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결론짓고 쉽게 비난하는 세상... '백설공주 살인사건'에 감춰진 진실

김성호 2025. 10. 1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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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독서만세 287] 미나토 가나에 <백설공주 살인사건>

김성호 평론가

천재라는 말이 어울리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가 아쿠타카와 류노스케다. 일본의 영예로운 문학상 중 하나를 아쿠타카와상으로 부를 만큼, 일본 나아가 세계문학사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 평가받는 그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나생문>과 <덤불 속>은 역시 일본이 낳은 불세출의 천재 구로사와 아키라의 걸작 <라쇼몽>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나는 아쿠타카와 류노스케가 특별히 <덤불 속>에서 시도한 특별한 작법에 대해 적고자 한다.

<덤불 속>은 한 무사의 시체가 교토 외곽의 덤불 속에서 발견되며 시작된다. 소설엔 시체를 처음 발견한 나무꾼부터, 용의자인 산적을 체포한 순경, 용의자 순경, 죽은 무사의 아내와 영매를 통해 불려온 살해당한 무사의 영혼, 그리고 고행자까지 모두 여섯 명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흥미로운 건 이들 각각의 증언이 하나의 사실을 구성하지 않는단 점에 있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는 이들 여섯 명이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서로 충돌하고 왜곡되는 진실을 절묘하게 포착한다.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야기를 뒤틀고, 죄책감을 가리려 왜곡하는 순간이 수시로 찾아든다. 그로부터 시체는 꺼내왔으나 진실은 덤불 속에 남겨진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빚어진다. 독자는 인물 하나하나가 내어놓는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진실로 있었던 사건이 무엇인지를 짜맞춰가게 되는 것이다.

화자가 의도적으로, 또는 저도 알지 못한 채로 거짓을 말한다는 건 그 자체로 혁신적이었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고, 그는 이 형식을 극대화해 영화에 차용함으로써 일본 영화예술사상 길이 남을 걸작을 빚어냈다. 미하엘 바흐친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등을 예로 들며 주창한 다성적 문학(Polyphonic novel)과 같은 개념이 있었다곤 하지만, 단순히 서로 충돌하는 여러 인물의 목소리가 따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 오용과 왜곡을 소설의 형식 안으로 들인 선택은 아쿠타카와 류노스케부터였다 보는 것이 옳을 테다.
▲ 백설공주 살인사건 책 표지
ⓒ 재인
아쿠타카와적 작법의 현대적 활용례

그의 작법은 문학계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세계적 성공을 거둔 작품 가운데서도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라거나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케빈에 대하여> 등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다. 노골적이지 않고 은근한 작중 화자의 거짓과 왜곡을 읽어내는 깊이 있는 독자는 이를 알아채지 못한 이와는 전혀 다른 폭넓은 감상을 갖게 되는 출중한 작품이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와 일본문학의 기여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일 테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영향 덕분일까. 다채로운 장르문학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폭넓게 향유되는 오늘의 일본문학계에선 유달리 그와 같은 작법을 적극 차용한 작품이 꾸준히 등장한다. 한국에도 출간된 아리요시 사와코의 <악녀에 대하여>가 그중 널리 알려진 작품이고, 오늘 소개할 미나토 가나에의 <백설공주 살인사건> 또한 소설과 영화 모두 한국에 수입되며 화제가 됐다. <백설공주 살인사건>은 2008년 작 <고백>으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작가의 탄생을 알린 미나토 가나에가 2012년 내놓은 소설이다.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이 작품은 그대로 아쿠타카와 작법의 모범적이며 현대적 활용례라 해도 좋을 정도다.

<백설공주 살인사건>은 이 작품이 터 잡고 있는 고전 <덤불 속>과 마찬가지로 숲 속에서 살해된 시신이 발견되며 시작된다. 죽은 이는 미시마 노리코라는 화장품 회사 여직원으로, 발견 당시 수차례 칼에 찔린 채 불에 태워진 상태였다고. 피해자와 같은 회사를 다닌다는 옛 동창을 통해 소식을 접한 주간지 기자 아카보시 유지는 이 사건을 보도하며 대박을 친다. 피해자 직장 동료들의 증언을 받아 낸 자극적 보도는 노리코와 입사 동기인 시로노 미키를 은근하면서도 강력하게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한 눈에 보아도 대단한 미모를 지닌 노리코를 미키가 질시해 살해했으리란 것이다.

소설은 아카보시 유지가 취재를 위해 만난 이들이 그와 만나, 또 편지로써 전하는 답변 형식으로 쓰였다. 질문하는 기자의 말은 전혀 없이 오롯이 답하는 이들의 이야기만 담겼단 게 특징적이다. 이는 그대로 이 소설의 승부수로 작용한다.

