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엔 최고, 노동자엔 최악... 쿠팡 일하며 느낀 점

최윤정 2024. 9. 1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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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배송'의 다른말은 '노동자의 땀'... 쿠팡물류센터 단기 알바 다녀와보니

[최윤정 기자]

며칠 전 일이다. 명절을 앞두고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에 마음이 심란했다. 마트건 시장이건 시금치, 그것도 한 단도 아닌 소분한 시금치가 9980원에 판매되는 상황이라 가격만 봐도 우울해졌다.

일단 당장 필요한 금액을 계산해 보니, 한 일주일만 알바(아르바이트)를 해서 충당하면 좋을 듯했다.

단기 알바의 최고는 쿠팡과 마켓컬리로 알려져 있다. 일단 이력서나 경력 증명도 필요 없고, 그저 일할 시간과 건강한 신체만 있으면 언제든지 일을 할 수 있으니 그렇겠다.
▲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시간대에 쿠팡로지스틱스 구인공고
ⓒ 최윤정
예전에 마켓컬리에서 일했던 경험을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든 탓에 이 알바는 앞으로 두 번은 다시 안 한다, 아니 못 하겠다 생각했는데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그런가, 기억이 미화된 건가. 그게 또 그렇게 못할 일이었나 싶어 가까운 쿠팡 캠프에 지원을 했다.

쿠팡 프레쉬는 좀 그나마 환경이 낫다고 들었다. 일단 나같은 대부분의 지원자 중 여자들은 '소분' 작업에 배당된다. 마켓컬리 소분의 경우 주문자의 상품을 랩핑하고 박스에 담아 트레일에 옮기면 끝이었다. 작업대의 높이와 트레일의 높이는 허리 정도다.

가보니 작업 환경이 아주 열악하지는 않았다. 알바 시간 내내 서서, 다만 쉬는 시간을 줘도 마땅히 앉아 쉴 만한 곳이 없어서 계단에 쭈그리고 앉았었던 것, 그리고 새벽 귀가셔틀버스가 한 번이라 알바가 끝나도 한 1시간은 가까이 버스에 있어야 했다는 게 이 재취업(?)을 망설이게 했던 이유였다.

끝도 보이지 않는 넓은 작업장... 다리가 후들거렸다
 '[쿠팡 잠입취재] 로켓배송 종착지에서 본 쿠팡의 거짓말', 뉴스타파가 최근 쿠팡 물류센터에 잠입취재해 보도한 내용 화면갈무리
ⓒ 뉴스타파
이번 쿠팡 알바 역시 소분에 참여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넓은 작업장에는, 귀가 멍멍하게 울릴 정도의 소음이 들어차 있었다. 내가 화장실에 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작업자는 내게 작업 들어가기 전, 아니면 쉬는 시간에 가라고 한다. 관리자에 해당되는 듯한 주황색 조끼를 입은 분을 따라가 봤다.

일 자체는 이전에 마켓컬리에서 했던 것과 비슷했다. 제품을 꺼내 지역으로 추정되는 세 자리 숫자 박스에 분류해 담는 거였다.

문제는 작업장의 높이였다. 바닥부터 5단까지 분류한 박스에 물건을 넣다보면, 맨 위쪽 칸에는 까치발을 들어야 겨우 간당간당 닿았다. 상품이 가벼우면 그마나 낫지만, 세제나 서적류는 넣고 박스를 정리할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러다 박스가 꽉 차면, 장을 잠근 뒤 뒤로 밀고 그 박스를 트레일러에 옮겨야 한다. 옮기는 건 대부분 남자들의 몫이었다. 그들 역시 바닥에서 올리거나 위에서 내릴 때 다리가 후들거릴 만한 무게였지만, 모두들 말할 사이도 없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여느 회사의 분위기와 비교하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보통은 1시간에 10분은 쉬면서 흡연을 하거나 물을 마시거나 하다못해 화장실을 가지 않던가. 여기선 화장실에 갈 시간은 전혀 없고, 갈 생각도 하지 못한다. 내가 신청한 5시간 중, 쉬는 시간은 30분, 그것도 몰아서 준다.

