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사회에 없는 답, 한국에 있다" 사회학계 원로가 파고든 것 [백성호의 현문우답]
“지금은 위기의 시대다. 선비문화에 그 대안이 있다.”
8일 서울 서초구 대한민국학술원에서 서울대 김경동(87) 명예교수를 만났다. 그는 한국 사회학계의 원로이자 학술원 회원이다. 최근에는 『선비문화의 빛과 그림자』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철 지난 것으로 치부되는 선비문화에 그는 왜 천착하는 것일까. 이유를 물었다.
Q : 지금 ‘선비문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A : “답을 하기 위해서다. 서구에서 못하는 답을 동양에서, 그것도 한국에서 하기 위해서다. 사회학자로서 볼 때 지금 우리는 ‘대변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본다. 영어로 하면 ‘그레이트 트랜스포메이션(Great Transformation)’이다.”
Q : 대변환, 무엇이 바뀌는 건가.
A : “요즘 지구의 기후를 보라. 갑자기 여름에 눈이 오고, 겨울에 홍수가 난다. 내가 대구에서 학교 다닐 때 가장 더운 날씨가 30도였다. 요즘은 40도에 육박하지 않나. 가뭄과 지진도 빈번하다. 가장 먼저 생태계의 대변환이 극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팬데믹도 그 일환이라고 본다.”
Q : 그건 무엇 때문인가.
A : “이건 문명사적으로 봐야 한다. 지구에서 오직 인간만이 문명을 만들었다. 수렵과 채취로 살아가던 인간이 어느 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최초의 기술혁명은 농업기술혁명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간과 자연은 서로 조화로웠다. 18세기에 대량생산을 위한 공업기술혁명이 일어났다. 그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Q : 어떻게 달라졌나.
A : “예전에는 사람의 손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이제는 기계가 물건을 만들어 냈다. 공업화의 시작과 함께 인간은 자연을 해치기 시작했다. 한번 만들어진 기술은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기술의 속성상 계속 새로운 걸 만들려고 한다. 번개 치는 걸 보며 전기를 만들었고,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했다. 나중에는 원자력까지 나왔다. 지금은 3차 IT 기술혁명을 거쳐 4차 AI 기술혁명 시대를 지나고 있다. 그 와중에 온갖 질병과 재앙이 발생했다. 나는 그걸 공업화 와중에 발생한 자연의 복수라고 본다.”
Q : 자연의 위기를 말했다. 또 하나의 위기는 뭔가.
A : “사회의 위기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다. 트럼프 정부 때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민주주의의 위기’ 가 이슈가 됐다. 당시 타임지의 편집장 낸시 깁스는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하며 그 타개책을 서구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Somewhere else)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답을 한국의 선비문화에서 찾고자 한다.”
김 교수는 미국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꺼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라고 했다. 국민의 정부가 뭔가. 국민의 몫이고, 국민의 소유란 말이다. 실제는 어떤가. 선거를 통해 정치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가고 만다. 선거가 끝나면 정치인은 국민을 신경 쓰지 않는다. 국민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한다. 민주주의의 위기다.”
Q : 자본주의는 왜 위기인가.
A : “자본주의는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시작됐다. 둘은 작은 나라다. 큰 시장이 필요했다. 배를 만들어 군대와 장사꾼을 싣고 대서양을 건너갔다. 그렇게 제국주의가 시작됐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팽창한다. 팽창하지 않으면 망한다. 제국주의는 그렇게 자본주의의 팽창을 도왔다. 돈 가진 사람은 점점 더 돈이 많아지고, 없는 사람은 갈수록 궁핍해졌다. 그래서 카를 마르크스가 나왔다. 이건 인간이 할 짓이 못 된다고 생각한 거다. ”
마르크스의 사상을 레닌은 혁명으로 대치했지만, 사회주의는 결국 실패했다. “그럼 자본주의는 제대로 굴러왔나. 아니다.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가 도덕적으로 잘할 때 작동하는 거라고 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지지 않았나. 도덕성이 무너졌다. 월스트리트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이걸 겪으며 기업에도 ‘윤리경영’ ‘사회공헌’이란 개념이 생겨났다. 아직은 자기 회사 홍보를 위한 경우가 많다.”
Q : 자연의 위기와 사회의 위기. 선비문화는 어떤 답을 줄 수 있나.
A : “도덕성이 무너졌다.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생태계도 그렇다. 선비문화 정신의 핵심은 ‘천지인(天地人) 합일(合一)’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다. 이런 사상은 현대물리학의 핵심 이론과도 통한다. 현대물리학에서 이 우주는 하나의 웹(연결망)이다. 모든 존재가 우주에 하나로 엮여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우주 자체가 하나의 덩어리다. 그러니 천지인 합일 사상은 신비주의가 아닌 생태주의다.”
Q : 천지인 합일이 정치에는 어떻게 적용되나.
A : “정치가 왜 엉망이 됐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체(體)는 본체이자 원리다. 용(用)은 그 쓰임새다. 정치도 체를 항상 앞세워야지, 용을 앞세우면 망하고 만다. 정치는 정당한 원리를 세워놓고, 그 원리에 따라서 정치를 해야 한다. 퇴계 이황이 왕에게 간한 적이 있다. 체는 하늘의 명이니, 체를 버리지 말자고 본질부터 하자고 했다.”
Q : 그 체(體)의 핵심적 내용이 뭔가.
A : “도(道)다. 도리다. 도덕이다. 월스트리트에서 터졌던 금융 위기의 핵심도 ‘모럴리티(Moralityㆍ도덕성)’였다. 우리가 도덕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문명사적 대변환의 맹점을 해결할 수가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
Q : 짧은 시간에 되는 일은 아니지 않나.
A : “물론이다. 하루아침에 되진 않는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각성’이 필요하다. 글로벌적 각성이 필요하다. 각성한 뒤에는 어떤가. 가야 할 방향이 필요하다. 한국의 선비문화에 그 방향이 있다고 본다. 서구 사회에서 제시하지 못하는 방향성 말이다.”
김 교수는 오는 10월 대한민국학술원에서 열리는 ‘제22차 SCA 국제학술대회’에서 ‘선비문화’를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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