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넘어 개·고양이로 옮겨질 가능성도… ‘E형 간염’도 대비가 필요하다 [멍멍냥냥]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E형 간염 바이러스(HEV)다. HEV에 감염된 동물에 접촉하거나, 감염된 동물의 고기를 날것으로 먹으면 사람도 감염될 수 있다. 올해 초, 서울에 서식하는 시궁쥐에서 인수 공통 감염을 일으키는 HEV가 확인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이러스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될 위험이 커진 것이다.
◇시궁쥐에서 HEV 검출, 개·고양이 검출 가능성도
E형 간염은 HEV에 감염돼 발생하는 급성 바이러스성 간염이다. 치료제가 마땅치 않다. 건강한 사람은 몸살 증상을 보이다가 자연 회복되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들은 만성화되다가 간 경변으로까지 이어질 위험이 있다. A형 간염 바이러스 다음가는 급성 바이러스 간염 원인이기도 하다. 79명의 급성 바이러스 간염 환자들에게서 간염 원인을 찾은 결과, A형 간염이 60명(76%), E형 간염이 7명(9%), C형 간염이 3명(4%)이었다는 국내 연구팀 조사 결과가 있다.
멧돼지·토끼·사슴만 조심하면 된다는 기존 상식이 최근 엎어졌다. HEV는 숙주에 따라 다섯 가지 속으로 구분되는데, 그간에는 멧돼지·토끼·사슴 등에서 발견되는 파슬라헤페바이러스 속만이 인간에게 감염을 일으킨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쥐 등 설치류가 매개하는 로카헤페바이러스속 HEV의 인체 감염 사례가 2017년부터 해외에서 보고되며 상황이 변했다. 올해 초엔 고려대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송진원 교수팀이 국내 시궁쥐에서 로카헤페바이러스속 HEV를 검출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2011~2021년 서울에서 잡은 시궁쥐 164마리 중 4.3%(7마리), 제주에서 잡은 시궁쥐 10마리 중 10%(1마리)에서 HEV가 검출된 것이다. 송진원 교수는 “해외의 시궁쥐 유래 로카헤페바이러스 감염자 중엔 만성·급성 간염 증상을 보이는 사례가 있었고, 간부전과 콩팥 부전으로 사망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HEV는 이미 인간에게 가깝고, 앞으로 더 가까워질 수 있다. 2023년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의 야생동물실태조사에 따르면 시궁쥐(집쥐)는 멧밭쥐·생쥐·땃쥐·등줄쥐 등 다른 쥐보다 인가(人家) 출몰이 잦다. 지금은 쥐지만, 향후 인간과 더 친밀한 동물인 개나 고양이에서도 HEV가 검출될 가능성이 있다. 스페인 남부 지역 고양이와 개의 HEV 항체 보유 여부를 조사했더니 개 152마리 중 15마리(9.9%), 고양이 144마리 중 4마리(2.8%)가 양성이었다는 최근 연구 결과가 있다. 조사 대상에는 길고양이, 들개, 반려동물이 모두 포함됐다.
◇현황 파악해야 하는데… 표준 검사법 없어
전문가들은 HEV에 대비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감염 규모 파악이 특히 시급하다. 인간이 시궁쥐 유래 HEV의 존재를 인지하기도 전에 환자가 이미 생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환자 수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국내 E형 간염의 신고 현황 및 역학적 특성 분석’을 보면, 전수 감시 시작 이후로 2022년 6월 30일까지 확인된 국내 E형 간염 환자는 938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분당서울대병원·질병관리청 공동 연구팀이 한국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얻은 혈액 표본으로 E형 간염 항체 유병률을 검사한 결과 40대 이상에서 최소 12%, 50대 이상에서 최소 20% 이상의 높은 유병률이 보고됐다. 송진원 교수는 “집계되지 않은 감염자들이 지역사회에 많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고대구로병원 간 센터 김지훈 교수는 “국가 차원에서 현황 파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드러나지 않은 환자가 많은 것은 진단이 어려운 탓이다. 우선, 의사가 환자 증상만 보고 E형 간염을 의심하기 어렵다. 김지훈 교수는 “몸살·발열·피로·구토·황달 같은, 다른 급성 바이러스 간염과 공통되는 증상이 있을 뿐 E형 간염을 곧바로 의심할 만한 특이적 증상이 없다”며 “간을 주로 보는 간 전문의가 아니라면, 의사로서도 E형 간염을 의심해 검사를 시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경우 E형 간염은 원인 불명의 간염 또는 약제 유발 간 손상으로 오진되곤 한다.
의사가 E형 간염을 의심했더라도 정확한 검사가 어렵다. E형 간염은 피검사에서 항체 양성일 때 1차적으로 진단된다.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항체 검사법이 아직 없어, 같은 환자라도 어떤 검사법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결괏값이 달라진다. 실제로 분당서울대병원·질병관리청 공동 연구팀이 아비아(Abia)사(社) 검사법과 완타이(Wantai) 사의 항체(lgM)검사법으로 같은 E형 간염 환자 5명을 검사했더니, 세 명만 검사 결과가 일치했다. 검사 결과가 불일치한 두 명의 환자는 아비아사 검사법에서는 양성이, 완타이사 검사법에서는 음성이 나왔다.
◇표준 검사법부터 확립해야, 치료제와 백신은 그 다음
믿을 만한 검사법이 있어야 환자 수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표준 검사법 확립이 가장 시급하다고 봤다. 김지훈 교수는 “항체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혈액이나 분변에서 E형 간염 바이러스의 RNA를 직접 찾는 검사를 시행하는데, 환자에게서 검출된 RNA가 E형 간염 바이러스 RNA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국내 실험실마다 조금씩 다르다”며 “WHO가 10개국 23개 실험실과 함께 E형 간염 바이러스의 표준적 특성값을 설정했으므로 한국도 빨리 이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황 파악 전이므로 백신 논의는 시기상조다. 중국에서 개발된 E형 간염 백신이 있으나 아직 안전성이 다 확인되지 않았다. 송진원 교수는 “중국에서 개발한 E형 간염 바이러스 백신은 16세 이하 소아, 65세 이상 노인, 면역억제자, 간 질환 등 기저질환자에 대한 안정성 정보가 부족해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라도 현황 파악이 필요하다. 김지훈 교수는 “아직까진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데, 환자 수가 상당하다는 것이 대대적으로 드러나야 제약사들도 치료제 개발 동기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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