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茶 이야기’] (21) 상견니 | 오묘하고 재미있는 대만 버블티의 세계

김소연 매경이코노미 기자(sky6592@mk.co.kr) 2024. 2. 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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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차 이야기>는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만난 차와 관련된 이야기를 모티브로 ‘알아두면 쓸 데 많은, 재미있는’ 차 이야기를 술술 읽어나갈 수 있게 풀어낸 스토리텔링 연재물입니다. 기자 구독을 누르면 매월 1회 ‘차(茶라)는 렌즈를 통해 풍성한 문화·예술·역사 이야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좋아요’와 ‘댓글’ 공유는 콘텐츠 제작과 전파에 큰 힘이 됩니다.
창밖으로 하나둘씩 불빛이 꺼질 때쯤이면 하늘에 편지를 써/날 떠나 다른 사람에게 갔던 너를 잊을 수 없으니내 눈물 모아서 하늘에너의 사랑이 아니라도네가 나를 찾으면 너의 곁에 키를 낮춰 눕겠다고잊혀지지 않으므로 널 그저 사랑하겠다고그대여 난 기다릴거예요내 눈물의 편지 하늘에 닿으면 언젠가 그대 돌아오겠죠 내게로난 믿을 거예요 눈물 모아…
‘상친자’라는 단어를 아시는지? 이 단어를 안다면 <상견니> 마니아거나, <상견니>를 보지는 못했지만 워낙 드라마와 영화에 빠삭하거나, 아니면 MZ거나 셋 중 하나일 확률이 높다.

‘상친자’도 어려운데 ‘상견니’는 또 뭐냐 하실 분도 많을 터. 상견니는 직역하면 “너를 보고 싶어”라는 뜻. ‘상친자’는 ‘상견니에 미친 자’라는 의미다. ‘상친자’는 2019~2020년 아시아권에서 신드롬적인 인기를 끌었던 13부작 대만 드라마 <상견니> 이후 생겨난 단어다.

남녀 주인공 허광한과 가가연을 아시아권 톱스타로 밀어올린, 그 <상견니>는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2023년 1월 25일 개봉했던 영화 <상견니>는 딱 1년 만인 2024년 1월 25일에 재개봉했다. 영화에서도 드라마에서처럼 허광한, 가가연 두 사람이 똑같이 주인공을 맡았다. 13부작 드라마를 다 볼 여유가 없거나, 드라마를 다 보고나서도 여운을 채 내려놓지 못하고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한 일종의 ‘팬 서비스’ 개념이라는 전언이다.

대만 드라마와 영화는 안 봐서 모르지만 한국 드라마만큼은 자신 있다는 분들. 그렇다면 넷플릭스에 공개된 <너의 시간 속으로>는 아실런지. 안효섭, 전여빈 주연 <너의 시간 속으로>는 <상견니>의 한국판 리메이크작이다.

2009년 어느날, 리쯔웨이(허광한 분)와 황위쉬안(가가연 분)은 버블티 가게에서 우연히 만난다. 황위쉬안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버블티 가게에 리쯔웨이가 밀크티를 사러 온 것.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그러나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 같은 기시감과 묘한 설렘을 느낀다.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리쯔웨이와 가까워진 황위쉬안. 둘은 자연스레 연인이 된다.

그리고 2017년, 어엿한 직장인이 된 황위쉬안은 상하이에서 일할 기회를 얻는다.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황위쉬안. 애인 리쯔웨이와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하는 상황에 아쉬워하는 것 같지만, 보면 볼수록 이 커플 뭔가 쫌 이상하다. 로맨스가 갑자기 스릴러로? 물음표가 달릴만한 순간, 감춰져 있던 리쯔웨이와 황위쉬안의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상견니’의 두 주인공 처음 만나는 곳이 버블티 가게
해당 가게에 가서 남자 주인공처럼 주문하기 트렌드
복잡하게 뒤엉킨 타임라인 속에서 사랑하는 리쯔웨이를 구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황위쉬안. 타임라인이 꼬일 때 마다 낡은 테이프 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으니 바로 ‘라스트 댄스’다. 한국판 드라마 <너의 시간 속으로>에서는 ‘라스트 댄스’ 대신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가 뒤에 깔린다.