소설은 후반부에 접어들며 인터뷰이들의 답변을 그대로 나열해 이어나가는 형식으로부터 벗어난다. 이제껏 그 발언이 전혀 언급되지 않아 다른 이의 답변을 통해 제한적으로만 추측할 수 있던 기자 아카보시 유지의 성품이며 자질을 파격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소설은 줄글 대신 트위터와 유사한 일본형 커뮤니티를 그대로 옮긴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중 한 아이디가 기자 아카보시 유지의 것으로, 그가 취재 중 실시간으로 온라인에 전한 내용과 그 방식이 자못 충격적 감상을 일으킨다. 그는 더없이 자극적인 기사를 의도적으로 왜곡해 발표한다. 그러고도 반성이며 문제를 자각하는 태도를 찾아볼 수 없으니, 우리가 기레기라 부르는 전형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언론에 의해 살인자로 몰린 여성, 그러나

소설은 마침내 벼랑 끝에 몰린 시로노 미키가 직접 써내려가는 소회를 통해 답을 내리는 듯하다. 그녀는 미키 노리코의 살해와는 관계가 없다. 그녀가 범인이란 증거처럼 제시된 온갖 증언들, 이를테면 직장 동료들이 앞서 증언한 '사무실에서 도난사건이 자주 일어났는데 범인으로 시로노 미키가 의심된다'거나 '미키 노리코에게 좋아하던 이를 빼앗겼고 심지어는 그 남자에게 스토커 노릇까지 했다'는 이야기, 또 '어린 시절 동네에서 방화사건을 일으킨 문제 있는 아이였다'는 둥의 이야기가 하나같이 근거 없는 소리란 걸 이를 통해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백설공주 살인사건>은 시로노 미키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이들의 인터뷰를 차례로 싣고 난 뒤, 그녀를 옹호하는 옛 친구들의 인터뷰를 삽입하고, 마침내 시로노 미키의 입을 통해 진상을 전하는 방식을 가졌다. 그리고 그 끝에서 이야기가 마주하는 결론을 공개하며, 부록으로써 기자가 어떤 사람이고 그가 낸 기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실제 커뮤니티글과 기사의 양식으로 붙인다. 얼핏 살인사건을 둘러싼 엇갈리는 증언에서 그칠 수 있는 이 작품은 단 한 가지 기법을 감추어 놓음으로써 문학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바로 이것이다.

소설 가운데선 세 인물이 시로노 미키를 옹호한다. 주간지에 항의서한을 보낸 대학교 동창 미노리와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마스미, 또 기자가 시로노 미키의 고향에 찾아가 만난 초등학교 동창 유코가 그들이다. 시로노 미키는 당사자의 마지막 말을 통하여 이중 미노리와 마스미의 증언을 무리하고 불쾌하단 식으로 적는다. 미노리에 대하여선 이제 보니 오랫동안 저를 얕잡아 보고 있었단 비판까지 가한다. 얼핏 진실로 받아들이고 지나치기 쉬운 이 증언은 과연 그러한가.

소설을 덮고 오래 생각해야 떠오르는 진실

결국 주간지 보도는 오보였고, 경찰의 진범 검거와 보도된 사실을 짜맞춰 보자면 가장 적합하고 유효한 증언을 한 이가 바로 미노리가 아닌가. 그러나 그녀는 당사자인 친구로부터 진짜 친구가 아니었다는 둥, 그 저의가 의심된다는 둥의 비난을 받는다. 가만히 보자면 이는 소설의 정답을 전하는 듯한 화자처럼 받아들여지는 마지막 발언권자인 당사자 시로노 미키의 오류다. 이로부터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녀의 증언에서도 확언할 수 없는, 어쩌면 거짓일 내용이 적잖다.

미키 노리코가 제게 앙심을 품은 순간은 과연 그녀의 생각 그대로일까. 수많은 오해의 가능성이 있는 판단들이 시로노 미키의 증언 가운데 반복된다. 독자는 이를 진실처럼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되지만, 조금만 의심해보면 허술한 구석이 여럿이다. 요컨대 시로노 미키의 말 또한 그녀 안의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말하자면 <백설공주 살인사건>은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작업이 낳은 가장 주요한 효과를 더욱 발전적으로 승계하고 있다. 모두가 거짓을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것조차. 인간은 충분한 정보가 없을 때조차 빠르게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그리고는 그 결론을 믿고자 한다. 그 편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잘 알지 못하면서도 빠르게 짓는 결론은 자연히 오류를 안긴다. 거듭하여 의심하고 판단하며 결론만큼은 뒤로 미루는 태도를 유지해야 할 이유다.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거듭 잘못된 증언을 믿게끔 하려 든다. 마치 소설 속 그릇된 보도에 휩쓸리는 무지몽매한 대중들이 그렇듯이. 처음엔 시로노 미키의 동료들이 그러하고, 나중엔 잡지사 기자가 그러하며, 소설 전체를 가로질러 당사자인 시로노 미키마저 그러하다. 앞의 두 가지는 차례로 선명히 까발려지지만, 마지막은 깊이 숙고한 뒤에야 알아챌 수 있다. 오로지 시로노 미키를 위하였으나 그녀에게 도리어 배신자처럼 오해를 받게 되는 미노리가 마지막을 찾는 단서가 된다. 그로부터 이 소설의 진짜 주제가 드러난다. 모두가 진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 모두가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판단하지 않고 재단하지 않는 것이 답이 될 수는 없을 테다. 살아간다는 건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여 분석하고 재단하며 마침내는 판단하고 선택하는 일을 어떻게 하면 더 현명하게 해낼 수 있을까를 소설은 고민하게 한다. <백설공주 살인사건> 가운데 내가 있었다면 과연 달랐을까를 돌아본다. 정답이야 있을까마는 쉬운 판단을 하려는 마음 너머 다른 가능성을 고심하는 태도가 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 열심히 진실을 좇는 자가 앉은 자리에서 쉽게 결론짓는 이보다는 현명할 것이 분명한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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