덥다. 선풍기가 돌아가지만 더운 바람이 나온다. 땀을 흘리니 화장실은 덜 간다. 한 모금 물이 너무 아쉬웠다. 인당 2병이란 500ml 생수를 가지러 갈 틈도 없이, 작업 물량은 내 앞에 쌓이고 내리고 또 쌓이고를 반복했다. 진도가 늦으면 어디선가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건지 "서둘러주세요"란 방송이 스피커로 나온다.

그게 우리 팀 얘기인지 누구 팀 얘기인지, 알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바쁘다. 이날 나와 팀을 이룬 알바생은 나이 20대 같았는데, 나보다 조금 더 키가 컸다. 그래서인지 5단 높이의 박스를 단도리하는 게 그나마 나보다 나아보였다. 그녀 역시 오늘 처음 알바를 왔다고 했다(다시금 알았다, '젊은 알바생들은 꾀만 부리고 일을 못한다'란 말은 일종의 편견이고 오해란 사실을).

그렇게 몇 시간을 쉴 새 없이 일했다. 그러다 내가 담당한 작업량이 줄어드니, 주황색 조끼를 입은 분이 나를 바쁜 쪽으로 이동시킨다. 이건 조금 전 작업과 같은 맥락이지만 사람이 다르니 일하는 방법이 다르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렇게 해야한단다. 조금 전 방식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새 시스템에 다시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쿠팡 잠입취재] 로켓배송의 '연료'가 된 사람들', 뉴스타파가 지난해 8월 쿠팡 물류센터에서 취재해 보도한 화면갈무리
ⓒ 뉴스타파
그런데 마침내 그 작업에 익숙해지고 속도에 탄력이 붙으니, 나를 다시 원래 작업장으로 이동시키는 주황색 조끼분. 아니 저 분은 나만 보고 있었나?

근무 중 나는 세 번 옮겼는데, 이 중 트레일에 물건을 올리는 작업이 제일 힘들었다. 10개 중 8개의 박스는 올리면서 '끙' 소리가 나올 법한 무게였다.

일을 해보니 안전사고도 뜻하지 않게 일어났다. 내가 맡은 작업장 벽면에 전기박스가 툭 튀어나왔는데, 바닥에 깔린 박스를 들어 올리다 보면 전기박스에 머리를 부딪히기가 딱 좋았다. '쿵'하고 한 번 부딪혔다.

머리 부딪힐 만한 좁은 공간까지 작업장으로 활용

미리 조심해야지 다짐을 해보지만, 작업장은 한 사람만이 서있을 수 있는 구조다. 왜 박스가 있는 곳 아래까지 작업자가 일하게끔 만들어 해놨을까? 그렇게 정신없이 작업을 하다 보니 다짐을 잊어버리고 또 다시 '쿵!' 했다. 내 머리가 나쁜 건지 작업장이 열악한 건지마저 헷갈렸다.

박스를 좀 더 내 앞으로 끌어당긴다. 알바 전, 온라인으로 안전교육을 이수했음에도 역시나 사고는 쉽게 발생한다는 걸 느꼈다. 트레일에 손이 끼거나 박스에 걸려 넘어지거나 나처럼 전기박스에 머리를 부딪히거나... 그래, 사고는 순식간에 이렇게 나는 거구나.

갑자기 모든 일을 멈추라고 한다. 쉬는 시간이다. '이동 이동', 사무실 바로 옆에 의자와 정수기만 덩그러니 있던 작은 공간에 들어섰다. 누군가의 신발인지 가방인지, 냄새가 났다. 매일 세탁하는 것 같은 작업조끼에서도 땀내와 쉰내가 진동했다.

그 와중에 나는 김밥을 먹고 샌드위치를 먹는다. 30분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다시 한 번 작업장으로 들어가고 또 엄청난 물량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두 팔을 뻗어 물건을 쌓고 내리고를 반복한다. 박스를 완성해도 트레일까지 옮길 일손이 부족하다.

마음이 점점 조여드는 작업장이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는지, 돌아서기만 하면 머리 끝까지 쌓여있던 박스가 점차 줄어드는 게 보인다. 예정된 마감시간도 다가온다. 내가 작업을 마치자 약속한 시간에서 약 8분이 남았다.