몇 날 며칠을 꼬박 <상견니> 얘기만 해도 모자랄 것 같지만, 영화가 아닌 차가 주제니 정신 차리고 차 이야기로.

영화 시작 부분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버블티 가게가 실제로 타이베이에 있다. ‘라이크티 송산점’. 이미 ‘상친자’들의 ‘상견니 투어’ 제1 방문지가 된 카페다. 라이크티 송산점에 가서 리쯔웨이가 늘 주문했던 대로 버블티를 주문하는 것이 ‘상친자 상견니 투어’의 핵심이다. 어떻게 주문하느냐고? 이렇게 외치면 된다.

“췐탕 웨이빙”

‘당도 100%, 얼음 조금’이라는 의미다.

이렇게 주문한 음료를 받아들고 인증샷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으로 드디어 ‘상친자 상견니 투어’의 막이 오른다. 인스타그램에서 상견니 투어라는 태그를 검색하면 관련 사진을 수도 없이 만날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상견니 투어’를 검색하면 상견니 주인공이 처음 만난 버블티 가게를 다녀왔다는 내용의 글과 사진을 수도 없이 볼 수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버블티(Bubble tea)는 대만에서 만들어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차다. 우리나라에는 대만 버블티 브랜드인 ‘공차’가 들어오면서 버블티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홍차나 우롱차를 베이스로 우유나 식물성 밀크를 섞어 밀크티를 만든 후 타피오카펄을 넣은 것이 전통의 버블티다.

최근에는 펄 대신 젤리나 푸딩을 넣기도 한다. 우유를 넣지 않고 만들거나 차를 넣지 않고 만든 버블티도 있다. 생과일즙이나 청량 음료를 베이스로 만들기도 하고 스무디 형태도 볼 수 있다.

간단하게 ‘타피오카펄을 넣은 밀크티’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사실 대만 버블티는 그저 밀크티라고 단언하기에는 상당히 오묘하고 깊은 세계를 자랑한다. 무엇보다 대만 버블티는 일반적인 밀크티처럼 베이스가 홍차가 아닌, 우롱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만 버블티 브랜드 ‘공차’가 들어오면서 버블티가 널리 알려졌다.
대만은 ‘차’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나라다. 대만이 원래 중국 땅이었음을 기억하면 바로 이해가 되려나.

대만은 중화민국으로 독립하기 전까지는 원래 복건성에 속한 부속 섬이었다. 중국 복건성은 중국에서도 청차의 지역으로 유명하다.(6대 다류 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 중 청차.) 당연히 대만도 청차를 주로 생산했다. 청차를 대만에서 부르는 이름이 우롱차다. ‘녹차’와 ‘홍차’에 이어 ‘우롱차’ 정도는 이름을 들어봤다는 분이 많다. 2000년대 들어 대만에서 ‘캔’ 형태로 만들어진 우롱차가 한국에 들어오고 노래방에 많이 깔리면서 ‘우롱차’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졌다.

뭉뚱그려 ‘대만 우롱차’지만 ‘대만 우롱차’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대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방미인’도 있고, 대만 여행객이 가장 많이 구입해가는 ‘아리산 고산차’같은 ‘고산차(高山茶·높은 산에서 만든 차)’도 있고, ‘문산포종’ ‘동정오룡’ 등 중국에서 기원이 된 우롱차도 있고, ‘대차’라는 이름으로 카테고리 지어지는 대만에서 개량된 진짜(?) 대만 우롱차도 있다. 우롱차가 거의 대부분이지만 대만 중부 일월담 호수 주변에서 주로 생산되어 ‘일월담홍차’라고 이름이 붙은 홍차도 있다.

