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스타일 맞춰 기사 하나 써줄래?" 신문사 비밀 기자의 정체
사이오닉에이아이 고석현 대표
“사이오닉에이아이의 기술로 기사 작성을 도와줄 수 있어요. 각 매체의 양식에 맞춰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고요. 시험해 볼까요?”
사이오닉에이아이의 고석현 대표(36)는 인공지능(AI)으로 인터뷰 기사를 손쉽게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사이오닉에이아이는 대형 IT 기업과 AI 서비스가 필요한 기업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처럼 덩치 작은 같은 기업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같은 빅테크가 개발한 AI를 잘 활용하도록 돕는다. 고 대표에게 사이오닉에이아이 창업기를 들었다.
◇ 세상을 바꿀 기술을 찾아서
고 대표는 2015년 홍익대 컴퓨터정보통신공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생 시절 컴퓨터 교양 수업을 들으며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에 관심을 가졌다. “제가 신입생이었던 2008년은 컴퓨터 기술이 크게 발전하던 시기였어요. GPU 같은 기술이 나오면서 기존의 컴퓨터보다 더 빠른 컴퓨터가 개발됐죠. 기존 컴퓨터 속도의 한계를 깨는 새로운 기술에 매료돼 GPU에 빠졌습니다. GPU 해킹 대회에 나가 상을 받기도 했어요. 이후 자연스럽게 IT 분야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2015년 첫 직장에서 1년간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했다. “당시 콘텐츠 업계에서 유망주로 꼽혔던 피키캐스트에서 근무했습니다. 머신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이미지나 검색 추천 등의 일을 했어요. 그런데 2016년에 알파고가 세상에 나왔을 때 머리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AI야말로 세상을 바꿀 기술이라고 생각했죠. 1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2016년 컴패니에이아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전 직장 동료 2명과 함께 첫 창업을 해 기업을 위한 AI 솔루션을 만들었어요. 음성이나 채팅으로 이미지 검색을 하거나 택배 예약, 상품 구입 등을 돕는 기술이었죠. 2017년에 좋은 기회가 생겼어요. 네이버에서 회사를 인수했거든요. 매각 이후 네이버와 협력해 클라우드나 네이버의 계열사였던 라인의 AI 모델 개발 등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 IT 기업에서 일하며, 역설적으로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느꼈다. “AI 기술의 개발 속도와 실생활에 적용되는 기술 사이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었어요. 그 간격을 줄여야 많은 기업이 AI를 활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AI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사례는 드물었어요. 예컨대, 챗지피티(Chat GPT)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를 기업의 서비스에 활용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업 모델은 거의 없었어요. 빅테크가 더 발전된 모델을 만들기 위한 연구에 매진하는 한편, 고객사는 이 개발 속도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가 없는 게 원인이었죠. AI의 활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 빅테크의 AI 기술과 산업 현장 연결하는 오작교
빅테크 기업이 개발한 AI 기술이 산업 전반에 활용되도록 돕고 싶었다. 2023년 5월 사이오닉에이아이를 설립했다. “이들 기업이 보유한 기술은 정말 뛰어납니다. 이 기술을 널리 퍼뜨리는 중간자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대형 IT 기업이 구축한 기술을 기반으로 고객사의 요청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식을 떠올렸어요. 기업 대상 맞춤형 생성 AI 플랫폼을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생성 AI란 사용자의 질문이나 지시 같은 입력값에 대응해 문자, 이미지 등을 생성하는 기술인데요. 기존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보의 패턴과 구조를 학습해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어냅니다. 기업은 생성 AI를 활용해 글이나 영상 같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도움을 받거나 자동 응답 도구를 만들어 문의 사항에 응대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요. 이는 업무의 효율을 높이고 기업의 비용 절감으로 이어집니다.”
