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개막을 알린 '적벽대전', 그 진실과 거짓

이준목 2025. 6. 1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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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tvN STORY <신삼국지>

[이준목 기자]

 tvN STORY <신삼국지>
ⓒ tvN STORY
적벽대전(赤壁大戰)은 208년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이 당시 중국 최대의 군벌이던 조조의 대군을 격파한 전쟁이다. 관도대전, 이릉대전과 더불어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3대 전투로도 불리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전투로 꼽힌다. 사실상 이 전쟁을 기점으로 삼국시대가 열리는 분기점이 되는데다, 훗날 삼국의 개국 1세대 주역들이 유일하게 한 자리에 모두 모인 올스타급 전쟁으로서,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도 최대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장면이다.

17일 방송된 tvN 스토리 <신삼국지>에서는 '적벽대전, 삼국지 최고의 지략대결'편이 그려졌다.

당시 후한의 정세는 황제 헌제를 옹립한 조조가 라이벌 원소를 격파하고 화북지역을 평정하면서 명실상부한 전 중국 최대의 세력으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이제 조조는 천하통일의 꿈을 완성하기 위해 남방으로 눈길을 돌렸고, 당시 유표의 사망으로 무주공산이 된 형주를 먼저 점령한다.

당시 조조에게 대항할 수 있는 군벌은 이제 유비와 손권 정도만이 남은 상태였다. 유비는 '한 황실 부흥'을 정치적 이상으로 표방했기에 필연적으로 조조를 역적으로 규정하며 대립할 수 밖에 없는 관계였다. 손권은 강동의 신흥군벌로 아버지 손견-형 손책에 이어 3대째를 이어오고 있는 지역 토착세력이었다.

유비의 책사 제갈량은 조조에게 맞서기 위해 손권과의 연합을 제안한다. 단독으로 조조에게 맞서기에는 전력상 역부족이었던 유비에는 강력한 우군이 절실했다. 반면 손권 세력은 조조에게 항복할지 맞서 싸울지 내부적으로 아직 방향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제갈량이 직접 강동으로 건너가 손권 세력과의 외교에 나선다 제갈량은 혼자서 강동 대신들의 온갖 질문 공세를 받아내면서 "유비와 힘을 합한다면 조조를 격파할 수 있다"라며 설득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더 관심이 많았던 강동의 호족들은 전쟁보다 항복을 바라는 목소리도 많았다.

강동에서 단호하게 항전을 주장한 대표적인 주전파가 바로 주유였다. 강동의 유력 호족인 주유는 손권의 형이자 선대 집권자인 손책과 절친한 동지 사이였고, 손권의 집권 역시 적극 지지하며 손씨 정권이 강동에 자리잡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당시 강동의 군부 1인자이자 정권 실세인 주유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조조와의 전쟁이나 손권-유비 연합의 운명도 결정될수 있는 상황이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주유와 제갈량의 첫 만남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제갈량을 만난 주유는 본심을 숨기고 조조에게 항복할 듯한 의사를 피력한다. 주유의 속내를 눈치챈 제갈량은 그를 일부러 자극하기 위해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다.

"전쟁을 피하고 싶다면 좋은 계책이 있다. 조조가 원하는 미녀 두 명만 바치면 강동은 평화로울 것이다.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진짜 이유는 강동 최고의 두 미녀 자매인 대교와 소교를 얻기 위함이니, 장군은 천금을 주고라도 어서 두 여인을 조조에게 보내도록 하시라."

그런데 제갈량의 이야기를 들은 주유는 격분한다. 대교는 창업군주 손책의 부인이었고, 소교는 바로 주유의 부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제갈량이 사실을 왜곡해 지어낸 '가짜뉴스'였다. 이에 낚인 주유는 곧바로 손권을 찾아가 유비세력과 연합해 조조와 항전 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손권은 주유에게 모든 군권을 맡기고 전쟁을 결심한다.

제갈량에 열등감? 주유는 뛰어난 전략가였다

이 일화는 삼국지연의의 창작이고, 실제 역사에서 손권과 주유는 처음부터 항전 의지가 확고했다. 기록에 따르면 주유는 '조조는 한실의 역적이며 조조군은 강해보이지만 수상전에 약하고 남방의 기후와 환경에 익숙하지 않다'는 약점을 간파하면서 승리를 자신했다고 한다. 주유의 이야기에 자신감을 얻은 손권은 칼을 빼들고 책상을 내리치면서 "앞으로 조조에게 항복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 탁자처럼 되리라"고 일갈해 반대파들을 침묵시켰다.

주유는 흔히 연의의 영향을 통해 제갈량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번번이 당하기만 하는 무능한 라이벌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실제의 주유는 적벽대전을 주도하며 승리를 이끈 총사령관이자, 제갈량 이상의 재능을 지닌 당대의 전략가였다. 연의에서처럼 질투가 심하고 걸핏하면 화를 내는 감정적인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인품이 너그럽고 호방하여 대인관계가 좋았고, 음악같은 예술적 방면에서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연의는 유비의 촉한 세력을 사실상 주인공으로 했기에, 이들과 관계된 상대 진영의 인물들은 폄하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적벽대전에서는 외교적으로 유비-손권 연합 결성을 이끈 것 외에 실제 전투에는 별로 기여한 것이 없던 제갈량의 활약이 크게 과장되기도 한다. 제갈량이 주유와의 내기를 위해 책략으로 조조군의 화살 10만개를 얻어낸 에피소드는 연의의 대표적인 창작이다.