오늘 풀어놓을 차의 세계는 대만에서 개량되어 만들어진 ‘대차’다.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과 만나 자연스레 씨앗이 생기는 것을 ‘유성생식’이라 한다. 이때 돌연변이가 생기기도 하는데, 차를 상품화하는 입장에서 변이는 반가운 일이 아니다. 매번 같은 향과 맛의 차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차의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가지를 꺾어 꺾꽂이하는 식으로 차나무를 관리했다. 그러다 서로 다른 종류의 나무를 접붙여 연결시키거나 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향미의 차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대만에서 특히 이 같은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대만에서는 그렇게 새로 생겨난 품종에 대차1호, 대차2호 이런 식으로 호수를 붙였다. 현재 22호까지 번호가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대차 번호를 붙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수많은 전문가와 관계자들이 번호를 붙일 만하다고 동의해야 비로소 번호를 붙일 수 있다.

번호가 붙는다고 모두 차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22개 대차 중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대차8호 ‘아살모’, 대차12호 ‘금훤’, 대차 13호 ‘취옥’, 대차 18호 ‘홍옥’, 대차 21호 ‘홍운’ 정도다. 이 중 ‘아살모’ ‘홍운’ ‘홍옥’은 홍차고, ‘금훤’과 ‘취옥’이 우롱차다. 대차 18호 ‘홍옥’과 21호 ‘홍운’은 홍차다.

대만 버블티는 베이스를 주로 대만 우롱차로 만들어
1년에 6~8차례 채엽하는 ‘농향 사계춘’ 가장 많이 사용
대만 일월담 지역에서 생산되는 ‘일월담 홍차’는 각각 대만 대차18호, 21호인 ‘홍옥’ ‘홍운’ 품종이 대부분이다.(左) 오른쪽은 분유향이라 불리는 ‘유향’이 특징인 대만 대차 12호 ‘금훤’
대만에 이처럼 다양한 우롱차와 대차가 있지만 대만 버블티 브랜드들이 베이스로 주로 쓰는 우롱차는 대만 우롱차의 전통 품종도 아니고, 개량종인 대차도 아닌, 일종의 변이인 ‘농향 사계춘’이다.

여기서 잠깐. 농향이 무얼까? 향은 향인데 뭔가 농익은 향? 딩동댕~ 차는 보통 ‘청향’ 계열과 ‘농향’ 계열로 나뉜다. ‘청향’ 계열이 푸릇푸릇한 느낌의 향이라면 ‘농향’ 계열은 더 묵직한 느낌의 향이다. ‘청향’ 계열 차는 탕색이 주로 연노랑색을 띠는 데 반해 ‘농향’ 계열 차는 훨씬 ‘갈색’이거나 ‘붉은’ 탕색이 난다.

그럼 사계춘은? 사계춘은 1980년대 대만 어느 차밭에서 우연히 발견된 우롱차의 한 종류다. ‘사계절이 봄’이라는 뜻의 이름은 ‘병충해에 강하고 기후와 상관없이 사계절 내내 너무 잘 자란다’는 의미에서 붙었다. 잘 자란다는 것은 그만큼 양이 많다는 얘기. 양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가격이 저렴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실제 연간 6~8차례 채엽이 가능한 사계춘은 대만 우롱차 중 가장 저렴한 차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대만 버블티 업체들이 버블티 베이스로 주로 사계춘을 쓰는 이유다. 대만 버블티뿐 아니다. 일본 식당에서도 우롱차를 내놓는 곳이 많은데 역시 대부분이 사계춘을 우려낸 우롱차다.

이 정도면 대만 우롱차와 버블티에 대한 궁금함이 대충 풀리셨으려나? 그렇다고 공차 같은 곳에 가서 아르바이트 생에게 “이 버블티는 사계춘으로 우려낸 건가요?”라고 질문할 독자는 없으실 터. 버블티 전문점에서는 어울리지 않겠지만, 우롱차를 내어놓는 스시집이나 일식당에서는 질문해볼 수 있겠다.

“혹시 이거 사계춘인가요?”

맞으면 “그럴 줄 알았어요. 딱 사계춘 맛이어서요.” 하면 되고, 아니면 아니어도 상관없다. “아니구나, 사계춘 맛이 나서 그런 줄 알았어요” 하면 될 테니. 맞으면 맞는 대로, 아니면 아니어도 상관없이, 차 쫌 아시는 분이 되는 건 다를 바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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