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의병 추모탑 앞, 사케 올렸다…日장수 후손들 "잘못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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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장 후손 2명, '한일 평화의 날' 행사 참석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인 장수의 후손들이 한국을 방문해 조상의 잘못을 사죄했다.
국가보훈부는 10일 충북 옥천군 안내면에 있는 가산사에서 ‘대한 광복 80주년 기념 및 한일 평화의 날’을 열고 임진왜란 당시 희생된 의·승병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왜장 후손인 히사다케 소마(久武正馬·24)와 히로세 유이치(廣瀨雄一·70)가 참석했다. 히사다케는 임진왜란 당시 충청도를 침략한 왜군 5진 후쿠시마 마사노리 부대 소속 초소가베 모토치카(長宗我部元親) 왜장의 17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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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 후손 힘모아야”
히로세는 “임진왜란으로 조선의 승려·농민·여인·아이 등 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며 “한일 양국의 후손들이 힘을 합쳐서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들은 행사에 앞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 후손 이종학씨와 서예원 진주 목사 후손 서재덕씨, 황진 장군 후손 황의옥씨 등 임진왜란 때 출병한 관군·의병 후손을 만나 사죄의 마음을 전했다.
이들이 방문한 가산사는 조계종 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 신라 성덕왕 대인 720년에 창건됐다. 임진왜란 당시 의·승병이 군영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전란 중에 불탔으나, 1624년 인조 때 중건했고 숙종이 호국사찰로 지정했다. 이후 의병장 조헌과 승병장 영규 대사의 ‘진영(眞影·초상화)’을 봉안하고 제향을 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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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승병 추모탑 앞서 헌주
이날 행사는 호국충혼탑 앞에서 50잔의 차를 올리는 헌다(獻茶)를 시작으로, 영령을 기리는 장순향 무용가의 헌무(獻舞) ‘회한’ 공연, 왜장 후손들의 헌주(獻酒) 의식 등 순으로 진행됐다. 히로세와 히사다케는 일본에서 가져온 사케(청주)와 간장 등을 제단에 놓고 참회의 기도를 올렸다. 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장인이 빚었다는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술이다. 히로세는 “참회의 마음으로 이 술을 골라 헌주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왜장 후손 2명의 이번 방문은 김문길 박사(부산외대 일본학과 명예교수)와 가산사 주지인 지원 스님의 역할이 컸다. 김 박사는 일본 문부성 교토국제문화연구소 교수를 지낸 일본통이다. 지원 스님은 1989년 일본 전국 순회 법회 때 일본 곳곳의 이비총(귀·코 무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일본의 반성과 양국의 화해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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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묘소·독립기념관도 방문
지원 스님은 “아픈 역사의 고리를 풀기 위해서는 참회와 화해, 용서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런 의미를 담아 올해 추모제향은 광복 80주년과 한일 평화의 날을 기념해 준비했다. 왜장 후손들이 참여해 사죄하는 자리를 갖게 돼 400여 년간 맺힌 응어리가 비로소 풀리게 됐다”고 말했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한일 양국이 더 높은 수준의 우호 협력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한일 양국의 평화를 기원하는 퍼포먼스도 했다. ‘참회’ ‘화해’ ‘평화’란 글씨가 쓰여진 세 가지 족자를 만들어 왜장 후손과 피해자 후손, 국가보훈부가 한 점씩 나눠 가졌다. 히사다케와 히로세는 가산사 행사 이후 충북 청주로 이동해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묘소와 사당, 의암 손병희 선생의 생가 등을 방문했다. 11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을 돌아본 뒤 일본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옥천=최종권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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