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 법

2026. 4. 24.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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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작가·에세이스트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관대함
작은 친절에 감사하는 미덕
타인의 속도를 존중하는 배려

초등학교 6학년생 아들에게 물었다. “귀여운 할머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아이는 뭘 그런 걸 다 묻느냐는 표정으로 자신의 눈꼬리를 올리며 “이렇게 웃고 있어야지. 그리고 말투가 상냥해야 해”라고 말했다. 갑자기 ‘할머니’에 꽂힌 건 매일 300명 이상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탐색하는 일이 내 주요한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신청하고자 종종걸음으로 사무실을 방문하는 70, 80대 어르신들은 여전한 총기를 자랑하기도, 대뜸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는 AI 사용법을 묻기도, 친절하게 대해줘 고맙다며 초콜릿 한 개를 슬쩍 건네기도 한다.

직원들에게는 각자 최애 할머니 손님이 있다. 멀리서 작은 손짓만 해도 쪼르르 달려가 친근하게 대하는 할머니가 있는 반면, 깐깐한 말투로 했던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할머니가 나타나면 은근슬쩍 시선을 피한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원할 거야”라는 명언은 할머니 세계에서도 통한다.

왜 할머니 앞에는 ‘멋진’이라는 수식어보다 ‘귀여운’이라는 형용사가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을까. 오래전 소설가 김연수는 ‘장래희망’을 묻는 독자의 질문에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지 모르겠지만 성인 남성도 꿈꿀 만큼, 할머니는 대단히 매력적인 존재다.

“엄마도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아이의 질문에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귀여운 인간상이 되는 일, 과연 노력으로 가능한 일인가? 그렇다고 매사 까칠한 우악스러운 할머니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가족도 아닌데 기꺼이 환대받는 귀여운 할머니, 그들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어서 젊은 사람들에게 이토록 사랑받을까. 곧 나의 최애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손씨 할머니를 며칠 동안 관찰했다.

첫째, 말의 속도가 느리고 행동이 천천하다. 둘째, 눈빛이 말하고 있다. 따뜻하지? 셋째,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잃지 않았다. 넷째, 다짜고짜 말을 놓는 법이 없다. 다섯째, 자꾸 뭐라도 주고 싶어 한다. 여섯째, 질문하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대개 방어력이 세진다. 뭐든지 안전한 방향으로 선택지를 옮긴다. 하지만 어디서나 환대받는 귀여운 할머니는 안전만을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는다. 느슨하고 느긋하지만 생기가 있다. 새로운 세상과 사람에게 끊임없이 시선을 내어주며 새로운 세계에 다정히 섞여든다.

“요즘 애들한테 이런 게 유행이라면서요? 나도 알려줄 수 있어요?” 몇 번 얼굴을 본 사이라고 무턱대고 말을 놓는 법도 없다. 귀여운 할머니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호기심’이다.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 대신 앎을 향한 욕망에 충실하다. 할머니의 귀여운 질문에 해답을 내어놓을 때 젊은 사람들은 은근한 자기효능감을 느낀다. 귀여운 할머니 옆에 있으면 내가 꽤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지니, 피할 이유가 없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대신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하는 관대함. 사소한 친절에도 크게 고마워하는 미덕. 귀여운 할머니는 기쁨의 단위를 잘게 쪼개는 능력이 탁월해 곁에 머무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든다. 세상은 꽤 살 만한 구석이 많으니, 작고 사소한 것에 기뻐하는 능력을 가져보라고. 옆구리를 톡톡 찌른다. 손씨 할머니는 나와 두세 번 대화한 사이인데, 친한 척을 하는 법이 없다. 내가 먼저 살갑게 다가갈 수 있지만 이상하게도 서두르게 되지 않는다. 우리는 애쓰지 않아도 언젠가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쩌면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 법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타인의 속도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먼저 다가가기보다 다가올 수 있는 자리를 비워두는 것. 아는 것을 앞세우기보다 모르는 것을 기꺼이 드러내는 것. 컴퓨터 게임에 심취해 있는 아이를 향해 속삭였다. “맞아! 엄마도 귀여운 할머니 되고 싶어. 망설임과 호기심을 잃지 않는 할머니.”

엄지혜 작가·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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