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자동차가 힘들어하는 이유, 그리고 그 시사점
폭스바겐의 독일 내 공장 폐쇄 검토는 상당히 큰 의미를 갖는 뉴스다. 어쩌면 밀레니엄 시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독일 자동차 산업의 밝지만은 않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신호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이 독일 내 공장을 폐쇄할 수 있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자 가장 먼저 반발한 것은 당연히 노조였다. 그리고 니더작센 주 정부였다. 폭스바겐은 매우 독특한 존재다. 주 정부가 이사회 발언권의 20%를 갖고 있는 대주주인 민영과 공영의 경계에 걸쳐 있는 특이한 지배 구조를 갖고 있다. 즉, 폭스바겐은 대주주인 주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고용 안정이 상당히 중요한 경영 목표일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런 폭스바겐이 공장 폐쇄와 당연히 이에 따른 고용 축소를 거론했다. 그만큼 상황이 어렵다는 뜻이다. 그리고 독일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을 통하여 공식화된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더 큰 도전이 있다. 이것은 글의 끝부분에서 이야기하자.
일단 강력했던 독일 자동차 산업이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미래차 산업의 관점에서 취약한 경쟁력, 두번째는 인위적인 산업 재편의 비용, 세번째는 정치적 지형 변화에 따른 혼선 등을 들 수 있겠다.
첫번째 이유로 든 취약한 경쟁력은 단연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 자동차 산업의 강력한 경쟁력은 OEM-티어(tier)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탄탄한 협업 체계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체계 통합 능력에 강점을 가진 독일 OEM과 전문 기술 및 부품 제조 능력에 특화된 로버트 보쉬, 컨티넨털, ZF, 인피니언 등의 부품 전문 기업, 즉 티어들로 이루어진 견고한 밸류체인이다. 그리고 이들의 경쟁력이 합쳐져 완성된 시스템이 바로 ‘모듈형 플랫폼’이다. 대표적 예가 폭스바겐의 MQB다.
그런데 이들의 강점은 하드웨어에 있다. 물론 컨트롤 유닛과 커스텀 반도체 등에서도 독보적인 능력을 가진 그들이지만 이들은 완성형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는 데에 특화되었을 뿐 OTA 등의 최신 트렌드에 적합한 시스템은 아니다. 그들도 자신의 약점을 알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에 많은 투자를 했다. 로버트 보쉬는 2019년부터 ‘인공지는 기업’을 주창했으며 폭스바겐은 스스로 운영 체계를 개발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인 카리아드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급격한 변신의 시도는 막대한 투자를 필요로 했다. 바로 두번째 이유인 ‘인위적 산업 재편의 비용’이다. 게다가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폭스바겐 카리아드(CRIAD)다.
2015년, 한창 주가를 높이던 폭스바겐 그룹은 디젤 게이트라는 커다란 암초를 만났다. 빈터콘 회장이 사임하고 회사는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여파는 회사 차원으로 그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치밀하게 엮여 있는 독일 자동차 산업의 밸류 체인 전체가 위험에 처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EU에서 독일의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폭스바겐과 독일 정부는 공격적 태세 전환으로 주도권을 움켜쥐기로 결정했다. 폭스바겐은 디젤 게이트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공격적인 전동화 전환을 선언하였다. MEB 플랫폼 개발, 카리아드 설립을 통한 소프트웨어 역량 내재화, 그룹 내 전기차의 배터리를 상-중-하 3등급으로 나누어 가격 경쟁력부터 고성능까지 모든 시장에 필요한 배터리 역량을 망라하고 상당 부분을 내재화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상당히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마스터플랜이었다. 즉, 지금의 주도권을 내 놓거나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표현이었다.
독일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메르켈 총리는 EU 주도 국가로서의 테마의 하나로서 탄소 중립 정책을 추진했었다. 친환경 정책에 치명상을 줄 수 있는 독일의 핵심 산업인 자동차 산업의 디젤 게이트를 수비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원자력 발전소의 조기 운전 중단을 비롯한 탄소 중립 정책의 가속화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독일 자동차 산업의 신속한 친환경 전환도 중요한 정책 가운데 하나였으며 그 선봉에 폭스바겐이 서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폭스바겐의 미래차 정책은 쉽지 않았다. 결정적인 문제는 역시 소프트웨어. 카리아드가 개발하는 VW.OS는 폭스바겐 최초의 신세대 전기차인 ID.3가 출시될 때까지 완성되지 않았다. 그리고 카리아드는 지금까지도 폭스바겐 그룹 미래차 전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실 이번 메르세데스 벤츠 전기차의 화재 문제도 이처럼 인위적으로 가속한 전동화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메르세데스 벤츠 역시 최고의 브랜드라는 지위를 미래차 시대에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메르세데스 EQ 전동화 서브 브랜드의 출범과 다양한 전기차 모델의 공격적 출시를 통하여 전동화를 가속하였다. 그러나 브랜드 전략과 제품의 완성도 등에서는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EQS를 필두로 한 전동화 전용 모델은 차별화에는 성공했지만 브랜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계승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특히 S – EQS로 이원화된 브랜드의 기함 체제는 또렷한 목적과 의미를 전달하지 못했다. 결국 EQ 브랜드는 퇴장하고 EQS도 후속 모델은 전통적 S 클래스의 방향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지고 있다. 조금함의 실패였던 것이다.
