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타본 모델은 일반 내장탑 모델 '카고'에 모든 옵션을 추가한 프리미엄 트림입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ST1의 생김새는 여전히 독특했습니다. 스타리아의 앞머리에 화물칸을 씌운 모습이 한 마리의 거대한 다랑어를 보는 느낌이었는데요. 동글동글한 유선형 캐빈과 네모네모한 적재함이 약간의 이질감이 들긴 하지만 모양 자체가 신선해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어요. 트레이드 마크인 '호라이즌 램프'까지 들어가 있었다면 진정한 '코리안 사이버 트럭'이라고 해도 무방한 모습이었을 텐데 아쉽게 됐네요.
적재함은 카고 모델 기준 8.3세제곱미터 면적으로 길이 약 2.6미터, 폭 1.8미터에 높이는 1.7미터로 기존 1톤 탑차의 일반 내장탑을 약간 상회하는 적재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다만 저상 설계로 낮은 지상고, 출입이 간편해진 것은 장점이지만 휠 하우스 부분이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아예 구동축 위에 적재함을 배치하는 기존 1톤 트럭들에 비해 약간의 공간 손실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생김새에서도 짐작되듯 실내는 스타리아와 동일하게 구성했습니다. 전자식 변속 버튼과 터치식 인포테인먼트, 각종 수납함까지 스타리아의 것을 그대로 옮겼어요. 하지만 이 차가 상용차이니만큼 장갑을 낀 상태로 운전하는 일이 자주 있을 텐데 터치 패널을 그대로 쓴 점은 조금 아쉬운 지점이었습니다. 예전 쌍용 티볼리처럼 터치 패널인 척하는 물리 버튼이라도 넣어주면 좋았을 텐데요.
또 슈퍼캡이 아니기 때문에 시트를 뒤로 눕히는 리클라이닝 각도의 제한이 있죠. 많은 1톤 트럭 사장님들이 이 약간의 여유 공간을 쏠쏠하게 활용하는데, 이 모델은 그런 점에서 불편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앙에 거대한 수납공간이 있는 것도 좋지만 1톤 트럭처럼 3인승으로 구성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습니다. 기어봉도 없고 바닥도 평평하니 사람이 타기에도 좋고 리클라이닝이 제한적인 만큼 아예 1열을 평평하게 만들어 가로로 누울 수 있게 말이에요.
선바이저 안쪽에는 거울이나 조명이 하나도 없는데 아무리 상용차라지만 사용자 편의성을 위해 이런 건 좀 챙겨줘도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바로 옆에 거대한 거울이 붙어 있으니 이걸 활용하라는 뜻일까요?
안드로이드 OS를 품은 10.25인치 인포테인먼트 화면은 각종 정보를 깔끔하게 전달했고 순정 내비게이션은 T맵이 탑재됐습니다.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 같은 폰 커넥트 시스템도 무선으로 지원하는데 결국 우리는 T맵을 쓰기 위해 이걸 켜는 것이니 그냥 순정 내비를 이용하는 편이 나았습니다.
이 밖에 브레이크만 밟으면 시동이 걸려 주행이 간편해지는 '스마트 드라이브 레디', 운전자가 차에서 멀어지면 적재함 문을 스스로 닫는 '스마트 워크 어웨이' 같은 특수 기능들을 차량 설정 화면에서 쉽게 켜고 끌 수 있게 한 점도 좋은 부분이었습니다. 서라운드 뷰나 후측방 카메라,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같은 고급 사양도 풍부하게 갖췄어요.
운전석에만 갖춘 열선 및 통풍 시트 등 전반적으로 이 차는 구석구석 살펴보면 희한하게 있어야 될 건 없고 없어도 될 것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차량 안팎에서 사용할 수 있는 V2L이 전 모델 기본 적용되는 점은 돋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꽤나 넉넉한 출력의 전기를 제공하기 때문에 웬만한 220V 규격의 전자제품들을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고 바쁜 아침 출근길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갓 구워낸 호떡을 곁들일 수도 있어요. 앞서 샘플로 등장했던 것처럼 이 차를 푸드트럭이나 팝업스토어로 활용할 때 다양한 전기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데, 시동을 걸어놓거나 외부 발전기를 돌리면서 발생하는 소음과 매연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도 분명한 장점이죠.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가격인데요. 제가 시승한 차량의 가격이 카고 풀옵션 기준 신차가 6,405만 원이고, 냉동 탑차는 무려 7,000만 원이 넘어가는데 기존의 포터, 봉고 전기 탑차와 비교하면 1천여만 원 차이고 전기차 보조금을 100% 받을 수 있는 조건이긴 하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운 가격이죠.
현대차에서도 이를 의식해 ST1을 기존 1톤 트럭의 대체재가 아닌 전혀 새로운 영역의 화물차로 소개했지만, 아직까지 시장은 포터, 봉고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활용 영역 측면에서 기존 1톤 탑차와 확실하게 겹치기 때문인데 이렇게 되면 ST1의 높은 가격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죠.
물론 기본 적용된 각종 첨단 사양, 기존 1톤 화물차들과 결을 달리하는 배터리 용량과 주행 편의성, 특히 '안전'이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생각하면 조금 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막상 구매를 고민하는 입장이라면 선뜻 손이 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차가 승용차가 아니라 가격을 최우선 가치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용차이기 때문에 더욱이요.
그래도 좋은 건 누구나 알지만 가격이 비싸 선뜻 선택하기는 어려운 모델입니다. 생각해 보면 IT나 가전제품 쪽에서는 꽤나 흔한 일이죠? 시장에 처음 등장하는 제품은 가격이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가치를 알아보는 소수의 얼리어답터들에 의해 제품의 단점이 보완되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제품은 더욱 좋아지고 가격은 오히려 저렴해지는 과정을 거치는데요. 이 ST1도 그런 사례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봅니다. 향후 ST2, ST3로 등장할 현대차의 서비스 타입 라인업을 기대해 보면서 일단은 화물차 시장에 새로운 선택지가 제공됐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네요.
Copyright © 저작권 보호를 받는 본 콘텐츠는 카카오의 운영지침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