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제발 돌아오세요" 눈물의 이별..러 30만 동원령 비극
러시아가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장에 보낼 예비군 징집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0여만 명 규모의 부분 동원령을 내린 지 하루 만이다.
소셜미디어에는 러시아 곳곳에서 동원 대상자들이 가족과 눈물의 이별을 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BBC 기자가 공개한 영상에선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아빠 안녕, 제발 (무사히) 돌아오세요"라고 말한다.
AP통신에 따르면 동부 시베리아 도시 네륜그리의 입영센터로 추정되는 한 종합운동장 건물이 나온 영상도 있다. 소집 대상자들은 이곳에서 버스에 오르기 전 가족을 부둥켜안고 침울하게 작별 인사를 나눴다. 모스크바 입영센터에서 촬영된 다른 영상에선 한 여성이 가족으로 보이는 남성들의 몸에 성호를 그으며 눈물을 쏟았다고 통신은 전했다.
자신의 이름을 드미트리라고 밝힌 25세 남성은 러시아 언론에 자신이 아직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소집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에만 해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는데, 갑자기 소집 통지를 받았다"며 "오후 3시까지 여기(입영센터)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한 시간 반가량 기다렸더니 입영 장교가 와서 당장 떠나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언론은 러시아군의 발언을 인용해 부분 동원령 발표 후 소집 통지를 보내기 전에 약 1만 명이 자원 입대했다고 보도했다.
엑소더스..."조지아 국경 통과에 7시간"
그러나 동원령을 피해 국외로 탈출하려는 행렬은 늘어나는 추세다. 22일 BBC에 따르면 러시아인이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조지아의 국경 검문소엔 5㎞에 달하는 차량 대기 행렬이 형성됐다. 한 목격자는 이날 러시아·조지아 국경을 통과하는 데 7시간이 걸렸다고 전했다. 소집 대상자인 한 남성은 "푸틴 대통령이 동원령을 발표하자마자 짐도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여권만 들고 국경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핀란드·카자흐스탄·몽골 국경에서도 긴 줄이 목격됐다고 도이체벨레(DW)가 전했다. 튀르키예·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세르비아 등 러시아인이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로 가는 항공편은 며칠치가 매진된 상태다. 로이터통신은 모스크바에서 두바이로 가는 가장 싼 비행기표 가격이 30만 루블(약 718만 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22일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인들의 국외 탈출을 돕는 비정부기구(NGO) '자유 세계로의 가이드' 관계자는 푸틴의 동원령 발표 이후 웹사이트 접속자가 150만 명이 넘었으며 지금까지 최소 7만 명 이상의 러시아인들이 국외로 탈출했거나 떠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고 추정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시작 당시보다 훨씬 더 큰 엑소더스(탈출)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포된 시위자들에도 징집 통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같은 시위자들 대상 징집 명령에 대해 "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말했을 뿐 부인하진 않았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인들에게 동원령에 대한 저항을 촉구했다. 그는 러시아어로 "더 많은 러시아군의 희생을 원하지 않는다면, 저항하거나 투쟁하라. 달아나거나 우크라이나군에 항복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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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망명 가능" EU "공동 대응 모색"
동원령을 피한 러시아인들의 탈출이 이어지자 유럽 국가들은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독일의 낸시 페저 내부부 장관은 22일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압적으로 위협받는 탈영병들은 원칙적으로 독일에서 국제적인 보호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푸틴 정권에 용감하게 대항해 큰 위험에 처한 사람은 누구나 독일에서 정치적 박해를 이유로 망명을 신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마르코 부쉬만 독일 법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분명히 많은 러시아인들이 고국을 떠나고 있다"며 "푸틴의 길을 증오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독일은 환영한다"고 전했다.
반면 동원령 발표 직후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발트 3국은 징집을 피해 달아나는 러시아인들의 망명 신청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핀란드는 러시아인에 대한 관광 비자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유럽은 공동 대응을 모색한다. 아니타 히퍼 유럽연합(EU) 이민 담당 대변인은 "러시아에서 부분 동원령을 피해 탈출한 이들은 유럽 국가에 망명을 신청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입국 요청은 사례별로 검토되어야 한다며 EU 차원의 공동 입장을 찾기 위해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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