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L.1st] 김민재 풀백, 트렌드에 맞고 해볼 만한 시도… 그러나 투헬처럼은 아니다

김정용 기자 2024. 4. 1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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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바이에른뮌헨).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김민재의 스피드가 아까운데 풀백 어떤가요?' '김민재는 미드필더도 잘할 것 같지 않나요?'


축구팬 사이에서 제기되어 온 의문이 잠시나마 현실화됐다. 김만재는 18일(한국시간)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8강 2차전에 바이에른뮌헨의 왼쪽 수비수로 교체 투입돼 아스널을 1-0으로 꺾는데 기여했다. 선발 레프트백 누사이르 마즈라위가 다쳤을 때, 전문 레프트백을 이동시켜 메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토마스 투헬 감독은 김민재 투입을 택했다.


투헬 감독의 김민재 풀백 기용 아이디어는 확고했다. 후반 막판 굳히기에 들어갈 때는 공격자원을 빼고 센터백 다요 우파메카노까지 투입돼 전문 센터백이 4명으로 늘었다. 이때 우파메카노는 스리백의 일원으로 합류했고, 김민재는 왼쪽 윙백으로서 경기를 마쳤다. 생소한 자리였다. 전북현대 시절 오른쪽 수비수로 뛴 적은 있지만 왼쪽은 처음이다.


▲ 잘 하는 센터백들이 풀백을 겸하는 시대


김민재가 에릭 다이어에게 밀려 풀백 신세가 된 거냐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나올 수 있지만, 풀백 이동 자체는 요즘 센터백들에게 부끄러울 것 없는 일이다. 지난 2년간 뛰어난 센터백이 다른 포지션을 겸하는 사례가 급격히 늘어났다.


축구 트렌드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 약 5년 전만 해도, 반대로 다른 포지션의 선수를 센터백 자리에 배치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스리백일 경우 3명 중 전문 센터백을 1명 정도만 남기는 게 강팀에서는 일반적이었다. 바이에른 동료 중에서는 요주아 키미히가 기존 위치인 미드필더나 풀백이 아닌 센터백으로 기용되며 후방에서 빌드업을 주도했다.


그런데 2022-2023시즌 3관왕을 차지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맨체스터시티가 발상을 급격하게 뒤집었다. 오히려 본업이 센터백인 선수를 4명 투입하는 방식이다. 속칭 '포터백'은 수비적인 축구를 할 때나 쓰이는 방법이었지만 최근에는 반대다. 유럽 강팀의 센터백이라면 운동능력과 공 다루는 기술 모두 미드필더 뺨친다는 점을 활용했다. 본업이 센터백인 선수 4명 중 1명은 미드필드로 올라가고, 좌우의 2명은 측면수비와 중앙수비를 동시에 해 주는 유연한 포진이 형성됐다. 존 스톤스가 중원으로 올라가고 마누엘 아칸지, 아단 아케, 요수코 그바르디올 등이 좌우를 맡는다. 이러면 센터백의 수비력과 미드필더의 전개능력을 겸비한 선수들을 후방에 잔뜩 깔아둘 수 있게 된다.


이 기용법은 다른 팀들에도 빠르게 영향을 미쳤다. 아스널의 미켈 아르테타 감독은 2021-2022시즌 체구가 작은 풀백 올렉산다르 진첸코를 미드필드로 올려 보내는 기용을 선호했다. 하지만 지금은 포백의 좌우에 모두 센터백 출신을 두되, 빌드업할 때 진첸코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으로 활용한다. 리버풀도 센터백인지 풀백인지 어정쩡했던 조 고메스를 빌드업의 한 축으로 삼은 뒤 활용도를 끌어올렸다.


김민재의 빠른 스피드, 전진성, 정확한 패스, 경기장 상황을 한 발 먼저 파악하는 지능 등은 이론적으로 볼 때 풀백을 겸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넓은 커버범위가 요구되는 이 축구에 오히려 딱 맞는 선수다.


