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고지’가 누구에게는 먹히고 누구에게는 독이 됐던 이유, 유전자에 있었다 [푸드 트렌드]
사실 '정밀 영양'은 막연한 미래에나 상용화될 개념처럼 들린다. 당장 당뇨병, 고혈압 등 환자도 개별로 어떤 건강기능식품을 먹어도 되는지 알기 어려운 마당이기 때문. 모든 개인이 자기 유전자에 딱 맞는 음식을 먹는다는 건 최근까지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챗 GPT가 나왔다. AI 개발 속도가 빨라져, 확인된 영양 유전체 연구 데이터와 사례를 저장하고 학습해 개인에게 딱 맞는 식단을 곧 제시해 줄 수 있게 됐다.
◇정밀 영양, 선진국은 이미 연구 돌입
'정밀 영양' 트렌드는 미국에서 신호탄을 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최근 2020년부터 2030년까지 진행할 10년간의 정밀 영양 연구 전략을 발표했다. 가장 큰 목표는 만성질환자를 줄이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대에서 20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질병 부담을 늘리는 가장 주요한 요인은 고혈당 식단 등을 포함한 만성질환 유발 생활 습관이었다. 전 세계인의 절반 이상이 만성질환으로 사망한다. 만성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들어가는 신약 개발비, 치료 개발 연구비 등은 어마어마하다. 다행히 만성질환은 '만성'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천천히 생기는 병이라 '예방'이 가능하다. 나라 살림을 꾸리는 정부입장에선 만성질환을 예방의 핵심인 '정밀영양'을 실현하는 게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투자 대비 효율이 높은 선택인 것이다. NIH는 AI로 개인의 음식과 식습관 반응을 예측하는 알고리즘 개발을 위해 'All of us'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1만 명을 대상으로 식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영국, 이스라엘 등에서도 이미 대규모로 정밀영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EU에서는 정밀 영양 연구가 주요 과제로 포함된 'Food 2030' 프로젝트에 8억 8000만 유로(한화 약 1조 3000만 원)를 투자했다. 영국에서는 50만 명이 포함된 대규모 의학 데이터베이스 Biobank를 수집하고 있는데, 식이 데이터도 확보해 관련 연구가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스라엘도 1만 명 식이 데이터를 수집하는 '10K 프로젝트'를 2018년에 시작했고, 25년간 진행할 계획이다.
정밀영양협회 오상우 공동회장(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은 "DNA가 갖고 있는 정보는 책으로 비유하자면 6600권에 해당하는 양이고, 장 등 세포에 있는 유전자까지 고려하면 그 수는 엄청나다"며 "AI로 필요한 정보를 뽑아서 사용하는 기술이 이제 나온 것으로, 챗GPT처럼 실용화된 기술들이 곧 눈 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했다. 정밀영양 서비스 시장은 2025년 164억 달러(한화 약 21조 640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비스 상용화 범위, 조금씩 넓어지는 중
취지는 공감된다. 하지만 '초맞춤형 식단 관리'라니, 잘 그려지진 않는다. 일상에서 어떻게 활용한다는 걸까? 정밀영양의 핵심은 '유전자'다. 여기에 가족력, 식사·운동 습관 등 생활 습관을 고려해 맞춤 식단을 제공하는 게 목표다. 이미 외국에서는 서비스가 실시되고 있다. 네슬레는 지난 2018년 일본에서 AI를 이용한 개인 맞춤형 건강식품 추천 서비스를 시작했다. 고객의 DNA를 구강 채취하는 홈 키트를 배포한 뒤, 유전사 검사를 진행한다. AI로 부족한 영양소를 파악하고, 모두 보충할 수 있는 맞춤 제작형 차 캡슐, 스무디, 비타민 과자 등을 판매·추천한다. 일 년 만에 사용자 수는 10만 명을 넘었다. 이 외에도 미국 비오메, 홍콩 프레네틱스, 싱가포르 이매진 랩스, 영국 피트니스진스 등 유전자 검사 후 맞춤형으로 보충제 처방, 식단 제안, 식이 처방 등 건강을 관리하는 스타트업이 여러 국가에서 생기고 있다. 유전자 검사가 아닌 대변으로 장 내 미생물 환경을 검사해 맞춤 식이를 처방하는 서비스도 나오고 있다. 