이번 패러시스 배터리 문제도 조급함과 무관하지 않다. 패러시스에 메르세데스 벤츠가 투자한 것은 독일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과 항상 연결되는 핵심 역량의 내재화, 그리고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대 시장인 중국 시장과의 친밀성 등을 위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메르세데스 벤츠 브랜드에 걸맞는 기술력과 품질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결론으로 가고 있는 듯 하다.
세번째는 정치적 지형 변화에 따른 혼선이다. 메르켈 총리 후임인 올라프 숄츠 총리는 고용 및 사회 안정 등이 가장 중요한 사민당 소속이다. 따라서 전략적 결정을 중시하면서도 실용적 정책을 펼쳤던 메르켈 총리와는 결을 달리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친 러시아 정책을 통한 에너지 수급 안정이었고 이것은 오히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 산업과 에너지 수급 불안으로 이어지는 역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독일 정부의 친환경 정책 드라이브와 함께 보조를 맞추었던 폭스바겐 그룹에도 새로운 총리의 취임과 함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표적 사건이 허버트 디스 회장의 퇴진과 올리버 블루메 회장의 취임이다. 표면적 이유는 리더쉽 부족, 카리아드의 소프트웨어 개발 지연으로 인한 주요 모델 전략의 지체 등이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너무 많은 돈을 투자한다는 포르쉐-피에히 가문의 불만과 전동화의 가속은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니더작센 주 정부의 불안감 등이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즉, 폭스바겐은 메르켈 총리의 퇴임과 함께 수익성과 안정성을 선택하였고 이에 걸맞은 포르쉐 출신의 블루메 회장을 폭스바겐 그룹 회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미래차 전략과 플랫폼 전략을 효율성과 안정성을 중심으로 재편, 혹은 연기시켰다. 최근의 전기차 시장 둔화를 미리 예견한 듯 현명한 정책으로 보여졌었다.
하지만 상황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폭스바겐의 플랫폼 전략은 끝도 없이 뒤로 밀리고 있다. 중요한 중간 교두보였던 PPE 플랫폼은 2년이나 늦게 출시되었고 얼마나 오래 사용해야 할 지도 모르는 형편이 되었다. 가장 많은 전기차 모델의 기반이 되는 MEB 플랫폼은 거의 10년을 사용해야 할 지도 모르는, 그래서 수많은 신형 모델들과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할 지경에 빠졌다. 궁극적 통합 플랫폼인 SSP 플랫폼은 2032년 이후로 연기된다는 소식이지만 이 마저도 최종 확정은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독일 부품 전문 기업 가운데에서 성장세가 가장 가팔랐던 ZF가 인원 감축 계획을 발표하였다. 전 세계에 걸쳐 2028년까지 11000~14000명을 감원한다는 이 계획은 독일 내의 54000명 직원 가운데 최대 4분의 1까지의 감원을 포함하고 있다. 이유는 세계 전기차 시장의 둔화 와중에도 중국 전기차 기업들과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비용 절감이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중국, 그리고 경기 둔화에 의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전기차는 네연기관 자동차에 비하여 내부 구조가 훨씬 단순하다. 게다가 대부분 모듈식이다. 즉, 조립 공정에 필요한 인력이 훨씬 적다는 것이다. ZF는 여력이 있을 때 미래에 어울리는 고용 구조로 체질을 바꾸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폭스바겐은? 허버트 디스 회장은 인원 감축을 언급하였다가 노조와 니더작센 주 정부로부터 미움을 샀다. 포르쉐 피에히 가문은 수익성 향상을 위하여 미래차를 향한 체질 개선을 뒤로 미뤘다. 그리고 상황이 매우 나쁜 지금 공장 폐쇄와 감원을 해야만 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참고로 지금은 현대차그룹이 십년 전 폭스바겐처럼 약진하고 있다.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