관리자인 듯한 주황색 조끼분은 우리를 또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 우리에게 빈 박스를 차곡차곡 쌓으라고 한다. 새로운 작업에 7분을 쓴다. 1분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단 1분도 노동자를 쉬게 해주지 않으니, 고용주 입장에서는 아마도 최고의 인건비 사용이겠다.

일단 5단 높이에 까치발을 들고 두 팔을 쭉 뻗어 물건을 담아 잠금고 이동시키면서 제일 많이 생각나는 건? 이상하게도 택배기사들이었다. 나는 잠깐 하는 일인데도 이런데, 이 무거운 것을 올리고 내리고, 그것도 하루나 반나절이 아니라 매일 하는 것이니 얼마나 힘들까?
▲ 쿠팡 시간당1만원플라스알파 프로모션이 걸린 쿠팡단기알바, 처음하면, 친구소개하면, 연속으로 하면 보너스를 준다
ⓒ 최윤정
직접 해보니 생수, 쌀, 세제 등은 진땀이 났고 그 무게는 허리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나 또한 무거운 건 되도록 주문을 자제해야겠단 생각도 해본다.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단순한 작업, 반나절씩 3일만 고생하면 프로모션계산으로 54만 원을 받을 수 있단다. 비교적 인간다운 타임은 대상이 아니다. 저녁 6시에 시작해 밤샘근무를 하는 경우 보너스를 받을 수도 있으니, 나처럼 당장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솔깃한 제안일 수 있겠다.

어떤 물건을 주문해도 모든 사람들이 다음 날 받을 수 있게 한다, 전국이 동일하게. 이런 쿠팡로지틱스의 캐치프레이즈는 다시 생각해도 대단한 발상이다. 실제로 밤에 주문해도 다음 날 아침 문 앞에 놓인 '로켓 배송'을 보면, 소비자 입장에서야 이렇게 편리한 시스템이 어디 있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로켓 배송'의 다른말

전날까지 깜박하고 뭔가를 준비하지 못해도, 손가락질로 클릭 한 번이면 오케이다. 배송비도 없다. 물건 값이 다른 사이트와 비교해서 현저히 비싼가? 그것도 아니니, 한국의 쿠팡 배송은 단연 넘버원급이라 할 수 있겠다.

땅덩이가 우리나라의 몇 십 배인 미국, 세계를 장악한 아마존도 추가 비용을 내면 빠르게 배송하는 '특급배송'을 해준단다. 하지만 전날 밤 주문 익일아침 배송?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쿠팡은 한국 전국 물류창고에 물건을 쌓아두고 주문 즉시 배송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박스 작업을 할 사람과 택배를 보낼 차, 사람만 고용하면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힘들고, 어딘가에 부딪히고, 또 다친다. 누군가는 죽는다(관련 기사: "쿠팡 심야 일용직 같이 하자했는데... 3일 만에 남편 잃었습니다"
https://omn.kr/2a6kx ).
 지난 8월 18일 새벽 쿠팡 일용직이었던 고 김명규(48)씨가 일하다 사망한 경기도 시흥캠프의 10일 밤 모습. 심야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 김성욱
지난 4년간 쿠팡에서 사망한 13명 대다수는 과로사였단다(쿠팡 사측은 일부 과로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 회사에서 4년간 사고사가 있었는데, 이유가 대부분 과로라니.

어떤 회사든 조직이든, 실수든 아니든 간에 부상자나 사망자가 나올 가능성까지 다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사망한 다수가 과로로 인한 것이었다면, 그것도 매일 바뀌는 알바생이 그 대상이 된다면, 이는 작업 환경에 분명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이력서, 경력, 증명서, 면접도 없이 내가 원하는 시간대를 클릭하기만 해도 누구나 써주는 노동은 얼핏 보기에 쉬운 것 같았다. 그런데 노동이 끝난 나는 기진맥진해 있었다. 어느 블로거는 이 작업 후기를 올리며 이를 일컬어 '지옥'이라고도 표현했다.

