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만 모르는 '100일의 기적'...국제적 망신
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 <편집자말>
[박정훈 기자]
▲ 아이를 안고 집문을 들어선 이후부터 "똥"과 "잠"이 인생의 화두가 됐다. 자료사진. |
ⓒ 픽사베이 |
똥지옥의 구원자 돌봄노동자
환경이 달라진 탓인지 아이는 1시간에 한 번씩 웁니다. 우리 부부도 함께 울었습니다. 몸이 힘든 건 그나마 견딜 수 있는데, 아이가 왜 우는지 잘 키우고 있는 게 맞는지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절박함에 아이를 보며 외쳤습니다. "나도 엄마가 있어." 그렇게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집 문을 연 어머니는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초보 엄마 아빠를 살렸습니다.
그렇다고 돌봄을 엄마에게 전가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 구원자처럼 나타난 게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서비스였습니다. 평일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돌봄노동자가 집으로 와서 산모의 밥을 챙기고 아이를 씻기고 돌보는 일을 해주십니다.
신청을 하고 일주일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돌봄노동자가 우리집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제가 어르고 달래고 온갖 짓을 다했는데도 울음을 멈추지 않던 아이가 처음 보는 돌봄노동자의 손이 닿자마자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돌봄노동자의 손에 수면제라도 있는 듯 도통 자지 않던 아이가 스르륵 잠이 들기까지 합니다. 안도와 함께 배신감이 올라왔습니다. '이 녀석 다른 사람이 업어가서 키워도 전혀 모르겠네'라는 서운함이었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부모의 돌봄능력은 본능이 아닙니다. 돌봄능력은 '사랑'이 아니라 '숙련'이겠지요.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가 숙련된 돌봄노동자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숙련된 돌봄노동자가 부모가 되는 건 아닙니다. 핏줄보다 중요한 건 피같은 노동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우리를 구원해준 돌봄서비스는 국가의 재정 지원 덕에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서비스를 주 5일 3주(15일) 이용하면 총 206만 4천 원을 내야 합니다. 엄두가 나지 않는 돈입니다. 이때 국가가 개입합니다. 정부가 신청가구의 소득에 따라 지원금을 주는 데 우리 가족은 82만 6700원을 부담합니다. 제가 직접 아이를 돌보기 전까지는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양육을 해보니 하루 약 5만 5천원으로 아이와 산모를 돌보는 건 가족 사이에도 불가능합니다. 국가가 지원하는 서비스의 힘입니다.
▲ 6월 14일 한국YWCA연합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사)한국가사노동자협회,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주최로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제13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기자회견"이 열렸다. |
ⓒ 이정민 |
양난주 대구대 교수 등이 참여한 '사회서비스 시장화 정책의 성평등 효과 분석' 연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돌봄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169.4만원으로 전체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 282만원의 60%에 불과합니다. 돌봄노동은 대부분 중년 여성과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노동이라 여겨져 저평가되기 때문입니다.
돌봄을 기업논리로만 접근하면 돌봄노동자의 처우개선과 돌봄서비스의 질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돌봄이 필요한 국민들은 돌봄서비스 가격에 민감하기 때문에 돌봄서비스를 판매해야 할 기업들은 서비스 가격을 무한정 올릴 수 없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기업들은 돌봄노동자의 임금을 깎아 이윤을 얻는 쉬운 방법을 택합니다. 이는 국민들이 받는 돌봄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립니다.
