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야석 뒤덮은 'CHO 73'...두산팬 50명이 십시일반 돈과 유니폼을 모았다 [스춘 현장]

[잠실=스포츠춘추]
50명이 마음을 모았다. 그렇게 외야석 50석 넘게 표를 끊었다. 이번에는 유니폼이다. 35명이 소중히 간직해온 유니폼을 기꺼이 내놓았다. 이름과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은 외야석 하나하나를 채우며, 거대한 응원 메시지를 완성해냈다.
24일, 잠실야구장 3루 외야에는 'CHO 73'이라는 선명한 문구가 떠올랐다. 등번호 73번을 달고 있는 두산 베어스 조성환(49) 감독대행을 향한 진심 어린 응원이었다. 선수들의 유니폼으로 구성된 이 문구는 외야 한쪽을 가득 메웠고, 내야 중앙의 기자석에서도 뚜렷이 보일 만큼 인상적이었다. 조성환 대행이 자리한 1루 더그아웃에서 그 장면을 바라봤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감동적인 이벤트의 주최자는 놀랍게도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 두 명이었다. 외야석 근처에서 주최자를 찾자, 주변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저기 앉아 있는 분들"이라며 외야 상단에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 앳된 얼굴의 정 양과 송 양(이상 17)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모태 베어스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정 양과 송 양은 두산 경기를 함께 관람하는 친구 사이로,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이번 응원 이벤트를 직접 기획하고 주도했다. 두산 외야수 김재환의 오랜 팬이라는 정 양은 "허슬두의 정신을 다시 일깨워주신 조성환 감독대행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양은 "이 기사가 혹시라도 감독님께 부담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우리는 그저 순수한 응원의 마음으로 이벤트를 열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송 양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 온 '성골 두린이' 출신이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유니폼도 집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며 웃어 보인 송 양은 "부모님도 이번 이벤트를 알고 계시고 무척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정 양의 부모님도 "공부는 안 하고 또 뭘 하냐"고 말했지만, 딸의 열정을 끝까지 말리지는 않았다.

유니폼과 티켓을 찬조한 팬 중에는 8년차 두산팬 30대 권 모 씨도 있었다. 두산 유니폼만 80벌 이상 소장하고 있다는 그는 "팬들이 간절히 바라던 '허슬두'의 정신을 되찾아주신 조 대행과 선수들에게 정말 고맙다. 기쁜 마음으로 동참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날 두산은 KT에 2-3으로 아쉽게 패했다. 1-0으로 앞서던 8회초, 고효준이 2사 1·2루에서 KT 장진혁에게 통한의 3점 홈런을 허용하며 역전패했다.
하지만 두산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울려 퍼진 8회말, 이날 두산 프랜차이즈 최다 출장 기록(1795경기)을 경신한 정수빈이 1사 후 중전 안타로 출루했다. 정수빈은 2사 상황에서 제이크 케이브의 내야 뜬공 때 2루, 3루를 거쳐 홈까지 전력질주했고, KT 2루수 황재균이 평범한 뜬공을 놓치는 사이 2-3까지 따라붙었다.
양의지가 볼넷으로 출루하며 2사 1·2루의 기회를 만든 두산은 대타 박준순이 KT 마무리 박영현과 8구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를 벌였지만, 끝내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신인 선수가 리그 최고의 마무리를 상대로 보여준 패기와 끈기는 홈팬들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언제나 그렇듯 야구는 선수들이 뛰고 던지고 부딪히는 스포츠지만, 그 이야기를 진정으로 완성하는 건 한결같은 열정으로 응원하는 팬들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한 순간이었다.
'허슬두(Hustle Doo)'는 언제 어디서든 포기하지 않고,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경기에 임하는 두산만의 정신이다. 그 이름은 단지 슬로건이 아니라, 팬과 선수, 그리고 팀을 하나로 이어주는 신념이자 자부심이다.
팬들은 단지 1위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라운드 위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베어스다운 정신을 보여주기를 바랄 뿐이다. 리그 9위에도 불구하고 두산팬들이 이벤트를 열고, 박수를 보낸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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