맨시티의 스톤스처럼 앞으로 전진하는 역할은 어떨까. 이 역할은 센터백의 멀티 포지션 전환이 계속 진행되는 요즘 추세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다. 공을 부드럽고 유려하게 차진 않는 김민재에게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김민재의 기술을 가장 잘 활용했던 감독 루치아노 스팔레티는 나폴리 우승을 이끈 뒤 "김민재와 이야기를 나누며 상대를 견제하는 것도 좋지만 공을 더 많이 갖고 플레이하면 재미있을 거라고 설명했다. 김민재는 이미 잘 해냈지만 더욱 많은 걸 해낼 잠재력이 남아 있다. 김민재는 수비와 동시에 상대 진영으로 공을 투입하는 것도 해낼 수 있다. 맨시티에서 스톤스가 하는 역할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 하지만 아스널전 김민재 풀백이 불안했던 이유


그러나 아스널 상대로 김민재가 맡은 역할은 아스널이나 맨시티 풀백처럼 체계가 잡혀 있지 못했다. 마즈라위의 자리를 대체한 뒤 김민재는 평범한 레프트백 역할에 머물렀다.


마즈라위가 76분 동안 아스널 핵심 윙어 부카요 사카를 막아야 했던 횟수보다, 김민재가 76분 이후 짧은 시간 막은 횟수가 더 많았다. 이는 아스널이 탈락을 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격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제력을 잃은 바이에른 대형이 이미 무너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전반전 마즈라위가 거의 뚫리지 않고 성공적인 수비를 해낸 건 주위에서 2명이 협력수비를 해줬기 때문이었다. 왼쪽 수비형 미드필더 콘라트 라이머, 원래 수비수지만 왼쪽 윙어로 변칙 배치된 하파엘 게헤이루가 함께 측면을 방어했다. 특히 게헤이루의 왼쪽 윙어 기용은 사카에 대한 방어에 공격가담을 통한 결승골 어시스트로 이어진 이날 최고의 승부수로 꼽혔다.


그런데 경기가 진행될수록 선수들의 위치가 느슨해졌고, 김민재 투입 시점에는 게헤이루가 아예 전방에 올라가 역전골을 노리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특히 후반 44분 윙어 리로이 자네가 빠지고 센터백 다요 우파메카노가 추가 투입된 뒤에는 아예 게헤이루가 역습의 첨병을 자처하며 수비가담보다 전방으로 질주할 준비를 먼저 하는 장면도 있었다. 그래서 김민재는 사카를 일대일로 막아야 했다.


김민재의 위치도 후방에만 머무르며 중앙까지 커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평범한 레프트백처럼 측면으로 잔뜩 올라가는 경우가 많은 등 조율이 잘 되지 않았다. 오히려 김민재가 후방에서 날아오는 롱 패스를 받기 위해 전방에서 헤딩 경합을 하는 등 맡은 임무가 많았다. 헤딩 경합을 따내지 못하면 허둥지둥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토마스 투헬 바이에른뮌헨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다요 우파메카노(바이에른뮌헨). 풋볼리스트

▲ 다음 시즌 감독의 밑그림에 따라 포지션은 늘 바뀔 수 있다


김민재가 다음 시즌부터 장기적으로 센터백과 풀백을 겸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아스널전 막판같은 모습이 아니라, 더 빌드업을 중시하고 체계적인 축구를 하려는 감독이 경기 지배력을 강화하려 할 때 이런 역할을 맡길 수 있다. 지난해 여름 김민재와 더불어 이적시장 센터백 최대어였던 그바르디올은 맨시티에서 센터백과 풀백을 오가다가 최근에는 아예 전문 풀백처럼 오버래핑하며 뛰기도 한다.


김민재는 2021년 유럽진출 이후 20대 중반 나이에도 매해 기량을 발전시켰다. 이번 시즌은 빅 클럽 적응 과정에서 부침을 겪느라 기량이 향상된 점은 없지만, 다음 시즌 새 감독이 팀에 질서를 부여한다면 더 성장할 수 있다. 발전의 방향이 센터백이 아닌 다른 포지션이어도 요즘 축구계에서 이상할 건 없는 일이다. 이번 시즌 김민재보다 먼저 풀백에 임시 기용된 바 있는 우파메카노도 고질적인 안정감 부진을 털고 자신의 테크닉을 발휘하기 위해 다른 위치로 옮길 수 있는 후보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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