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극 인줄 알았는데... 네 모녀가 여행 끝에서 깨달은 것

임순혜 2026. 8. 1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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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경주기행'은 단순한 '가족 복수극'이라기보다 상실·가족·여성의 연대와 복수를 블랙코미디와 로드무비로 비틀어낸 작품이다.

결국 영화가 묻는 것은 "복수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가족은 이 상실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에 더 가깝다.

영화는 네 모녀의 가족여행을 '통쾌한 사적 복수'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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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경주기행>

[임순혜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경주기행'은 단순한 '가족 복수극'이라기보다 상실·가족·여성의 연대와 복수를 블랙코미디와 로드무비로 비틀어낸 작품이다. 배우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 이연, 변요한이 주연을 했고, 김미조 감독이 연출했다.

'경주기행'의 출발점은 꽤 잔혹하다. 8년 전 수학여행을 떠난 뒤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생각하며 엄마 옥실(이정은)과 세 딸 장주(공효진), 영주(박소담), 동주(이연)는 막내를 죽음으로 몰고 간 남자를 찾아 경주로 떠난다. 겉으로는 평범한 가족여행이지만 봉고차 트렁크에는 한 남자가 실려 있다. 여행은 알리바이이고 목적은 따로 있다.

네 모녀의 여행
 영화 '경주기행'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네 모녀다. 옥실(이정은)은 막내딸을 잃은 뒤 시간이 멈춰버린 엄마다. 그녀는 복수를 통해 딸의 죽음을 되돌리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다시 움직이려는 사람처럼 보인다.

장주(공효진)는 현실적인 장녀다. 엄마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면서도 가족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다. 영주(박소담)는 감정보다는 계산을 앞세우는 인물이고, 동주(이연)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인물이다. 서로 전혀 다른 세 딸이 같은 목적을 향해 가면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긴장과 코미디가 생긴다.

결국 영화가 묻는 것은 "복수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가족은 이 상실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에 더 가깝다.

영화는 네 모녀의 가족여행을 '통쾌한 사적 복수'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네 명의 가족여행은 오히려 복수하러 가는 길에도 배가 고프고, 차 안에서는 서로 싸우고, 각자의 사정 때문에 계획은 삐걱거린다. 이 엉뚱한 현실성이 영화의 가장 좋은 부분이다. 영화는 복수의 과정에서 결국 인물들이 마주하는 것은 '잃어버렸던 서로의 얼굴'이라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건 비극과 희극의 충돌이다. 막내를 잃은 가족이라는 비극적 상황인데도 영화는 때때로 이상할 만큼 웃긴다. 이 웃음은 비극을 희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픔을 견디기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생활의 리듬처럼 기능한다. 그래서 '경주기행'은 복수극이라기보다 '상실 이후에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로드무비'에 가깝다.

경주와 기행의 두 가지 의미
 영화 '경주기행'의 한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경주'라는 공간은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제목 '경주 기행'에서 경주는 도시 이름이면서 죽은 막내딸의 이름이다. 기행은 여행기이면서 '기이한 행동'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겹쳐 있다.

막내는 경주에서 죽었고, 가족은 경주라는 이름의 딸을 위해 다시 경주로 간다. 따라서 이 여행은 사실상 목적지를 향한 여행이 아니라 죽음이 발생한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여행이다. 평범한 가족여행이라면 관광지를 찾아가고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하지만 이 가족은 다르다. 여행가방 대신 복수를 싣고, 관광지도 살인의 목적지를 향한다.

8년 동안 가족에게 경주는 관광지가 아니다. 경주는 딸의 죽음이 시작된 장소, 가족의 시간이 멈춘 장소다. 그러므로 네 모녀가 경주로 향하는 것은 복수를 위해 범인을 찾아가는 동시에, 8년 전의 사건으로 되돌아가 그때 멈춰버린 자신들을 찾아가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노란봉고차도 중요한 상징이다. 모녀는 이 차를 타고 경주로 이동한다. 그런데, 차 안에는 범인이 있다. 즉 하나의 공간 안에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것은 굉장히 역설적인 구조로, 가족은 범인을 죽이기 위해 그를 데리고 가지만, 결과적으로 8년 동안 가족을 지배했던 사건 자체를 차 안에 함께 싣고 가는 셈이다.

