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농사? 복에 겨운 소리 말어…사람이 죽게 생겼는디”

장정욱 2023. 3. 1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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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노화·보길도 가뭄 상황 심각
저수율 13%…2일 급수 6일 단수
지하수 저류댐 등으로 겨우 버텨
주민 “유일한 해법은 광역상수망”
한국수자원공사가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에 지하수 저류댐을 구축해 오랜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인근 주민에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사진은 지하수 저류댐 사업으로 물을 공급받는 보길도 내 저수지 '부황제' 모습.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은 면적 32.98㎢로 2개 유인섬과 14개 무인섬으로 이뤄진 곳이다. 이곳에는 지난 1월 기준 1257세대 2561명 주민이 산다.


보길도는 400여 년 전 세상과 인연을 끊기 위해 제주도로 향하던 고산 윤선도의 발길을 멈춰 세월 정도로 아름다운 섬으로 이름난 곳이기도 하다.


기자는 지난 15일 해남 땅끝항(갈두항)에서 보길도로 향하는 배편에 몸을 실었다. 이날 환경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가뭄 대책 하나로 추진 중인 지하수 저류댐 현장을 소개하기 위해 기자단을 보길도로 초대했다.


땅끝항을 출발한 배는 약 30분간 항해 후 노화도 산양진항에 도착했다. 육지에서 보길도로 바로 가는 뱃길이 없어 이곳에서부터 육로로 이동해야 했다. 그나마 2008년 1월 노화도와 보길도를 연결하는 보길대교가 개통하면서 육지를 오가는 게 한결 편리해졌다는 게 주민 설명이다.


환경부 관계자와 취재진 등 일행 40여 명은 함께 배를 타고 온 작은 버스 두 대에 몸과 취재 장비를 싣고 보길도로 달렸다. 굽은 산길을 넘고 보길대교를 건넜다. 섬 곳곳에 남은 윤선도 흔적을 감상하는 사이 첫 목적지인 지하수 저류댐 현장에 도착했다.


보길도에 추진 중인 지하수 저류댐 항공 촬영 모습.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공사 마무리 단계인 해당 사업은 지하 저류지를 만들어 노화도와 보길도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내용이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가 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지하수 저류댐은 전체 사업비로 67억7600만원(국비 70%)을 투입했다. 운영 방식은 단순하다. 먼저 땅 밑에 콘크리트 차수벽을 새워 물을 모은다. 차수벽은 총길이 257m, 높이 최대 6m 규모다.


차수벽을 통해 모은 지하수는 1차로 저류조에 저장한다. 이후 펌프를 이용해 송수관을 따라 1.5㎞ 상류 저수지(부황제)로 옮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현재 저류댐에서 부황제로 하루 500~600t가량 물을 공급 중이다. 보길·노화도 주민에게 공급하는 생활용수가 하루 1800~2000t 정도란 점을 고려하면 저류댐에서 약 30%를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하루 최대 1100t까지 공급하는 게 목표다.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는 “바다로 흘러 나갈 지하수를 모아 생활용수로 쓴다는 점이 핵심”이라며 “특히 빠르게 증발하는 지표수와 달리 비교적 꾸준한 수량을 유지하는 지하수를 모으는 방식이라는 게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가 보길도 지하수 저류댐 사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80년 살아온 나도 처음 겪는 가뭄”

지하수 저류댐 사업 설명을 들은 취재진은 실제 물 부족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부황제로 이동했다.


부황제는 보길도 주민 2500여 명과 노화도 주민 6000여 명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유일한 저수지다. 전체 취수 용량은 42만5000㎥로 하루 4000t까지 처리할 수 있는 정수시설을 갖추고 있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 부황제 저수량은 13% 정도에 그쳤다. 지하수 저류댐에서 500t을 끌어왔음에도 주민 생활용수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했다.


부황제에서 목격한 것 이상으로 주민 불편은 심각했다. 당시 보길도는 2일 급수 6일 단수 상황이었다. 주민들은 이틀간 공급하는 물을 모아뒀다가 6일에 걸쳐 나눠 썼다.


보길도에서 태어나 80년을 살았다는 주민 조충연(80) 씨는 최근 가뭄에 대해 “태어나서 처음 겪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 씨는 “가뭄이 점점 심해지는 걸 피부로 느낀다”며 “이게 기후변화 때문인지 천재지변 탓인지 모르겠지만 갈수록 심각하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노화도와 보길도 주민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 '부황제' 용수가 오랜 가뭄으로 총 저수량의 13%에 그치고 있다.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그는 “세수한 물을 안 버리고 손이랑 발도 씻는다. 목욕도 이틀에 한 번 하다가 이제 4일, 5일에 한 번 겨우 할까 말까 한다”며 “주민들이 정말 물을 아껴 쓰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을 전체가 버티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노인회장 김종덕(75) 씨도 “화장실 변기에 벽돌도 넣으면서 물을 아끼고 있다”며 “이틀 급수, 6일 단수하고 있으니 불편한 건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대로 계속 비가 안 오면 (단수 일이) 더 늘어날텐데 걱정이다”라고 했다.


생활용수 부족이 심각하다 보니 농사에도 지장이 크다. 완도군청에 따르면 보길도는 논과 밭이 약 4.4㎢로 전체 면적의 약 13%를 차지한다.


주민 A 씨는 “사람 마실 물도 없는 마당에 농사를 어떻게 챙기겠나”라며 “농사는 되면 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다. 농사에 쓸 물은 신경도 못 쓴다”라고 말했다.


지하수 저류댐을 통해 모은 물을 펌프를 통해 부황제로 옮기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이날 만난 보길도 주민 대부분은 장기적 관점에서 물 부족 해결을 위해서는 육지로부터 직접 상수도가 연결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전남도는 육지 대형 댐을 활용해 광역 상수원 관로를 상시 가뭄 지역(섬)에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필요 예산은 약 2000억원 정도로 국비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한편, 환경부는 광주·전남 지역 가뭄 대책으로 수요 절감과 공급 관리, 도서 지역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자율절수 수요조정제도’를 통해 생활용수를 최대 20%까지 아끼고, 공장 정비시기를 조정해 공업용수 사용을 322만t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참고로 자율절수 수요조정제도는 물 사용을 줄인 지자체에 수도요금을 깎아주는 내용이다.


발전용 댐과 농업용 저수지를 생활·공업용수로 활용한다. 댐 간 연계를 통해 생활용수 부족 지역에 물을 대체 공급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 밖에도 도서 지역은 ▲병입 수돗물 보급 ▲운반급수차 확대 ▲지하 저류댐 설치 ▲해수 담수화 선박을 활용해 가뭄 극복을 돕고 있다.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주민에 생활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비상급수차량이 배를 통해 노화도로 들어오고 있다.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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