나 역시 이전의 마켓컬리 작업 뒤 허리가 아파 고생을 했고, 귀가한 다음 날은 내내 잠만 잤었다. 시간이 지나 그 기억이 잊힌 거다. 사실 두 개를 엄격히 비교하면 쿠팡보다 마켓컬리가 그나마 나은 것 같다.
▲ 쿠팡은 유족에게 사죄하고 재발방지대책 마련하라! 서울지역 시민사회단체가 7월 10일 오전 서울 중랑구 상봉역 1번출구에서 '쿠팡 로켓배송 택배노동자, 41세 고 정슬기님을 추모합니다. 쿠팡은 유족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 마련하라, 쿠팡 규탄 서울지역 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읻들은 '쿠팡의 유족에 대한 사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고인을 추모했다. ?가운데는 고인 정슬기씨 부친.
ⓒ 이정민
학교 다닐 때도, 그리고 지금도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다.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고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한다"는. 그럼 나는 학생 때 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 이렇게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게 됐다는 얘기일까? 1만 원 정도의 시급을 주는 '알바'가, 이런 위험한 작업 환경인 것은 그대로 괜찮은가.

며칠간 쿠팡을 뛴다는 대학생들을 우연히 만났을 때, 그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답변 중 "관계가 힘들어서"란 말이 의미심장했다. 일정한 알바도 좋지만, 그만두고 싶을 때 말하기가 어렵고, 이상한 고용주나 진상고객을 만나면 어쩌나 싶어 꺼려진단다. 쿠팡의 경우 아무 때나 가서 하루 이틀만 고생하면 며칠간은 돈 걱정이 없단다.

그래서 작업장에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구나, 싶었다.

지인은 내게 말한다. 1분 1초를 노동으로 환산하기 때문에 택배가 힘들다고. 근무시간동안 1분도 쉴 수 없는 작업 환경인 직이 어디 있냐고. 맞는 말이었다. 식당도 손님이 없으면 잠깐은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는데 말이다.

여느 회사처럼 50분 일하고 끽연하러 이석하거나 커피를 마시러 탕비실로, 혹은 생리 현상을 위해 화장실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그런 근무환경은 단기 알바생으로서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쿠팡 배송의 경우는, 소비자가 가장 편리함을 누리게 하기 위해 노동자는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한다는 게 아이러니 하다.

택배차량의 이동을 위해 열린 작업장은 더운 바람만 나오는 선풍기 몇 대와 생수 두 병으로 버틴다. 일이 일찍 끝나지도 않는다. 단 10분, 단 5분 전에라도 작업장을 나갈 수는 없다. "오늘 잘했어요. 수고했어요"란 다독임을 바라는 건 사치다.

귀가한 뒤 온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해, 머리가 띵하고 전신이 후끈했다. 괜한 일을 했나 후회도 된다. 덜 쓰면 되는데, 더 써야한다며 욕심을 냈다고 스스로를 자책한다.

그 사이 문자가 왔다.

"지원하신 00캠프입니다."

그 뒤엔 전화도 왔다.

"혹시 며칠부터 다시 일하실 수 있나요?"

'로켓배송'과 문 앞의 택배에 혹해 편리했던 나, 편리함을 주기위해 힘듦을 참아냈던 나. 누군가에겐 가장 편리하고 최고일 텐데 누군가에겐 가장 힘들 쿠팡. 쿠팡은 좋은 기업일까 나쁜 기업일까, 생각에 잠기게 됐다.

참고로 일본 아마존배송기사의 월급은 적게는 48만 엔(한화 약 453만 원), 많게는 연봉 1천만 엔(한화 약 9450만 원)이라고 한다. 2023년 자료를 보니 미국의 아마존배송관련 임금은 시급 19달러(한화 약 2만 5천 원)였다.

다시 한 번 전국의 택배기사들에게, 연휴 간 일하며 고생했을 나와 비슷한 다른 물류 노동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번 단기 알바를 하면서 느꼈다. 쿠팡은 소비자인 내게는 최고의 시스템이지만 노동자인 내게는 그렇지 않다. 지난 4년간 13명이 과로사했다는 쿠팡, 그 작업이 거의 다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로켓 배송' 뒤에 가려진 열악한 작업 환경이 아쉽다. 그 환경이 하루빨리 바뀌길 바라며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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