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숙제한 9살 아이에게 보여달라고 한 것
초등학생 대상으로 1인 과외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아이들을 관찰하고 가르치며 생기는 소회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기자말>
[김은혜 기자]
내게 '동시 천재'라 불리는 9살 여자아이와 수업을 하던 중이었다. 문득 최근 6학년 학생과의 수업 중 있었던 일화를 꺼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팔을 활짝 벌리며 내 목덜미에 안겼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
"선생님 미안해요!!!"
저학년과의 수업에는 동시를 종종 활용한다. 올해 아홉 살이나 되었지만 영어 유치원을 다녔다는 이유로 여태 한글도 완전히 떼지 못한 아이에게 독서 감상문 쓰기를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외로 감동적인 동시를 척척 써내는 녀석에게 계절도 바뀌었으니 '봄'이라는 주제로 동시 짓기 숙제를 내주었다.
동시의 제목은 '봄의 감동'. 읽기도 전에 이미 감동이다. 게다가 믿기 어려울 정도의 표현력, 감수성, 완성도. 혹시 책이나 AI를 활용한 것인지 슬쩍 찔러봤다. 본인이 직접 만든 것이라며 으스대기까지 하기에 자꾸 의심하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전, 그것이 거짓으로 밝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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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nsplash Image |
| ⓒ solenfeyissa on Unsplash |
설마 하는 마음으로 '카피킬러' 사이트에 접속했다. 문서의 표절 여부를 검사하는 이 서비스는 웹에 게시되어 있는 텍스트와의 일치 뿐 아니라 AI 생성 여부까지 검출하는 프로그램이다. 도구 이름도 무려
'GPT 킬러'. 결과는 AI 작성률 100%였다. 사실 확인 차 당사자에게 물었더니 "다시 쓸게요"라고 대답했다. "아래의 개요로 논설문을 작성해 줘"라는 프롬프트를 입력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동시 천재'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고백을 한 것이다. 일기 쓰기와 동시 짓기 숙제를 할 때 챗GPT를 썼다고 말이다. 나는 챗GPT를 활용하는 과정을 내게 직접 보여 달라고 했다. AI를 어떤 식으로 쓴다는 건지, 프롬프트는 어떻게 작성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전문을 그대로 옮겨다 적은 것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방식은 이랬다. 챗GPT에게 주제를 던져주고 동시를 하나 만들어 보라고 명령한 뒤,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일단 자기 나름대로 분석한다. 그리고 동의가 되지 않는 표현은 자신의 언어로 변환하고, 썩 내키지 않는 문단은 떠오르는 경험이나 감정을 담아 재구성하는 방식이었다.
'GPT 킬러'는 어절과 문장의 수가 적은 동시의 AI 생성 여부는 정확하게 검사하지 못했다(AI가 생성한 동시와 AI의 생성물을 사람이 일부 수정한 동시의 AI작성률은 모두 0%였다). 하지만 이 아이가 내게 보여 준 그간의 과제물들의 AI작성률이 6학년 아이의 것과는 다르게 100%가 아님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수업을 해오면서 알게 된 이 아이의 특성에 있다.
이 아이는 동시를 짓든, 마인드맵을 그리든 간단한 게임을 하든 본인이 직접 그 절차와 방식을 정해야 한다. 한글도 아직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선생님이 더 적절한 단어나 표현을 아무리 제안해도 그것이 성에 차지 않으면 절대 받아들이는 법이 없고, 스스로 생각해 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다.
내가 AI로 동시와 함께 넣을 귀여운 삽화를 그려오면, 연필로 슥슥 그린 색도 칠하지 않은 그림을 버젓이 내놓고 본인이 더 잘 그렸다며 내 것은 거들떠도 안 본다.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하면 다시 그려온단다. 자기 주도적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 자기가 주인이다.
챗GPT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선생님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기 위해 하기 싫은 숙제를 빨리 끝내려고 챗GPT를 활용할지언정, 시키는 대로는 할 수 없다. '개구리가 폴짝 뛰는 모습'을 챗GPT가 "개구리가 하늘로 날아올라"라고 써 줘도 자신의 상상 속에서 개구리가 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으면 이렇게 바꿔버린다.
"개구리는 깜짝 놀라 '누가 와?' 물어요."
"인공지능은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는 단골 논술 주제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단어는 '대체'이다. 특정 대상이 다른 대상을 '대체'한다는 것은 곧 경쟁 우위를 선점한다는 것이다. 대체되는 대상보다 월등하게 우수하거나 상대에게는 없는 고유의 능력으로 그가 속한 사회나 구성하는 요소들을 이끄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상대(AI)에게는 없는 인간 고유의 특성 중 하나로 내가 내세운 의견은 '인간은 행위의 목적을 찾고 방향을 설정하기 위하여 자기 성찰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다른 아이는 동시를 써야 하는데 도통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챗GPT에게 써 보라고 시켜봤더니 영 시원치 않다. 챗GPT가 만든 동시를 일단 한 번 쭉 곱씹어 보니 문득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오빠가 수영장에서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해주어 감동 받았던 순간'을 되새겨보니 꽃이 피는 것 같은 느낌과 비슷하다. 마지막 연을 추가하고 다시 편집한다. 끝으로 제목을 새로 붙인다.
"봄의 감동"
두 학생 모두에게 내가 내준 숙제를 할 때는 AI를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때로는 학생과 함께 사용한다. 우리가 설정한 기준에 부합할 때까지 요구하고, 내려준 응답이 이해될 때까지 다시 묻는다. 더 좋은 응답을 위해 정확한 프롬프트 작성에 대하여 고민하고, 잘못된 응답에 대하여 추궁한다.
아무리 묻고 따져도 챗GPT는 짜증을 내지 않아서 좋다. AI를 쓰는데 그렇게 까지 해야 하냐고 만약 학생이 묻는다면, 스스로 정한 선에서 멈춰도 괜찮다. 본인의 선택이니까. 하지만 의심하기를 멈추지 않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나와 함께 AI를 사용할 줄 아는 고유의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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