여기서 주유는 매번 제갈량의 재능을 질투하여 죽이려고 하지만, 번번이 제갈량의 책략에 놀아나다가 실패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당시 두 사람의 위상 차이를 고려할 때 주유에게 제갈량은 굳이 그 정도로 경계할 만큼 위협적인 대상이 아니었다. 소설에서 제갈량의 매력과 천재성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애꿎은 주유가 희생양이 된 셈이다.

적벽대전은 연의에 등장한 수많은 전쟁 중에서도 유독 현란한 심리전과 지략대결이 돋보이는 에피소드로 가득차 있다. 주유가 강동군의 명장인 황개를 고의로 매질하고 거짓항복으로 조조를 속이는 '고육지책(사항계)', 책사 방통이 배멀미에 고생하는 조조군을 위하여 선박들을 철쇠로 연결하라는 거짓 조언으로 실제로는 강동군의 화공을 유도하는 '연환계' 등이 대표적이다.

주유는 압도적인 전력차의 조조군을 섬멸하기 위해서는 수전에서 화공을 노리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는 겨울철이라 하필 화공에 필수적인 바람의 방향이 서북풍으로 조조군에게 유리하다는게 마지막 걸림돌이었다. 이에 고민하는 주유에게 제갈량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어 도술로서 바람의 방향을 바꾸겠다고 제안한다.

제갈량의 약속대로 동남풍이 불기 시작하자, 주유의 강동군은 마침내 조조에게 대한 선제공격에 나선다. 조조는 황개의 거짓항복을 믿고 방심하고 있었던데다, 강동군의 화공을 대비하지 못해 기습을 당하며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설상가상 연환계로 서로 연결돼 있던 조조군의 선단은 동남풍을 타고 날아온 불화살이 번지며 불바다가 된다. 결국 조조는 크게 패해 남은 병력을 이끌고 북방으로 도주한다.

조조는 손권-유비 연합군에게 쫓기다가 화용도라는 곳에서 매복하고 있던 관우와 마주친다. 궁지에 몰린 조조는 자신을 생포하러 온 관우에게 과거 자신이 은혜를 베풀었던 추억을 상기시키면서 자비를 호소했다. 의리를 중시했던 관우는 고심 끝에 결국 조조를 놓아주고 만다. 간신히 살아난 조조는 허도로 돌아갔고, 전쟁에서 승리한 유비와 손권은 이후 세력을 확장하며 본격적인 삼국시대의 문을 열게 된다.

'삼국지' 시대의 시작

그렇다면 실제 역사에서 적벽대전의 내용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정사 삼국지에서 적벽대전과 관련된 내용은 총 다섯 군데에서 등장한다. 여기서 화공이나 전투보다도 더 공통적으로 비중있게 언급되는 대목은 '역병'이다.

대부분 북방에서 온 조조군의 병사들은 남방의 기후에 익숙하지 않아 전염병이 유행하며 크게 고생했다. 적벽대전에서 조조군이 압도적인 전력차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적극적인 공세를 먼저 시도한 내용이 단 한번도 없다는 것, 또한 황개의 거짓항복이나 주유의 화공에 너무 쉽게 당한 듯한 속사정도 여기에 있었다.

연의에서는 배를 연결하는 연환계가 방통의 책략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조조가 직접 내린 결정이었다. 화공이 성공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동남풍도 당연히 제갈량의 신비한 능력 때문이 아니라, 당시 저기압의 영향으로 간혹 동남풍이 불기도 한다는 기상변화를 미리 파악하고 있던 주유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공격을 성공시킨 덕분이었다.

또한 연의에서는 조조의 백만대군이 거의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것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전황이 불리해진 조조군이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퇴각한 것에 가깝다. 적벽대전의 패배 이후에도 조조의 세력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 그 증거다. 화용도에서 관우가 조조를 놓아준 에피소드도 연의의 창작이며, 실제로는 유비가 끝까지 조조를 추격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놓친 것이었다.

한편으로 오늘날 학계에서는 적벽대전의 근본적인 패배 원인이 바로 조조의 과욕이었다고 지적한다. 조조는 형주를 갓 병합한 시점에서 이미 명분과 전력상 대항마가 없는 중국의 최대 패자였다. 만일 이 당시 조조가 형주를 먼저 안정시키고, 손권의 지위와 세력을 인정해주면서 적당히 회유했다면 유비는 고립됐을 것이고 굳이 무리한 전쟁을 일으킬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력 차이만 믿고 무리하게 강행한 전쟁은, 오히려 유비와 손권 연합이라는 반조조 세력의 결집을 불러왔고, 적벽대전이라는 뼈아픈 패배로 이어졌다. 조조는 천하통일을 위하 절호의 기회를 바로 눈앞에서 놓쳤고, 이후 중국은 위-오-촉 세 나라로 분열되며 한 세기 가까이 이어지는 진정한 '삼국지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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