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에 '언니'·'오빠' 없어 번역 힘들었죠"[한국어시대①]
RM이 추천한 '죽고 싶지만 떡볶이…' 번역
"'꽃보다 남자' 시청하면서 한국어에 관심"
"두 나라 문화적 차이 극복이 가장 어려워"
편집자주
한국어 시대다. 한국어를 알아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작품을 원어로 읽을 수 있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K-팝, 드라마, 영화 등을 제대로 즐기려 해도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 한국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외국인 숫자만 250만명이 넘는다(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 2023년 12월 통계 연보). 문화생활을 위해, 일하고 공부하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한글을 배운다. 아시아경제는 한글의 달 10월을 맞아 세계 속 한국어의 위상과 교육 실태를 짚어 보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먼저 정부가 지원하는 해외 한국 문화 교육기관 세종학당 우수 학생 다섯 명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 가치, 만족도를 물었다. 세종학당은 여든다섯 나라, 248곳에 있다. 지난해까지 배출한 수강생이 70만명이 넘는다.
파울라 마르티네스 괄은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스페인어로 번역했다. 스물다섯 나라에서 출간된 수필이다. 기분부전장애(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를 가진 저자와 정신과 전문의의 대화가 보편적으로 엮여있다. 우울과 불안을 참신한 방식으로 탐색하며 자아를 찾는다. 방탄소년단(BTS) RM의 추천 등으로 스페인에서 출간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파울라는 스페인어 번역에 약 5개월을 매달렸다. "첫 번역이었던 만큼 잘하고 싶었다. 기분부전장애를 앓는 주인공의 감정 변화, 상담 치료 등을 깊게 이해하려고 텍스트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분석했다. 번역을 마친 뒤 수정 작업도 여러 차례 진행했고.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고, 불완전하고, 구질구질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온전히 전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는 열네 살 때 우연히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시청하면서 한국어에 관심을 가졌다. 혼자 인터넷으로 문법과 단어, 어휘 등을 찾아 익혔다. 다른 한국 드라마와 문학으로 학습을 구체화하며 실력을 키웠다. 바르셀로나 공식 언어학교(EDI)에서 모든 한국어 수업도 수강했다. EDI는 스페인 정부에서 운영하는 언어 교육기관이다.
어느 정도 한국어로 읽고 쓰고 말하기가 가능해졌지만 파울라는 만족하지 않았다. 여전히 자기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한국어를 더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2020년 바르셀로나 세종학당을 찾았다.
"세종학당의 고급 과정 수업을 통해 수준급 한국어 어휘를 익히고, 부족했던 한국어 쓰기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그 덕에 한국문학을 번역할 만큼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 한국에 대해서도 많이 알 수 있었다. 특히 한국전쟁 등 역사적 주제를 한국어로 발표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이 매우 흥미로웠다."
파울라는 역사에 관심이 많다. 바르셀로나 자치대학교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할 정도다. 그런 그에게 한국 역사 수업은 한국어를 계속 공부하게 하는 매개체가 됐다. 꾸준히 배우고 익혀 2022년 세종학당 우수학습자로 선정됐다. 세종학당 한국어 말하기대회 결선 진출권을 얻어 그해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파울라는 '성장'에 대한 생각을 한국어로 피력해 우수상을 받았다. 서강대학교에서 어학 연수할 기회를 잡았다.
"지난해 9월부터 6개월 동안 한국에서 지내며 한국어를 공부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실력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번역 작업에 유용하게 활용할 정도로. 돌아보니 엄청난 기회였다. 제 인생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그들 덕에 한 단계 성장했다고 느낀다."
그중에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저자인 백세희 작가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출간된 스페인어 번역본과 제작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소중한 친구가 됐다.
파울라는 스페인으로 돌아가 바르셀로나 자치대학교 졸업을 준비한다. 한국문학을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활발하게 이어간다. 상반기에 번역한 연소민 작가의 '공방의 계정'은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다. 주인공 정민이 도자기를 빚으며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현재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2'를 번역한다. 그는 "경험이 쌓인 만큼 이전보다 작업을 빨리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처음 번역할 때는 스페인어에 없는 '언니' '오빠' 같은 한국어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지 고민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번역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예컨대 한국인 주인공은 스페인에서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일에 괴로워하고 힘들어한다. 이런 경우 스페인 상황에 맞출 때도 있지만 한국식 사고를 그대로 반영하기도 한다. '공방의 계절'이 그랬다. 소설이 가진 톤과 분위기를 스페인어본을 읽는 독자들이 그대로 느끼길 바랐다."
파울라는 전혀 다른 언어로 서술된 책을 스페인어권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 여전히 첫 번역을 맡았을 때의 긴장되고 설렌 감정을 잊지 않고 있다. "아직 학생이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지만 이 일만큼은 꾸준히 해나가고 싶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성유리 "억울하다" 했지만…남편 안성현, '코인상장뒷돈' 실형 위기 - 아시아경제
- "결혼해도 물장사할거야?"…카페하는 여친에 비수꽂은 남친 어머니 - 아시아경제
- "37억 신혼집 해줬는데 불륜에 공금 유용"…트리플스타 전 부인 폭로 - 아시아경제
- "밤마다 희생자들 귀신 나타나"…교도관이 전한 '살인마' 유영철 근황 - 아시아경제
- '814억 사기' 한국 걸그룹 출신 태국 유튜버…도피 2년만에 덜미 - 아시아경제
- "일본인 패주고 싶다" 日 여배우, 자국서 십자포화 맞자 결국 - 아시아경제
- "전우들 시체 밑에서 살았다"…유일한 생존 北 병사 추정 영상 확산 - 아시아경제
- "머스크, 빈말 아니었네"…김예지, 국내 첫 테슬라 앰배서더 선정 - 아시아경제
- "고3 제자와 외도안했다"는 아내…꽁초까지 주워 DNA 검사한 남편 - 아시아경제
- "가자, 중국인!"…이강인에 인종차별 PSG팬 '영구 강퇴'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