현재 식단 조사는 직접 기재, 촬영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향후 웨어러블을 이용해 자동으로 정보가 수집되는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 유전자 검사가 일상화되기에는 기술과 인식 그리고 영양 유전체 관련 연구 결과도 부족하다. 일단은 유전자, 장 내 미생물 환경 검사 없이 건강검진 결과, 일상생활 정보 등을 바탕으로 식습관 개선을 시도하는 '정밀 영양' 서비스가 증가하고 있다. 초정밀 개인화는 아니어도, 연령별·성별 특성을 고려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심혈관질환이 유발될 수 있는 혈관의 변화는 10대 때부터 시작되므로 10~20대에는 오메가3 등 혈행을 개선하는 건강기능식품을, 간 질환 위험이 커지는 30대는 밀크씨슬 등 간 관련 건강기능식품을 추천하는 식이다. 성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중년 여성은 관절염, 중년 남성은 전립성비대증에 초점을 맞춰 건강기능식품을 추천하는 게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런 서비스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상용화됐다. 풀무원에서는 건강검진 등의 데이터를 고려해 맞춤형 식단을 제공하는 '디자인밀'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빅썸바이오의 '메디어리', 콜마비앤에이치의 '아이엠' 등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소분, 배달 서비스도 활성화됐다. 고려대 식품생명공학과 홍지연 교수는 정밀영양학회 심포지엄에서 "정밀영양 기술은 내 몸에 더 건강한 음식이 뭔지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주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했다.
◇'식이 영양 데이터', 우리나라는 내년부터 수집 예정
우리나라도 '정밀 영양' 분야의 발달은 그 어느 나라보다 필요하다. 만성질환의 핵심인 '비만'을 앓고 있는 인구가 2022년 기준 열 명 중 네 명 가까이 되고, 건강관리가 중요한 고령 인구도 900만 명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환자식 시장 규모가 2021년 1648억원을 넘어섰을 정도다. 하지만 아직 정밀 영양 산업은 걸음마 수준이고, 제도적인 기반도 부족하다. 아직 유전자 등 구체적인 정보를 포함하거나 개발한 알고리즘을 이용하기보단, 건강검진과 자가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한 상품이 대다수다. 한국영양학회 회장을 역임했던 성신여대 식품영양학과 이명숙 교수는 지난 2023년 3월에 게재된 의학한림원 뉴스레터에서 "우리나라의 유전체 기반 응용 기술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개발소요 시간이 약 10년 정도 더 걸릴 것"으로 추정했다.
가장 급한 건 데이터 구축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정부가 주도로 한 식이영양 데이터 포함 바이오데이터가 없다. 다른 나라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모으기 시작한 것을 고려하면 비교적 늦다. 심포지엄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식생활영양안전정책부 기용기 과장은 "내년 식이 영양 데이터를 포함한 역학조사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며 "현 정부에서는 국정과제 25, 67, 68번 등을 통해 정밀 영양 분야 사업 발달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25번은 '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 67번은 '예방적 건강관리 강화', 68번은 '안심 먹거리 건강한 생활환경'과 관련된 정책으로, AI 기술을 이용해 맞춤형 만성질환 예방 관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눈에 띄게 진행된 사업으로는 개인이 직접 업체를 통해 받을 수 있는 유전자 검사인 DTC(Direct to Consumer) 유전자 검사 항목을 확대해, 규제 샌드박스 특례로 DTC 기반 건강기능식품 추천과 판매 서비스를 사업화한 것이 있다. 또 내년 1월부터 약국 등에서 개인 맞춤형 건강기능식품을 소분해 팔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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