점”이라면서 “1500년 전 신라인들이 바둑을 널리 즐겼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박달나무·대추나무 등으로 만들어진 고대인들의 빗도 여러 점을 한데 모았다. 입사 3년 차에 처음으로 전시에 참여하게 된 임익균 학예사는 “나무 빗은 주로 무덤이나 우물 등에서 발견되는데, 죽은 사람이 내세에서도 정갈하게 살아가도록 무덤에 넣거나 제사 의식에 사용한 것 같다”면서 “섬세한 가공 실력뿐 아니라 옛날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어 골랐다”고 했다.

좀처럼 전시되기 어려운 금관총·천마총 출토 직물도 나왔다. 고대 신라인들은 신분에 따라 사용 가능한 직물과 색채를 구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보존처리 담당 김연미 학예사가 당대의 직물 무늬를 복원한 복제품과 함께 전시했다.
이밖에 고대 국제교류를 살펴볼 수 있는 금관총 중층 유리구슬, 경주 황용동 절터에서 새롭게 조사된 사자상과 짐승 얼굴 무늬 꾸미개, 맹꽁이를 닮은 듯한 동물 모양 벼루 등도 만날 수 있다. 신라·통일신라 유물이 주를 이루는 경주박물관에서 보기 드물게 조선시대 목조관음보살상이 한자리를 차지한 점도 이채롭다. 이 불상은 CT 촬영 등을 통해 목조 외에 흙으로 일부가 제작된 점도 밝혀졌다.

전시를 기획한 이제현 학예사는 “전시가 명품 유산 위주로 열리다보니 수장고에만 있고 빛을 발하지 못하는 유물이 훨씬 더 많다”면서 “각 큐레이터가 자신의 관점을 담아 그간 잘 조명되지 않은 유산에 특색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김현희 학예연구과장은 “최근 보존과학 발전 등으로 ‘수장고 발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존 유산을 다시 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한데, 이번 전시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 부여했다.
경주=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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