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푸는 AI, 학문 자체에 해악”…필즈상 25인의 경고 [팩플]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 역대 수상자들이 인공지능(AI) 기업들의 수학 난제 풀이 경쟁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면서 이뤄 온 인간의 지적 진보 과정을 AI가 위협하고 있다는 경고다.

2006년 필즈상 수상자 테렌스 타오 미국 UCLA 교수는 11일(현지시간) 자신의 블로그에 ‘수학 분야에서 드러난 AI의 심각한 괴리’란 제목의 선언문을 공개했다. 타오 교수는 선언문을 통해 “수학 문제 풀이를 AI 성능의 기준(벤치마크)으로 삼으려는 AI 회사의 경쟁은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와 학계에 해를 끼치고 있다”며 “AI 기업과 수학계의 목표는 심각하게 어긋나 있다”고 주장했다. 2022년 필즈상을 받은 한국계 수학자 허준이 미 프린스턴대 교수 등 세계적인 수학자 24명도 선언에 동참했다.
앞서 오픈AI는 지난 8일 ‘7대 수학 난제’ 가운데 하나인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존재성과 매끄러움 문제’ 해법을 찾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성과를 발표하며 오픈AI는 “이번 성과에는 많은 수학자와 AI 연구자의 노력이 담겨 있다”며 “우리는 AI 발전의 다음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은 물과 공기 같은 유체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해 기상 예측 등에 활용되는 방정식이다.
하지만 수학자들은 AI의 수학 문제 풀이가 목적과 수단을 전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명문은 “문제를 푸는 것은 ‘개념적 이해와 통찰’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자 매개체일 뿐”이라며 “AI 시대에서 이를 잊어버리면 수단이 목적을 뒤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문제 해법만을 빠른 속도로 대량 생산하는 행위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활력을 불어넣기는커녕 새 아이디어가 자라날 토양을 황폐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AI로 최종 결과물을 생산한다’는 단순 목표가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질문과 아이디어를 만드는 능력을 키운다’는 학문에 대한 인간의 오랜 목적의식을 흐린다는 의미다.

이들은 오픈AI 발표에 대한 검증의 필요성과 AI의 학문적 공로 인정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선언문은 “문제 해법이 급하게 발표되다 보니 제대로 된 논문을 작성하거나 다른 연구자의 선행 연구를 인용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며 “이는 심각한 연구 기여도 문제와 표절 문제를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또 “우리는 지금 지적 노동 전반에 대한 보편적 위협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오픈AI의 발표 이후 학계 일각에선 향후 수학 논문에서 인간의 기여도에 대한 의문으로 필즈상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선언문이 게시된 타오 교수의 블로그에는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은 새로운 이해와 접근 방식을 발견하는 것이고, AI는 수학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무차별적·폭력적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등의 댓글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박한우 영남대 사회과학대 학장은 “새로운 방법과 도구가 과학적 돌파의 동력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충분조건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90% 찍자 더 샀다” 월 1000만원 타는 고수의 833% 종목 | 중앙일보
- “암 이겨내고, 감기도 없다”…90대 학자들이 찾은 건강 비결 | 중앙일보
- ‘오빠 게이트’ 연 한동훈…“술값 얼맙니까” 스폰서 물먹인 일화 | 중앙일보
- 회기 중 여성과 호텔 간 광명시의원…“사생활 있는 것 아니냐” | 중앙일보
- “여행도 따라가 드려요”…태국서 뜨는 ‘시간당 4만원’ 서비스 | 중앙일보
- 연보랏빛 머리 대신 넥타이…승무원 된 전직 아이돌 사연 | 중앙일보
- 이창동, 24년 만에 베니스 품었다…‘가능한 사랑’ 심사위원대상 영예 | 중앙일보
- 임신설 전혀 없었는데…엄마 된 레이디 가가 “첫 아이와 외출” | 중앙일보
- 여자화장실 벽면서 지문 나왔다…제주 ‘실종 허위종결’ 경찰 또 송치 | 중앙일보
- 이상순 활동 중단시킨 미주신경 질환…‘이 증상’ 땐 당장 누워라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