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만 잘해선 안돼!" 고시엔 우승 이끈 '오키나와 무리뉴'의 지도법...선수 52명과 매일 대화 노트 교환 [스춘 이슈]

배지헌 기자 2025. 8. 2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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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선수로, 2008년·2025년 감독으로 3번 정상...일본 언론 "대화 노트가 우승 비결"
오키나와의 무리뉴, 히가 고야 감독(사진=일본 방송화면)

[스포츠춘추]

오키나와쇼가쿠를 2025년 여름 고시엔 우승으로 이끈 '오키나와의 무리뉴' 히가 고야 감독의 지도법이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23일 결승에서 니혼대 제3고를 3대 1로 꺾고 오키나와현 대표로는 15년 만에 여름 우승을 차지한 오키나와쇼가쿠. 그 성공 뒤에는 히가 고야 감독만의 특별한 소통법이 있었다.

히가 감독만큼 고시엔과 인연이 깊은 지도자도 드물다. 1999년 3학년 때 오키나와쇼가쿠의 에이스 좌완으로 봄 고시엔에서 오키나와현 첫 우승을 이뤘다. 특히 준결승 PL학원전 연장 12회 212구 완투승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경기다.

2008년에는 26세 나이로 감독이 되어 다시 봄 고시엔을 제패했다. 최연소 우승 감독 기록이었다. 스포츠호치는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하고, 감독으로 2번째 우승까지 한 건 중쿄학원의 스기우라 후지후미 감독 이후 두 번째"라고 전했다.

히가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인 '대화 노트'는 위기에서 탄생했다. 2006년 감독 취임 3개월 만에 야구부내 폭력 사건으로 한 달간 대외경기 금지 처분을 받은 일이 전환점이 됐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부임 초기 히가 감독은 "감독이 바뀌어서 못 이긴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선수들에게 강제로 강훈련을 시키는 일방통행 지도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스포츠호치에 따르면 그때 히가 감독이 가장 먼저 생각한 건 "부원들의 마음을 아는 것"이었다. 야구부 전 부원 52명이 매일 쓰는 노트를 히가 감독이 1시간 넘게 들여 일일이 확인하고 답을 써주는 시스템을 시작했다. '마음의 캐치볼'이 이뤄지면서 감독과 선수 사이 유대감이 생겨났고, 결국 2008년 봄 고시엔 우승으로 이어졌다.

지금 히가 감독의 철학은 완전히 달라졌다. 선수들에게 "하면 안 되는 것만 전하고" "코치에게 맡길 부분은 맡기며" 자율성을 존중한다. "내가 하라고 하는 것보다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게 더 좋다"는 게 현재 지도 철학이다.
2025 여름 고시엔 우승을 차지한 오키나와쇼카쿠(사진=일본 방송화면)

히가 감독의 노트 피드백은 때로 매섭다. 스포츠 그래픽 넘버에 따르면 그는 선수들에게 "맛있는 요리에는 맛있다고, 맛없는 요리에는 맛없다고 말하는 게 너희들에게도 좋을 것"이라며 솔직한 소통 방식을 고수한다.

실제 사례들을 보면 그의 철학이 엿보인다. 노트에 그날의 연습 메뉴만 적은 부원에게는 "너의 노트 내용은 팀에서 가장 얕다. 아무것도 생각 안 하기 때문에 이 정도 문장밖에 안 된다"고 혹독하게 지적했다. 새 팀 주장이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고 싶습니다"라고 쓰자 오히려 "여러 가지를 시도하지 마라. 1개나 2개면 충분하다. 너는 생각이 너무 많은 성격이니까 단순하게 가라"고 조언했다.

투박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른 세심함도 있다. "점심시간에 도서관 선생님이 응원한다고 말씀하셨어요"라고 쓴 학생에게는 "도서관 선생님에게도 훌륭한 이름이 있다. 이름으로 써라. 이름을 모른다는 걸 상대가 알면 충격받을 것이다"라고 인간관계의 기본까지 가르쳤다.

스포츠 그래픽 넘버는 히가 감독이 "야구만으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고 보도했다. "매일 같은 통학로라도 뭔가 변화를 발견하는 감성을 기르고 싶다. 그게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과도 연결되고 야구와도 결부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어느 팀이든 유니폼 입으면 열심히 연습한다. 그래서 유니폼 벗은 후가 승부다. 수업이나 교실에서의 태도가 그대로 야구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히가 감독의 교육관은 문무겸비를 추구한다. 이는 특별진학코스 학생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에서도 드러난다. 야구부원 52명 대부분이 체육코스인 가운데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특별진학코스는 3명뿐이다. 수업 시간표가 달라 평소 야구부 연습에 참가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도 히가 감독은 똑같은 관심을 보인다.

특별진학코스 2학년 오시로 다쿠야는 "우리는 히가 선생님께 연습을 봐 달라고 할 기회가 거의 없다. 이 노트만이 우리 연습 내용이나 생각을 선생님께 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말했다. 1학년 때는 단 한 번도 감독의 답변을 받지 못했지만, 처음 히가 감독의 글씨를 노트에서 발견했을 때는 "정말 기뻤다"고 회상했다.
오키나와의 무리뉴, 히가 고야 감독(사진=일본 방송화면)

사회과 교사이기도 한 히가 감독은 그라운드와 교실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중심타자 히가 다이토는 "야구할 때는 엄청 엄하지만 수업이나 학교생활에서는 상냥한 분이다. 그라운드에서는 사람이 바뀐다"고 말했다.

평소엔 학생들과 장난치며 친근하게 지내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확실히 달라진다. 준결승 야마나시가쿠인전에서 실수가 계속되자 "이런 한심한 플레이 하고 너희들이 마지막을 맞으려고 하느냐"고 호통치기도 했다. 주장 마키시 다쿠토는 "감독님은 이기는 데 열정적인 분이다. 때로는 엄하게 꾸짖어주시고, 기분을 올려주는 말씀도 해주신다"고 신뢰를 표했다.

이번 대회에서 히가 감독은 축구계 명장 조제 무리뉴와 닮았다며 '오키나와의 무리뉴'로 불리며 화제가 됐다. 결승 우승 후 "무리뉴가 야구도 우승하냐" "역시 오키나와의 무리뉴가 우승했네, 웃긴다"는 반응이 일본 SNS에서 쏟아졌다. 이에 히가 감독은 "오래전부터 들었던 소리다. 야구 아닌 부분에서도 오키나와쇼가쿠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며 쿨하게 반응했다.

"야구만으로는 안 된다"는 히가 감독의 철학은 '야구만 잘하면 된다', '야구선수가 무슨 공부냐'는 인식이 여전한 한국 학생야구에 신선한 충격을 준다. 매일 1시간씩 52명의 노트를 읽으며 소통하고, 도서관 선생님 이름도 제대로 써야 한다고 가르치는 세심함. 야구도 결국 교육의 일환이며, 인간적 성장 없이는 진정한 승리도 없다는 것을 증명한 히가 감독의 성공은 한국야구계에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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