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지수’ 후폭풍...거래소 해명에도 신뢰성 논란 여전
“투자자들과 조금 이견…저평가·고배당 발굴 목적 아냐”
추가 리밸런싱 검토에 업계 “종목 구성 문제 있다는 자인”
한국거래소가 최근 공개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지만 시장에서는 공정성·형평성에 대해 여전히 의문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지수의 편입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혹평이 잇따르면서 부랴부랴 해명에 나섰다는 지적과 함께 그 해명 조차도 여전히 의문을 남기고 있다는 것이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가 전날인 26일 긴급 브리핑을 통해 밸류업 지수 종목 선정 논란과 관련해 해명에 나섰지만 한 번 불거진 시장의 불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거래소가 선정 기준을 해명하고 연내 추가 대책을 발표하는 등 대처에 나섰으나 이미 불거진 신뢰성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양상이다.
거래소는 브리핑에서 밸류업 지수 개발의 주요 목적이 저평가·고배당 기업을 발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시장의 혹평을 잠재우기 위해 애썼다.
브리핑에 참석한 양태영 유가증권시장본부장은 밸류업 지수를 두고 논란이 불거진 이유에 대해 “시장에서 기대한 ‘저평가 고배당주’란 콘셉트와 거래소가 생각한 ‘시장 대표지수’ 컨셉의 차이 때문에 투자자들과 조금 이견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양 본부장은 밸류업 지수가 주주환원 실시 여부만을 고려해 배당 수익률이 낮은 종목을 포함했다는 지적에 대해 “주주환원 규모가 종목 선정에 있어 절대적 고려 요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주주환원 규모만을 선정 기준으로 하는 경우 배당보다는 미래 사업 투자 등을 통한 기업가치 성장이 중요한 고성장 기업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고평가 기업들이 지수에 편입된 반면 기업가치 성장이 기대되는 종목들은 제외됐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그는 “수익성과 주가순자산비율(PBR),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질적 지표가 우수한 대표 기업들로 지수를 구성해 밸류업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시켜 국내 증시 전반의 기업가치가 제고되는 것이 밸류업 지수 개발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밸류업 지수 운영에 대해서도 “시장과 각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향후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 추이를 보면서 올해 구성 종목을 리밸런싱(구성종목 변경)하는 부분을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당초 거래소가 밝힌 밸류업 지수의 정기 리밸런싱은 연 1회로 내년 6월 이뤄질 예정이었는데 밸류업 지수에 대한 시장의 부정적인 평가가 빗발치면서 연내 추가로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거래소는 앞서 지난 24일 장 마감 후 총 100종목으로 구성된 밸류업 지수를 확정 발표했지만 시장에선 편입 기준에 대한 논란이 커졌다.
밸류업 대표 종목으로 꼽혀왔던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 등 금융주들이 구성 종목에서 빠지고 주주가치를 오히려 훼손한 업체들이나 고평가된 종목들이 포함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지수 기준이 모호하고 도입 취지에도 맞지 않다는 비판 여론이 확산됐다.
스위스계 투자은행(IB)인 UBS의 한 직원은 “해당 지수가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할지 의문스럽다”면서 “시장 참가자들이 (밸류업 지수에 대해) 귀중한 조언을 했지만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는 혹평을 쏟아내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적자를 기록, 수익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SK하이닉스 역시 지수에 편입되면서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이날 거래소는 SK하이닉스가 지수에 편입된 데 대해 “밸류업 지수 또한 지수의 연속성 및 안정성 유지를 위해 지수 영향도가 큰 종목에 대해 특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SK하이닉스에 ‘잔류 특례제도’가 적용됐다고 밝혔다. 이는 밸류업 지수 발표 당시에는 언급되지 않은 내용이다.
거래소는 산업 및 시장 대표성과 지수 내 비중, 최근 실적 및 향후 전망치와 업계 의견 등을 종합 고려해 SK하이닉스의 잔류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KB금융은 ROE 8.26%로 거래소가 제시한 편입 기준인 ‘산업군 내 상위 50%’에 들지 못해 편입이 불발됐고 하나금융은 PBR 요건이 미달됐다. 주주환원 등 특정 요건이 우수더라도 여타 질적요건이 미흡한 기업의 경우 미편입될 수 있다는 게 거래소의 입장이다.
KB금융은 올해 72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을 발표하고 기업들 가운데 처음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 예고’ 공시를 했지만 편입에서 빠졌다. 당초 국내 증시 저평가 일환에서 만들어진 지수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주주환원에 적극적이었던 종목들이 제외되면서 ‘고무줄 기준’이란 업계 지적이 잇따라 제기됐다.
거래소는 주주 환원이 인색한 엔씨소프트와 소액주주들과 갈등을 빚은 DB하이텍 등이 포함된 데 관해선 “정량 지표를 중심으로 지수를 구성하는 것에 주력했다”고 밝혔다.
이부연 거래소 경영지원본부장보는 “사후적으로 일부 기업들에 대한 부적절한 평가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기업들의 개별적인 경영 의사결정에 대해 주관적인 판단은 가급적 최소화하는 게 지수의 투명서 측면에서 가장 바람직하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거래소의 해명에도 시장에서는 지수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수 발표 당시 정은보 이사장이 밸류업 지수 선정 기준에 대해 형평성과 객관성에 집중했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는데 정작 선정된 종목들은 이러한 발언과는 상반된다”며 “추가 리밸런싱을 하겠다는 대책을 급조한 것은 종목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외국계 IB 등 비판 여론이 생각보다 강해지면서 거래소가 급하게 상황 정리에 나선 것”이라며 “올해 말 예정보다 빠른 지수 리밸런싱이 이뤄지면 11월 출시 예정인 상장지수펀드(ETF) 운용 계획이나 추후 일정에도 변수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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