작년 11월 기업 대상 맞춤형 생성 AI 플랫폼 ‘스톰’을 출시했다. “고객사의 요청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예컨대, 무인 독서실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고객사는 키오스크나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화장실 등 시설 정보를 제공하거나 에어컨 같은 기기를 조작할 수 있는 솔루션을 요청했어요. 이런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AI 모델에 기업의 특징에 맞는 데이터를 학습시켜야 하는데요. 이런 일은 대형 IT 기업이 하기에는 비교적 작은 일입니다. 그들은 서비스 기업이 아니니까요. 스톰이 오작교로서 그 일을 대신 해줍니다.”
스톰을 이용하는 기업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은행, 신문사뿐만 아니라 무인 매장까지 다양한 업종의 기업이 스톰으로 솔루션을 개발했다. “한 신문사는 저희 솔루션을 기사 작성에 활용합니다. 신문사별로 문체나 문법이 다른데요. 해당 신문사의 특징을 AI에 학습시키고 ‘우리 신문사 스타일에 맞게 초안 만들어줘’라고 하면 초안을 만들어줍니다. 은행에서는 저희 솔루션을 직원의 생산성을 향상하는 데 활용 중입니다. 은행 계약서와 상품화를 학습한 모델에 정기 적금 가입 조건을 알려달라 요청하면 순식간에 답변이 생성됩니다. 아무리 은행 직원이라도 수천 개 넘는 서비스 조항을 일일이 알 수는 없잖아요. 솔루션을 활용하면 바로 도움받을 수 있습니다. 방대한 양의 보고서 작성을 도와주기도 하고요.”
기업 내 AI 전문 인력이 없지만 AI 기술을 사용할 용의가 있는 회사가 타깃이다. “한 회사에서 AI 전문팀을 꾸리는 데 드는 인건비와 인프라 구축에만 최소 20억원이 넘게 듭니다. 수지타산을 고려하면, AI 기술을 기업이 자체 개발하기보다 사이오닉에이아이의 솔루션을 사용하는 게 훨씬 효율적입니다. AI를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사용할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회사 구성 절반이 유명 핀테크 기업 ‘토스’ 출신입니다. 사용자 입장에서 진입 장벽이 낮은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는데 도가 튼 분들이죠.”
생성형 AI의 최대 화두인 ‘AI 윤리’도 각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다. “현재 솔루션에도 개인 정보를 제외하거나 혐오 표현을 제어하는 기술을 적용했어요. 저희 솔루션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윤리적 논란이 발생하면 안 되니까요. 또 경쟁 회사의 정보를 유출하지 않거나, 경쟁 회사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을 하지 않도록 AI를 학습시키고 있어요. 아직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보완해 나갈 예정입니다. AI는 학습을 거듭할수록 똑똑해지고, 고도화되니 시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모든 회사가 AI를 꿈꾸도록
기술력을 인정받아 설립 6개월 만에 55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한국투자파트너스, 힐스프링인베스트먼트, 삼성벤처투자, 아이엠엠인베스트먼트 등 국내 대형 투자사가 투자에 참여했다. 지난 5월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2023년 연 매출 1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연 매출 2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한다.
AI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일본, 동남아, 유럽 등 해외로 진출할 구상이다. “10월 중에 일본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시장 세계 2위 국가입니다. 미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에요. 현지의 비즈니스 문화에 잘 적응하면 높은 이익을 거둘 거라 예상합니다. 저희의 기술을 수출해 해외 각지의 기업이 AI 기술의 수혜를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동남아나 중동 국가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AI 기술에 대한 수요가 높지만 인프라가 적어 사용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모든 회사가 AI를 꿈꿀 수 있게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예비 창업가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쓰고 싶은 서비스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I 기술 창업자가 빠지기 쉬운 착각인데요. 수준 높은 AI 기술을 개발하면 저절로 사업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용성을 고려하지 않고 기술 개발에만 몰두한 사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어요. 저희는 철저히 ‘기업이 이 서비스에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로 판단합니다. 돈을 내고 쓴다는 건 그들의 수요를 충족한다는 의미거든요. 1000명이 무료로 쓰는 것보다 1명이 유료로 쓰는 게 사업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더 가치 있다고 확신합니다.”
/진은혜 에디터, 주서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