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22년째 느는 유방암… 출산율 저하가 증가세 방아쇠될 수도
만혼·출산율-모유수유 감소 등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
5년 생존 94%… 치료수준 세계적
조기진단·치료가 사망률 낮춰
“올해 연말 정기 검진을 통과하면 5년 완치 판정을 받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의료진들의 좋은 기운을 받아 완치 판정을 꼭 받고 싶은데요. 응원하는 마음으로 제게 박수 한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지난 12일 열린 한국유방암학회 추계학술대회에 강연자로 나선 40대 중반의 유방암 환자 A씨가 투병 의지를 다지며 던진 말이다. 2019년 말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은 뒤 코로나 유행 기간 힘든 항암과 수술, 방사선 치료를 견뎌왔고 이제 암을 이겨내는 순간을 목전에 두고 있다. 강연장을 찾은 많은 의료진이 격려와 지지의 박수를 보냈다.
국내 여성암 1위인 유방암은 전국 단위 암통계가 시작된 1999년 이후 20년 넘게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조기 검진 및 진단 비율이 높고 표준 치료법의 적극적인 활용 덕분에 5년 생존율은 94%에 달한다. 10년 생존율 또한 90%에 육박한다. A씨처럼 유방암을 극복하는 환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내 유방암 경험자는 30만명을 넘어 전체 여성 암 유병자의 22.2%를 차지하고 있다. 학술대회에선 ‘한국인 유방암의 현주소와 미래 변화 양상’이 발표됐다.
학회가 국가암등록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1년 기준 ‘0기 암’으로 불리는 상피내암(5908명)과 유방암(2만8720명)을 합쳐 3만5000여명이 발생했다. 연평균 유방암 발생률은 2007년까지 6.8%씩 증가 추세를 보였으나 그 이후 4.6%로 증가폭이 다소 둔화됐다. 김현아 한국원자력의학원 외과과장은 “연령 표준화 발생률로 보면 연간 10만명 당 68.6명으로 아직은 미국 영국 일본 등에 비해 낮은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북미, 서유럽과 함께 유방암 발생률이 높은 국가에 속한다”면서 “주요 암 중에 유방암의 증가 속도가 제일 빠르다”고 설명했다.
학회는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3만665명(여성 3만536명, 남성 129명)의 신규 유방암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국내 발생 여성암의 21.8%를 차지해 가장 흔한 암종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박세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외과 교수는 “유방암의 증가 이유를 단정할 순 없지만 늦은 결혼이나 비혼 여성의 증가, 출산율 저하와 모유수유의 감소, 이른 초경과 늦은 폐경에 따른 에스트로겐 노출 기간 증가 및 치밀 유방 여성의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치밀 유방은 유선 조직 밀도가 높아 유방촬영 시 하얗게 보여 암과 구분이 어렵다.
유방암 사망률도 당분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여성 암 사망자의 8.9%가 유방암이었다. 폐암과 대장암, 췌장암에 이은 4위에 해당됐다. 올해 유방암 사망 예상 환자는 3039명(연령 표준화 사망률은 10만명 당 5.8명)으로 추산됐다. 전체 여성 암사망 원인의 9.2%를 차지해 4위를 지킬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2022년 기준 선진국의 연령 표준화 사망률 즉, 미국 12.2명, 영국 14명, 일본 9.7명에 비해선 다소 낮은 편이다. 국가건강검진 활성화로 인한 조기 진단(상피내암·초기 유방암 단계)이 늘었고 유방암 특성에 맞는 표준 치료가 잘 이뤄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미국, 일본 등과 달리 국내 유방암은 40대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2021년 조사에선 암 진단 시 중앙 나이가 53.4세였다. 2010년 이후 50세 이상에서 발생률이 지속적 증가해 폐경 후 유방암 환자가 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박 교수는 “다만 연령별 발생 빈도가 미국처럼 연령이 높아지면서 암 발생이 증가하는 양상의 서구화 패턴을 따라갈지는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학회는 유방암 발생 나이가 점차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40대 이하 젊은 유방암 환자가 줄지 않는 이유로 서구화된 식생활과 음주·흡연, 운동 부족 및 비만, 유전력 등을 꼽았다.
유방암학회 이사장인 한원식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는 “유방암은 향후 10년 이상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며 특히 한국은 출산율이 전 세계에서 꼴찌 수준이기 때문에 미래에 더 높은 유방암 발생 국가가 될 수도 있다”면서 “다행히 유방암 치료가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철저한 검진 등 대국민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학회는 30세 이후 매월 유방 자가 검진, 35세 이후엔 2년 간격 의사에 의한 검진, 40세 이후엔 1~2년 간격의 임상 진찰과 유방 촬영, 고위험군은 의사와 상담을 통한 수시 검진을 권고하고 있다.
이 밖에 고령화 속에 증가하는 유방암 완치자 및 경험자들의 재발이나 2차암 예방, 정신건강·심리 부분을 돕기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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