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23분’ 발언…‘한일 문제·근로시간’ 정면돌파 시도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한·일 관계와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를 둘러싼 비판 여론에 대해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윤 대통령은 발언은 23분 동안 이어졌다.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했던 연설과 발언 중에서 가장 길었다. 이번 발언의 글자 수만 5795자 분량이었다.
윤 대통령은 “저 역시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편한 길을 선택해, 역대 최악의 한·일 관계를 방치하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면서 “저마저 반일 감정을 자극해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한다면, 대통령으로서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속내까지 털어놓으면서 한·일 관계 정상화 해법과 관련해 국민들의 설득을 구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등 한·일 정상회담 내용과 관련해 의혹을 제기하는 위안부 합의 이행·독도 영유권·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문제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발언에서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 등 국내외 지도자들의 발언을 인용했다. 부정적인 여론을 극복한 지도자들의 결단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분석됐다.
윤 대통령은 “만약 우리가 현재와 과거를 서로 경쟁시킨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라는 처칠 전 총리의 명언으로 발언을 시작했다.
한·일 관계 정상화 노력이 미래를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점을 빗댄 것이다.
윤 대통령은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례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1965년 박 전 대통령이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했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당시 굴욕적이고 매국적인 외교라는 극렬한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박 대통령의 결단 덕분에 삼성, 현대, LG, 포스코와 같은 기업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부침을 거듭하던 한일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라며 “김 대통령은 일본 방문 연설에서 ‘역사적으로 한·일 관계가 불행했던 것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7년간과 식민 지배 35년간이었다.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라고 얘기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의 일화도 꺼내 들었다.
윤 대통령은 “저우언라이 총리는 1972년 일본과 발표한 국교 정상화 베이징 공동성명에서 일본에 대한 전쟁 배상 요구를 포기한다고 했다”며 “당시 저우언라이 총리는 ‘전쟁 책임은 일부 군국주의 세력에게 있으므로, 일반 일본 국민에게 부담을 지워서는 안되며 더욱이 차세대에게 배상책임의 고통을 부과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인용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 회복을 통해 경제 분야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의 개선은 우선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뛰어난 제조기술과 일본 기업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이 연계돼 안정적인 공급망이 구축될 것”이라며 “용인에 조성할 예정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일본의 기술력 있는 반도체 소부장 업체들을 대거 유치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반도체 첨단 혁신기지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한국과 일본은 세계 1, 2위 LNG 수입 국가”라며 “양국이 ‘자원의 무기화’에 공동 대응한다면 에너지 안보와 가격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에 대해서는 “주당 60시간 이상의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며 “정책의 후퇴라는 의견도 있는 것을 알고 있으나 주당 근로시간의 상한을 정해 놓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노동 약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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