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 이렇게 끼우는 겁니다" 김용 재판에 명품 쇼핑백 등장, 왜 [法ON]
16일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웬 명품 쇼핑백 하나가 법대 위로 올라갑니다. 쇼핑백을 받아든 재판장은 요리조리 들어보면서 무게를 가늠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걸어가면서 가져가기 불가능한 무게는 아니네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조병구)가 심리하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의 재판에서 벌어진 흥미로운 장면입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은 2021년 4월 성남 판교 유원홀딩스 사무실에서 1억원을 쇼핑백에 담아 김 전 부원장에게 전달했고, 6월에는 경기도청 북측 도로 근처의 한 공원에서 2억원을, 수원 광교의 한 도로에서 3억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돈을 준 자와 받은 자의 입장이 가장 상반되는 건 경기도청 근처에서 전달했다는 2억원입니다. 유 전 본부장은 광교에 있는 모 아파트에서 돈을 들고 800~900m 거리를 10분 정도 걸어간 것으로 기억한다는데요. 2억원의 무게는 대략 4㎏. 상자 두 개에 나누어 담았다는데, 상자는 아주 두꺼운 책 정도 크기입니다.
이날 법정에서 검찰은 실제 현금 2억원을 갖고 나와 시연을 했습니다. 유 전 본부장은 어느 방향으로 넣었는지, 어떻게 밀봉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쇼핑백 한 겹이면 찢어질까봐 한 겹 더 감쌌다면서요.
김 전 원장 측은 앞서 유 전 본부장이 “걸어갔는지 차를 탔는지 명확하지는 않은데 걸어갔던 것 같다”고 진술한 것을 두고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4㎏짜리 현금이 든 쇼핑백을 전달하는 일이 흔한 일이 아닌데 기억이 안 나느냐”면서, 해당 경로를 운전해 도로 영상을 찍어와 법정에서 틀었죠.
이날 증인신문에서 유 전 본부장은 더 구체적인 답변으로 응수했습니다. “걸어갈까 차 탈까 망설였던 기억, 커다란 사거리 신호등을 보고 걸어간 기억이 있다”면서 “걸어가려면 지름길이 있어 김 전 부원장이 영상에서 튼 경로대로는 안 간다”고 덧붙였습니다. 법정 TV에 띄운 지도에다 길을 일일이 짚으면서요.
유 전 본부장은 사무실에서 전달한 1억원에 대해서는 “부드러운 재질의 쇼핑백”에 담아서 김 전 부원장의 옆구리에 끼워 코트로 가려주기까지 했다고 주장합니다. “엘리베이터 CCTV 같은 곳에 돈을 들고 나가는 게 찍히면 안 된다”는 건데, 유 전 본부장은 재판부 앞에서 자신의 옆구리에 쇼핑백을 직접 끼워 코트로 감춰 보였습니다. 이날 짧은 재킷을 입고 온 탓에 정민용 변호사의 코트를 빌려 시연했네요.
이렇게까지 공방이 세세해지는 이유는 유 전 본부장이 돈을 전달한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 전 본부장은 “수첩에 꼬박꼬박 써놓는 건 사실상 나중에 고발하는 걸 염두에 두는 건데, 그 당시엔 감췄으면 감췄지, 이름까지 숨겨주려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 돈독한 사이가 이제는 좀 달라졌습니다. 이날 법정에선 김 전 부원장과 증인석에 앉은 유 전 본부장이 직접 맞붙기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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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 유원홀딩스 사무실에서 제가 돈을 받았다고요. 주장이 다 다릅니다. 여기에는 내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돈을 가지고 갔다고 하고.
유동규/ 이렇게 해서 가져갔잖아요.
(중략)
김용/ 경기도청 도로 근처에서 줬다고요? 여기가 매우 넓은데.
유동규/ 옆에 있는 도로 꺾어서 들어오라고 한 거 기억 안 나요?
김용/ 2021년에 돈을 줬다는데, 당시 경기도청 공사 상태가 어느 정도였습니까?
유동규/ 펜스 쳐져 있고, 유리창 깔렸고 이런 거 기억나고.
김용/ 현장 직접 가보지도 않고 네이버로 본 거 아닙니까?
유동규/ (언성을 높이며) 우측 공원에서 담배 피우면서 얘기했던 것도 기억 안 납니까?
」
두 사람의 입장차가 큰 곳은 한 군데 더 있습니다. 유 전 본부장은 2013년 서울 강남구 유흥주점에서 정 전 실장과 김 전 부원장을 접대했다고 진술했는데, 김 전 부원장 측은 이 진술의 신빙성도 흔들었습니다. 이들과 술을 마신 여종업원들의 이름과 결제 내용을 거론했는데 유 전 본부장이 “이름은 모른다”고 하자 이 지점을 파고든 겁니다.
그러자 유 전 본부장은 대뜸 “김 전 부원장도 2차를 많이 갔다”고 반격해 법정에 앉은 이들이 당황스러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는데요. 이후에도 증인신문 과정에서 비슷한 폭탄 발언이 이어지자 재판장이 “맥락과 관계없는 증인신문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릴 정도였습니다.
김 전 부원장 측이 이런 변론을 이어가는 이유는 물론 유 전 본부장 진술의 신빙성을 흔들기 위해서입니다. 유 전 본부장이 지난해 10월 검찰에서 “김용 전 부원장에게 정치자금을 건넸다”며 물어보지도 않은 내용을 먼저 실토해 이 수사가 시작됐는데요. 김 전 부원장 입장에서는 유 전 본부장이 왜 함구하던 태도를 바꿔 이런 ‘고백’을 했는지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 전 부원장 측은 지난해 10월 무렵 진행된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에 기록된 ‘기억 환기를 위한 면담’ 시간을 주목했는데요. “당시 구속 만기를 앞두고 있던 상황 아니었느냐”며 면담 때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묻자 유 전 본부장은 검찰의 회유는 없었다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플리바기닝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닌데 김 전 부원장 측이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름도 여러 번 거론됐습니다. 유 전 본부장은 “이재명 대표의 과거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변호사를 소개해줬고, 당시 이 대표가 변호사비를 걱정한다는 걸 전해 해당 변호사가 ‘변호사비는 걱정하지 말라’고 답했다”면서 자신의 ‘기여분’을 주장했고요.
당시 남욱 변호사가 하던 개발사업에서 탄약고 이전이 필요했는데,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자신이 아는 3성 장군을 국방부 장관으로 추천해볼 생각이었다고도 했습니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유 전 본부장 등이 노래방에서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50%에 상당하는 것을 내고 있다”고 말한 데 대해서는 “이재명 대표 대선과 50억 클럽에 들어간 노력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21일 열리는 다음 재판에는 이 자금을 일부 댔다는 정민용 변호사가 증인으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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