아이를 키우는 방법도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신생아는 태열 때문에 집안 온도를 22~24도로 유지해줘야 하는데 옛날 아이 키우던 방식으로 꽁꽁 싸매는 돌봄노동자 때문에 갈등을 빚는 부모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아이 건강, 수유방식, 산모케어 등에서 돌봄노동자와 부모들의 의견이 달라 갈등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업체가 돌봄노동자에 대한 교육과 훈련에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돌봄서비스를 민간기업들이 생산하고 판매하는 게 아니라 공공이 생산하고 제공하는 '공공재'로 접근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산업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이 투자를 해 이윤을 얻기 힘들지만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서비스라 국가가 투자를 하고 제공하는 것이지요. 치안과 전기 철도 등이 공공서비스입니다. 물론, 돈이 될 여지가 있다면 기업이 공공서비스 분야에 참여하여 이윤을 얻어가는 것을 허용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를 민영화 또는 사유화라고 부르며 경계하고 비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공재인 돌봄서비스가 이미 민간에 맡겨져 있습니다. 아동복지시설의 83.4%, 장애인복지시설의 79.8%를 민간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이돌봄만큼 필수적이고 중요한 노인돌봄은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장기요양기관 전체 2만 8868곳 중 국가나 지자체가 설립한 기관은 256개(0.9%)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개인이 설립한 기관이 대부분으로 2만 4628곳(85.3%)이나 됩니다.
지금은 제가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 딸을 키우고 있지만, 몇 년 뒤에는 부모님을 돌보아야 하고 30년 쯤 뒤에는 제가 누구가로부터 돌봄을 받아야 하는데 막막하기만 합니다.
우리 모두는 과거에 아기였고, 미래에는 노인이 됩니다. 어떤 국민도 돌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5월 31일 사회보장전략회의에서 '사회보장 시스템 자체를 시장화 산업화하고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 지난해 유엔이 10월 29일을 ‘국제 돌봄 및 지원의 날’로 지정한 가운데, ’10.29국제돌봄의 날 주간 돌입 기자회견’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앞에서 10.29국제돌봄의날조직위원회(민주노총, 전국요양보호사협회, 참여연대,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여성노동자회 등 29개 단체) 주최로 열렸다. |
ⓒ 권우성 |
"무급 돌봄과 가사 노동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과소평가되며, 국가 통계에 포함되지 않으며 경제 및 사회 정책 결정에서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여성과 소녀, 특히 여성 청소년들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무급 돌봄 및 가사 노동의 불균형한 몫을 수행하고 있음을 인식하며, 무급 돌봄 및 가사 노동을 줄이고 재분배하며 가치를 부여하는 조치를 채택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가정 내에서 여성과 남성 간의 책임을 평등하게 나누고, 지속 가능한 인프라, 사회 보호 정책, 그리고 돌봄 서비스, 아동 돌봄, 그리고 출산, 육아 또는 부모 휴가를 포함한 접근 가능하고 저렴하며 질 높은 사회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 국제돌봄의 날 UN총회 결의문(국제돌봄의 날 홈페이지)
결의문을 보면 유엔은 돌봄을 우리 모두가 수행해야 할 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모든 국민이 돌봄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국민의 휴가를 보장하고 가족 구성원들이 돌봄 책임을 적절하게 나눌 것을 강조합니다. 모든 돌봄을 책임지는 게 국가의 역할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이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사회구조와 환경을 만드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는 의미입니다.
유엔의 결의문은 돌봄노동자의 투쟁으로 만들었습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국제 산별조직인 국제공공노련(PSI)은 2019년부터 돌봄공공성과 돌봄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해 투쟁해왔습니다. 한국에서도 국제돌봄의 날을 맞아 11월 2일 보신각 앞에서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돌봄서비스 제공, 돌봄노동자의 권리보장, 양질의 공공돌봄서비스를 받을 권리 보장 등을 요구하는 행진을 벌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100일의 기적
정훈님, 보통 100일을 견디면 아이가 통잠을 잔다고 합니다. 길어야 2시간 정도의 토막 잠을 자던 부모들도 100일이 지나면 숨통이 트인다고 하지요. 너무 감격스러워 100일의 기적이라 부릅니다. 이 시간을 견딘 부모도 숙련된 돌봄노동자가 됩니다.
생각해보면 100일의 기적은 부모만의 힘이나 아이만의 힘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이의 엉덩이 밑으로 자신의 손을 갈아 넣은 돌봄노동자의 손목과 옷에 묻은 똥물이 100일의 기적을 만듭니다. 돌봄노동의 기적이라 불러야 마땅합니다. 돌봄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기적 같은 일이 아니라 당연한 상식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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