따라서 봉고차는 이동수단이면서 동시에 가족의 기억을 담은 밀폐된 방이다. 밖에서는 경주의 아름다운 풍경이 지나가나, 차 안에서는 과거가 계속 반복된다. 이 대비가 '경주기행'의 블랙코미디와 비극을 동시에 만들어내고 있다.

네 모녀가 입는 '패밀리 FAMILY' 티셔츠도 재미있는 장치다. 겉으로 보면 화목한 가족여행의 기념품 같으나, 실제 목적은 살인이다. 즉 영화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아주 불편하게 뒤집는다. 가족은 서로를 지켜주는 공동체인가? 아니면 함께 분노하고 함께 복수하는 집단인가? 영화는 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네 모녀가 똑같은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장주는 엄마의 뜻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장녀고, 영주는 감정보다 이성을 앞세우는 둘째이며, 동주는 몸이 먼저 움직이는 셋째, 옥실은 시간이 멈춘 엄마다. 이 네 사람은 모두 같은 사건을 겪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을 견디고 있다.

그래서 복수여행은 사실상 가족 내부의 서로 다른 슬픔을 드러내는 여행이다. 옥실에게 '복수'는 목적이 아니라 시간의 복원이다. 이정은의 옥실을 이해하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다. 옥실은 막내를 잃은 순간부터 시간이 멈췄다. 다른 가족들은 살아가려고 하나, 옥실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배신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복수라는 명분을 붙잡는다.

영화에서 복수의 성공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복수가 끝난 뒤 옥실에게 시간이 다시 흐를 수 있느냐이다. '경주기행'의 결말은 '누가 죽느냐'보다 '누가 살아남느냐'가 중요하다. 일반적인 복수극의 질문은 "범인은 죽는가?"이나,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조금 다르다.

막내 경주의 의미
 영화 '경주기행'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막내 경주'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으면서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영화 제목의 '경주'는 실제 도시이기도 하지만 죽은 막내딸의 이름이다. 그런데 막내는 현재의 시간에 살아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영화 전체에 존재한다. 즉 경주는 부재를 통해 존재하는 인물이다.

보이지 않는 경주가 있기 때문에 네 모녀가 움직인다. 경주가 없기 때문에 가족은 붕괴했고, 경주가 있기 때문에 가족은 다시 움직인다. 결국 경주는 죽음이면서 동시에 가족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경주의 역사적 공간도 '죽음'과 연결된다. 경주는 원래도 죽음과 기억이 겹쳐 있는 도시다. 고분, 불교 유적, 왕릉, 오래된 종과 탑들…. 수많은 죽은 사람들이 묻혀 있는 도시다. 그런 도시에서 죽은 딸의 이름이 '경주'라는 것은 우연 이상의 효과를 내고 있다. 현대의 가족이 한 사람의 죽음을 찾아 떠난 곳에, 과거의 수많은 죽음과 기억이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영화의 경주는 관광의 도시이면서 묘지이고, 현재의 도시이면서 과거의 도시이며, 삶의 공간이면서 죽음의 공간이다. '8년'이라는 시간도 중요하다. 8년은 단순히 사건과 복수 사이의 시간 간격이 아니다. 그동안 세 딸은 성장했고, 결혼했고, 각자의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엄마에게는 시간이 멈춰 있다. 따라서 같은 가족 안에서 시간이 흐른 사람들과 시간이 흐르지 않은 사람이 공존한다.

복수여행은 이 둘의 시간을 다시 맞추는 과정이다. 그래서 여행이 진행될수록 네 모녀는 범인을 향해 가까워지는 동시에 서로의 상처에도 가까워진다.

'경주기행'은 '죽이러 가면서 살아나는 가족', '죽이러 떠난 가족이 오히려 자신들의 삶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다. '경주기행'에서 복수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쩌면 범인이 아니라 8년 동안 그 사건에 붙잡혀 있던 가족 자신일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범인은 어떤 벌을 받았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이 가족은 마침내 경주를 떠날 수 있는가?"이다. '경주기행'은 8월26일(수) 개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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